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꿈에 친가 사람들이 나왔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안 봤으니, 안 본 지 16년쯤 됐으려나. 그들이 나오는 꿈은 유쾌하지 않아 아침부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인생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꿈에 잔뜩 나와서일까? 혼자 카페에 앉아 어제 꾼 꿈을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 엄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8살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했기에 엄마와의 기억이 많지 않다. 그나마 있는 기억에서 엄마는 한숨을 쉬거나 울거나 뒷모습을 보인다.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양옥집에 살았고, 부엌에 개수대 앞에는 작은 창이 나있었다. 해가 지면서 빛이 창문을 통과했다. 엄마는 개수대 앞에 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작은 나는 아래에서 위로 엄마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모습에 얼마나 깊은 우울이 있었는지, 기억 속에 엄마의 뒷모습은 검은색이다. 옷 색도, 머리색도 기억나질 않는다. 해 질 녘의 타오르는 햇볕이 엄마의 어두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코가 시큰해진다. 그 누구도 엄마의 우울을 헤아려주지도, 벗어나게 해 주지도 않았겠지. 엄마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4인 가족의 틀 안에서 무척 외로웠을 거다. 그리고 이 외로움의 원인과 벗어나기 위한 방법도 모른 채 계속 부유했을 거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본인의 못남을 탓하며 우울 속에서 둥둥 떠 있었겠지.
엄마가 가정 안에서 우울의 갈피를 못 잡고 부유할 때 엄마의 딸도 다른 곳에서 부유하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누구에게 탓을 돌리면 차라리 쉬울 텐데, 화살을 나를 향해 돌리며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이렇게 참는 것조차 내가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는 그 어떤 곳보다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인데, 밝음과 반대로 나는 계속 축축한 땅 밑 밑으로 꺼지는 것 같다. 계속 이렇게 우울하면 어떡하지? 계속 어둠에 깊이 누워있는 것 같은 기분이 근래 계속되고 있다. 항우울제 용량도 꾸준히 늘리고 있고, 약도 잘 먹고 있고, 상담도 잘하고 있고, 이 정도면 괜찮아진 것 같은데, 이제 좀 많이 나아진 거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진다. 이걸 우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엄마에 관한 기억에서 지금의 나의 상태를 발견한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나도 엄마랑 비슷한 상태로 세상을 대하고 나를 대하고 있다. 안쓰러운 엄마와 내가 해 질 녘에 울고 있었고,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