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카후나의 난임일기
심리 상담소는 평소 자주 가던 서점 안에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셨다.
“어떻게 오셨어요?” 선생님이 물었다.
“감정 통제가 안 돼요.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별안간 울음이 터져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열 번을 만났다. 난임 스트레스 이야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매번 그 이야기는 5분도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어릴 때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부모님은 어떤 성향인지, 남편과의 거리는 가까운지, 일하는 태도는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노란색 노트 패드에 내 이야기를 속기사처럼 받아쓴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냥 수다를 떠는 경험이었다.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꼭 아기를 낳고 싶은 거예요?”
당장 대답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좀 나쁘기도 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그래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단 한 번도 이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해보지 않았다. ‘그러게, 나는 왜 아기를 낳고 싶은 걸까?’ 본능적인 종족 보존의 열망인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향한 전형성에 대한 갈망일까, 내가 채우고 싶은 것은 뭘까?
한 시간의 상담이 꼭 10분처럼 느껴졌다. 무슨 말을 이렇게나 많이 하지? 싶었다가도 내 속을 뒤집어서 누구에게 보여주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싶었다.
‘난임 상담’을 검색하고 처음 전화한 곳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중앙난임, 우울상담센터’였다. 센터에서는 석 달 후에나 첫 상담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고는 잊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심리상담 선생님과 모든 상담을 마쳤다. 02-2276-2276. 전화를 받고서야 생각이 났다. 내 차례가 온 것이다. 그렇게 두 달간 매주 상담 전화를 받았다.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질문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요즘 감정은 어떤지, 과배란 증후군 증상은 없는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는지 무척 기본적인 안부가 대화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심리 상담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구술의 힘이었다.
“마음의 치유라든지, 삶은 살아내는 힘이라든지, 세상과의 화해 가능성 같은 것은 상당 부분 '구술'과 관련되어 있다. 대개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조리 있고 정확하게, 의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삶과 화해를 이루어간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화를 내고, 울고, 더 이상 말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아버리고, 신경증적인 반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삶에는 아직 제대로 말해져야만 하는 게 더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 사람에게는 말할 창구가 필요하다.
_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몇 달이 지나고 시험관 9차가 끝났다. 또 비임신이다. 소식을 들은 날은 엄마와 점심을 먹었다. 칙칙해진 내 기운을 한눈에 간파한 엄마가 한마디 했다. “시험관 그거 이제 그만해.” 큰 칼이 나를 베고 지나갔다. 그 말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바로 엄마에게 소리 질렀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백화점 지하 주차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나 먹으라고 해온 엄마의 장조림을 손에 들고 할 짓은 아니었다. 나도 몰랐다. 내게서 그렇게 사나운 소리가 나올지 그날 집에 오면서 내내 구술의 힘을 믿자고 되내였다. 내 안에 하지 못하고 쌓인 말들을 풀어내자고. 신경증적인 반응이 심해지기 전에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했다. “구술의 힘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