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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 내는 밥값, '이것'만은 아껴요

by 배지영

‘영광의 딸’이지만 영광을 모른다. 떠나온 세월이 길어서 거의 모든 게 새롭다. 나는 교과서에도 실린 우리 고장의 말로 감탄한다.

“오메! 영광에도 메타 세콰이어 길이 있당가? 아조 끝내주네이.”

우리 엄마 조금자 씨는 철철 넘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딸한테도 존대한다.

“좋제요? 나는 여름에도 왔어라우.”


메타 세콰이어 길의 중간쯤에 막내 이모가 예약해 둔 장어 식당이 있다. 우리는 불갑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막내 이모와 나보다 두 살 많은 막내 이모부가 온다. 서울에서 2주일 전에 만났던 우리는 회포를 풀지 않고 자리 정리부터 한다. 이쪽 테이블에서는 이모가, 저쪽 테이블에서는 이모부가 장어를 굽는다.


배지현과 나도, 막내 이모 부부도, 아빠도, 강썬도 그저 맛있게 먹는다. 엄마 혼자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먼저 결제해버리면 어쭈고 할까이.’ 엄마는 추가 주문을 할 때마다 재빨리 일어난다.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고 나서도 상냥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는 젊은 사장님한테 카드를 내민다. 세상 행복한 얼굴로 돌아와서 안심하고 먹는다.

밥값 40여만 원을 척척 결제하는 조금자 씨는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낀다. 예를 들면 치실. 쓰고 나서는 깨끗한 휴지에 싸서 가방에 고이 집어넣는다. 배포 있게 돈 쓰면서도 이쑤시개를 쓰고 또 썼던 아버지 조남기 씨를 가끔 떠올린다.


“나도 다른 집 아그들처럼 학교 더 다닐라요. 아부지 따라 댕김서 농사짓기 싫어라우.”


어린 금자는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했다. 튀어나오는 말은 가슴을 치며 밀어 넣었다. 집에서 부리는 일꾼들과 똑같이 일 시키는 아버지 밑에서 벗어날 길은 결혼. 스물한 살 조금자 씨는 옷만 번지르르하게 입는, 생활력 없어 보이는 남자와 살겠다고 선포했다. 조남기 씨는 명명백백하게 반대했다. 조금자 씨는 단식투쟁 끝에 결혼을 쟁취했다.


맏딸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조남기 씨도 당신의 방식대로 금자에게 애정을 주었다. ‘또랑’에 투망 쳐서 잡은 붕어는 그 자리에서 머리만 떼고 금자에게 주었다. 오독오독 뼈까지 야무지게 씹어먹는 열일곱 살의 금자, 트렌치코트 차림에 첫 손주를 업고 온 금자, 장정들처럼 육체노동자로 사는 금자에게 늘 익히지 않은 날것을 주었다. 조남기 씨는 당신과 똑닮은 맏딸에게 유언을 남겼다.


“금자야! 날씨가 섭씨 20도로 내려가야지만 생것을 먹어라이.”


음력 7월생. 조금자 씨는 아스팔트가 녹을 듯이 뜨거운 생일에 싱싱하고 실한 병어를 사다가 날것으로 먹는다. 새벽마다 일본어 공부를 하고 들일을 가던 조남기 씨처럼, 조금자 씨도 꼭두새벽에 동네 공원 화장실 두 곳을 호텔 화장실처럼 반짝이게 닦아놓는다. 1시간 동안 힘차게 공원을 걷고 난 뒤에 밥을 지어먹고 요양보호사 공부하러 간다.

왜 시험을 ‘콤퓨타’로 보아야 하는가. 끝도 없이 책을 베껴 쓰며 달달 외운 조금자 씨는 한두 문제 차이로 요양보호사 시험에 떨어지고 있다. ‘다음에는 붙겠지.’ 시험 걱정을 잠시 묻어둔 금자 씨는 자랑스러운 막냇동생 부부, 둘째 딸과 셋째 딸, 그리고 자신이 환갑 되던 해에 태어난 ‘내 강아지’ 강썬, 징글징글하지만 돌봐주고 싶은 남편 배형환 씨와 <운동장의 발자국들 전>을 보러 간다.


1970년, 1972년, 1974년, 1976년 사진들 앞에서 조금자 씨와 배형환 씨는 젊고 활력 있던 옛날로 돌아가 일치된 의견을 낸다. 그때 당신들의 아기들이 태어났으니까. 젊은 부부는 곤로에 물을 끓여서 분유를 타고, 열이 안 떨어지는 애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로등 없는 신작로를 달려서 면 소재지 의원까지 달려가곤 했으니까.


조금자 씨를 젊은 시절로 데려갔던 옛날 사진의 힘은 사그라든다. 77세의 수험생 조금자 씨는 졸음을 참지 못한다. 전시회 한켠에 놓인 의자에서 선잠이 든다.

#전남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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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교최초도래지

#운동장의발자국들전

#막내이모_영광군청_문화예술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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