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학 2022 봄호 완료추천
나는 '방랑 시청자'였다.
산골에는 TV뿐만 아니라 라디오조차 귀했다. 저녁이면 이장 집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메줏덩이만 한 배터리에 연결된 TV가 대청마루에 놓였다. 퍼스트 클래스인 마루에는 이장 네 가족과 연세가 아주 많으신 노인 몇 분이, 비즈니스 클래스 자리인 멍석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앉았다. 멍석 뒤 맨땅은 이코노미 자리인데 아직 팔팔한 젊은이들이 자리했다.
소형 TV라 마당에서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TV 전파가 산골까지 오느라 힘들었는지 상하좌우로 화면이 일그러진다. 화면이 안 보여 거의 소리만 들려도, 화면이 깨끗하지 않아도 연속극 장면마다 한숨과 환호, 비명,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형 흑백 화면에 채널이야 고작 KBS와 MBC 두 개지만, 초대형이나 고화질 화면에 수십 개 채널이 방송되는 요즘보다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은 콩나물시루보다 작은 TV 상자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서 살고 있는지 신기해했고, 노인들은 지난주에 죽은 범인이 다른 사람으로 멀쩡하게 살아나는 게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도회지로 유학 중인 이장 집 큰아들이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집집마다 보름달이 뜬 것처럼 밝았다. 우리 집만 그믐달이었다. 전기가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전기를 들이지 않은 까닭이다.
여러 집에서 TV를 들여놓았다. 오늘날 대한민국 세계 TV 판매 1위는 그때 정해졌다고 본다. 전기가 없는 우리 집에서는 TV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재미있는 연속극을 보려면 남의 집에 가야 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낯선 이들에게도 선뜻 문을 열어줬다. 아니,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다가 집 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이 있으면 거의 강제로 데려와 없는 반찬이라도 같이 먹었다.
마을 사람끼리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했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서로 알고 지냈다. 동네에서 마을 어른을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했고 살갑게 받아 주었다. 10년 넘게 산 아파트에서 알고 지내는 이웃이 손꼽을 정도인, 지금의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계였다.
방랑 시청의 길을 떠나기 전, 지난 한 주일 동안 문지방을 넘었던 집을 떠올려 본다. 시골 인심이 좋다 하여도, TV가 놓인 곳이 나에겐 영화관이지만 그들에겐 침실이라 매번 같은 집에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가지 않은 안평 어른 집으로 정했다. 마당에서 헛기침하고 여쭈어본다.
"테레비 보러 왔는데여......"
"어서 들어와여."
집주인의 허락이 있다 하여도, 밤에 남의 집 안방에 들어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안하고 감사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안방 윗목에 다소곳이 앉으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우리 집에도 TV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에게 "술값 모아서 전기 놓고 TV도 사여"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서워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집에서 연속극 보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인기 높은 <수사반장>이 방영되는 날은 저녁을 일찍 먹어야 했다. 나처럼 남의 집에서 TV를 보는 '방랑 시청자'가 마을에 여럿 있어서 그들과 찾아가는 집이 겹치지 않아야 했다.
매주 방송되는 <수사반장>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험악하게 생긴 악당이 나쁜 짓을 벌인다. 하지만 뛰어야 벼룩이다. 최불암 수사반장의 뛰어난 솜씨로 범인은 꼼짝없이 잡힌다. 결론은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다. 고루한 콘셉트지만 그 시대에는 <미션 임파서블> 못지않은 긴장과 스릴이 있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수사반장을 보지 않으면 학교에서 친구들 얘기에 낄 수가 없었다.
<수사반장> 엔딩컷이 올라가면 재미없는 9시 뉴스가 이어지기에 그만 일어나 집으로 갈 것인지, 죄송하지만 더 머물 것인지 정해야 한다. 주말에는 더욱 고민한다. 뉴스가 끝나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집 분위기를 살핀다. 피곤해 보이고 졸음이 오는 눈치가 보이면 미련 없이 일어난다. 심지어 TV 보는 중에도 주인집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TV를 끄고 까치발로 살금살금 방을 나온다. 그게 이 바닥의 예의다.
다행히 운 좋은 날도 있다. "테레비 더 보고 가여."라는 말씀을 먼저 해주실 때이다. 복 받은 날이다. 어설프게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예의 바른 자세로 뉴스를 본다. 긴 뉴스가 끝났는데 또 스포츠 뉴스를 한다. 축구랑 농구랑 탁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봉창을 때리고 가는 세찬 바람이 초조한 내 마음을 흔들고 간다.
미국 서부영화가 시작된다. 점점 화면 속 주인공이 되어 간다. 내가 쏜 총알에 악당들이 우르르 쓰러진다. 마을에서 제일 예쁜 '제인'이 2층 창가에서 보고 있다. 허공에 총을 한 바퀴 돌리고 허리춤에 있는 총집에 집어넣는다. 내가 서부 최고의 총잡이가 된 듯하다. 영화가 끝나면 밤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기분 좋은 방랑 시청이 끝난다.
이제 마을에는 안평 어른이 없다. 땡볕에 일하느라 얼굴이 검게 타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수사반장>을 같이 봤던 어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 자란 허름한 우리 집은 벌써 허물어졌고 집터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마실 간 엄마를 기다리던 골목엔 차가운 바람만 분다. 만리장성처럼 높고 단단했던 담장이 곳곳에 무너져내렸다. 어린 시절 추억도 같이 무너졌다. 마을 어귀가 찬 바람 부는 빈 겨울 들판처럼 쓸쓸해 보인다. 점점 고향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모두가 텔레비전 한 대를 손에 들고 다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보고 싶은 것을 무한 반복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넘칠 정도로 풍족하지만 마음의 허기는 깊어진다. 내 안의 방랑 시청은 바람처럼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