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인이 이게 뭐야! 사용자가 어떻게 쓸지는 고려 안 하지? 이렇게 만들면 사용자가 사용하기 쉽겠어, 불편하겠어?”
주간 회의 시간. 팀장님은 내가 개발한 기능의 화면을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개발자라고요! 디자이너도 아닌데 새로 추가된 기능의 화면 디자인을 하고 그걸 구현했다고요.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디자인한 화면인데 부족한 건 당연하지 않나요? 정 마음에 안 드시면 디자이너를 구해주시든가. 디자인을 직접 해주시든가.
불량한 마음이 되어 아무 말 없이 회의실의 모니터만 쳐다봤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날아온 치명타.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다야?”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다야?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다야?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다야? 개발자가 개발만...’
나는 넋이 나가 팀장님이 날린 비수 같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면요? 개발자가 뭘 더 할까요? 개발자가 디자인도 할까요? 그럼 디자이너는 왜 있는데요? 그런 말을 마음속 깊이 꾹 눌러 넣었다.
수정 사항을 듣고 회의는 끝났다. 내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의 모니터를 보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만든 화면.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 기능을 구현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래도 안 되는구나. 부족하구나. 디자인... 개발자가 개발만 하면 안 돼...
충격과 혼란 속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스스로를 쌩신입, 초짜라고는 생각했지만 개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초짜일지라도 나는 개발자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개발자라는 사실을 부정당한 기분.
개발자는 본질적으로 ‘개발’을 하는 사람 아닌가. 디자인을 고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게 개발자의 본업인가. 따지자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고 나는 그 디자인을 구현해 주는 것이 역할 아닌가.
아무리 내가 프론트엔드 개발자라서 화면도 구현한다지만, 그리고 디자인에 관심도 있다지만, 게다가 (비록 중퇴일지라도) 디자인학과를 전공했다지만! 그렇지만 화면 ‘디자인’이 내 역할은 아닐 텐데. 지금 내 앞에 놓인 개발이라는 업무를 해내는 것도 벅찬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든 걸 해내지 못하는 나는 개발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까? 다른 개발자는 모든 일을 척척 다 해내니까 개발자인 걸까?’
그래, 하면 되지. 디자인도 잘하는 개발자 하면 되지. 하지만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커리어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팀장님은 여전히 나에게 디자인을 요구하신다. 디자이너가 필요해! 제발!
“저희 팀은 디자이너 안 뽑나요?”
“너 있잖아.”
저는 개발자로 면접 보고 채용됐는데요! 디자이너가 아니라요! 속으로 외쳤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얌전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개발자인데요. 제가 한계를 느껴요.”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개발자가 되어야지!”
그게 제가 넘어야 할 한계냐고요. 나는 나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디자인하는 개발자? 그러기엔 디자인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일을 할수록 아니, 디자인을 할수록 점점 의문이 많아졌다. 디자인도 개발도 이젠 다 모르겠어. 지쳐. 싫어. 나는 결국 이직을 결정했다. 마지막 출근 당일, 팀장님은 내게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개발이랑 디자인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너 뽑은 거야. 아니었으면 안 뽑았지. 그것 때문에 나간다고 하면 처음부터 핀트가 안 맞았네.”
나 온전히 개발자로 뽑힌 게 아니었어?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시는 건데요? 아니, 그것보다 제가 왜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데요? 디자인학과 중퇴라서? 의사소통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팀장님의 충격 발언으로 알게 된 것은 개발자가 디자인 업무도 척척 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셔서 요구하셨을 뿐이라는 것. 그걸 알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