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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티나 Mar 15. 2016

고마운 바둑, 위대한 이세돌




이세돌. 아직 마지막 1국이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 알파고와의 위대한 1승뿐만이 아니라, 대국 후 인터뷰를 보면 (특히 3번 패한 후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릇이 정말 큰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가 경기에 임하는 자세만으로도 큰 감동이 있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은 오랜만이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둑광인 우리 아빠


1.

바둑광인 아빠 덕분에 어려서부터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시대를 쭈욱 보고 자랐다.

어린 시절 (일본에 살았을 때) 아빠는 도 대표 대회에서 우승을 하셔서 사진과 함께 실린 일본 신문 기사가 집 어딘가에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사실 아빠는 바둑 기사가 아닌 그저 바둑을 좋아하는 대학 교수.



2.

초등학교 때는 바둑 프로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서 용돈을 받았고, 대학교 때는 우리 집에 최철한 사범이 방문해서 기원처럼 바둑판이 쭉 늘어서 있고, 최철한 사범이 돌아가면서 한 점씩 두는 진풍경을 구경하기도.

이런 까닭에 나는 바둑에 대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3.

딸만 둘인 아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언니와 나를 어려서부터 바둑 학원에 보냈는데 언니는 일찍이 흥미를 잃었고, 의외로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재밌어서인지 몇 년 동안 바둑 학원을 잘 다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 나오질 않으니 나도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질 않아 관뒀다. 결국 나의 마지막 급수는 8급.


4.

지난 일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열띤 토론을. 특히 이세돌이 1승을 거둔 날이라 우리 가족은 흥분 상태.  아빠의 해설을 듣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어느 인터넷 기사보다 아빠의 해설이 나에게는 가장 재밌고, 유익하다. 우리 가족은 엄청난 수다 끝에 5국을 기대하며 헤어졌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심야 영화를 봐도 한 바탕 수다를 떨어야 잠을 잘 수 있고,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도, 필리버스터를 하는 동안에도, 시그널 결말을 추론하면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까지 다양한 주제로 참 수다스러운 우리 가족.




5.

인터넷 바둑이 생기면서 서서히 기원들이 사라지고, 바둑의 미래를 걱정하던 우리 아빠였다.

한국 드라마는 거의 안 보시는데 (미드와 영드를 좋아하심, 최근 시그널로 한국 드라마 입문) '응답하라 1988'은 택이가 바둑기사라는 이유로 바둑뉴스에 자주 오르내리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여 초지일관 어남택을 열심히 응원하던 우리 아빠. 바둑을 이렇게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처음 알파고에게 패하고 상심이 크셨다. 이세돌 혹은 인류가 패해서가 아니라 체스가 컴퓨터에게 지고 나서, 큰 대회가 사라지고 많은 선수들이 사라져 버렸듯. 완패할 경우 세계적인 바둑대회가 사라질 테고 그로 인한 '불안정한 바둑의 미래'를 걱정하셨다. 3패 뒤에 값진 1승을 하자, 나라를 구한 듯 기뻐하시는 우리 아빠. 처음으로 바둑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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