20대 이별을 경험하고 도서관 의자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책을 읽다가 문득 헤어진 여인의 생각이 났고, 연애 시절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스쳐갔다. 그럴 때마다 면도날이 혈관 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이런 아픔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혈관 속에 작은 면도날이 돌아다니다가 잘못 건드리기만 하면 고통이 오는 듯했다. 고통이 너무 커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로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향유고래가 내 몸을 감싼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이동 할 때 문득 딸아이를 생각하면 향유고래가 내 몸을 휘감고 부드럽게 지나가며 내 못난 점을 감싸주고 상처를 치유해준다.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싶다가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향유고래가 나를 감싸고 춤을 춘다. 부드러운 지느러미로 나의 고단함을 닦아준다.
보물은 우리 가족이라고 속삭일 때는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무게가 사라지고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딸아이는 나에게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을 선사한다. 그녀가 내게 주는 사랑은 바다처럼 깊고, 향유고래처럼 따뜻하다.
향유고래가 언젠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내려가더라도 그 사랑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딸아이는 나의 향유고래이며 부드러운 사랑은 삶을 환하게 비춘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하고 순간이 모여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