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마음활용서"
마음에 대한 유치하고 투박한 이해들, 심지어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도 모른 채 작동하는 프레임 강압의 폭력들.
마음이 무슨 상처입은 작은 영혼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안에 다양한 마음꼬마들의 스머프세상을 그려대는 일에 여념이 없는 미디어의 지루한 묘사들.
아이들의 다양성의 가치를 알아주듯이 자기만은 모든 마음을 알아주고 지켜주겠다는 소영웅주의에 빠진, 그렇게 마음이라는 소재를 자기가 영웅이 되는 대상적 도구로 남용하는 일에 열중인 초등학교 앞 마음보따리상인들.
그래 맞아 이제는 마음이 중요해, 라며 그 중요성의 의미를 흡사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살피듯이 마음 또한 그렇게 매순간 살펴야 한다는 당위적 가치로 굴절시켜 채택하는 마음강박자들.
누군가의 성공적인 마음상태를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우리도 동일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며 세상 도처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선동해 이득을 꾀하려는 마음주술사들.
허구한 날 지겨운 트라우마 얘기, 자기는 상처받았다며 그 비극적 심상에 도취되어 그러한 정서적 효과를 자기정체성의 특별한 속성으로 부여하려는 마음스토리게임의 중독자들.
니 마음이 어떻니 내 마음이 어떻니,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사사건건 아주 예민한 신경증적 작가가 쓴 소설의 대화방식 같은 것으로 탈바꿈시켜 우리의 자연스럽고 원활한 소통을 힘들게 하는 자칭 마음의 강력한 권위자들.
이 모든 구태의연하고도 구질구질한 일들이 정말로 '마음'과 관련된 것이라면, 마음 따윈 엿이나 먹는 것이 낫다.
마루야마 겐지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집필했을 때 그는 같은 심정이었다.
인생에 대해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진리처럼 섬기며 살아갈 때, 심지어 그 길이 너무나 조악하고 하품이 나올 정도로 권태로우며 유치한 길일 때, 그런 '가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이고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라며 그는 인생이라는 것을 무한한 부정형(不定形)의 형태로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인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이 소크라테스적 진실에 입각하여, 아주 유용한 현실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수한 가짜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정말로 가짜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현실이다.
누군가가 마음은 우리 내면에 있는 선량한 작은 아이들의 집합이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그 아이들이 하나하나 다 온전한 존재들임을 이해하고 만나갈 때 마음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환하게 꽃피어 우리 마음이 풍요로워진다고 그는 주장하며, 이내 그러한 이야기들을 더 심층적인 구조로 확장해나간다. 막 노장사상과도 비교하고 불교와도 비교하는 방식으로, 동서고금의 모든 진리가 한 목소리로 이것이 참임을 밝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그 진위를 검증할 필요도 없다.
그는 그런 가짜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 말하려 할수록 원래 이야기는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법이다.
명징하게, 근본적으로 우리는 그 누구도 마음에 관해 모른다는 관점에 입각해서 봐보면,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뭔가 유치한 이야기다.
그의 정신상태가 지금 유치해서, 마음에 대한 유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유치함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 유치한데 오히려 자신이 성숙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방식으로, 우리가 유치함 속에 갇혀 있을 때만 문제가 된다. 답답해서 염증이 난다.
인생이든 마음이든 언제나 우리가 작은 상태에만 계속 머물러있을 때 바로 그것이 답답하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경험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신비가 시사된다.
인간은 왜 인생에 대해, 또 마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모를 수밖에 없는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전지한 앎으로 알게 되면 이제 규정되어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갈 곳이 없다. 영영 동일한 크기의 새장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지옥이라고 부를 것이다.
인간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최고의 재능이다.
더 큰 자유를 향해 인간이 언제나 반갑게 날갯짓할 수 있는 그 본성적 근거다.
작은 수준에서 규정되어 소꿉놀이처럼 횡행하는 그런 가짜 마음 따위는 엿이나 먹어라.
진짜는 우리가 가진 이 자유의 날개다.
인생이 자유라면, 마음도 자유다.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이론도, 공식도, 원리도, 기술도, 알고리즘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새로운 태도와 관계된 표현이다.
지금보다 더 커다랗고 싶고,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싶다.
왜 그런 소망이 생겼는지, 또 어떻게 그 소망이 이루어질지에 대해 우리는 아마도 모를 운명이겠지만, 이 소망을 향해 살아갈 때 우리는 분명 마음의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니 다 몰라도, 이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만은 안다.
또 비유하자면, 결국 마음이라는 것은 날기를 좋아하는 갈매기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일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에서의 어떤 갈매기도 자기 안의 작은 갈매기를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안갈매기구나, 이제 비행의 공식대로 이 내면의 불안갈매기를 만났으니 그 힘을 온전하게 회복해서 십자횡단비행이 가능하게 되었어! 라고 외치지 않는다.
하나의 소설얘기를 다른 소설얘기로 공박하는 일에는 분명 아무런 효용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우리의 삶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은 어느 영화 제목처럼 소설보다 이상한 것이다. 더 모르겠는 것이고, 그러니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삶이란 이처럼 삶을 공정하게 모르는 것으로 살 때 펼쳐지는 바로 그 삶의 양상이다. 어디 새로운 이세계로 데려가줄 트럭이 돌진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첫키스처럼 삶을 향해 돌진해간다.
여름이었다. 마음이.
높은 하늘로 한가득 뭉게구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한정없는 부정형의 자유가.
여름하늘에 피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에 대한 조잡하고 쩨쩨한 그 모든 얘기가 더욱 답답하게 경험되던 이들은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유치하게 느껴져도 자신이 마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괜한 얘기를 하겠냐며 창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잠시 창을 닫았어도 우리가 펼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 마음에 관한 고급활용서다. 마음을 한층 깊고 큰 것으로 경험하고 있는 섬세한 이들을 위해 유익한 읽을거리다. 또 지루한 반복을 그만 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고 싶은 이들에게도 어떠한 응답이 될 것이다.
이 연작글은 마음에 대해 제대로 한 수 가르쳐 드리겠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무협지 같은 방식으로 유치함은 더는 배가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상정해놓은 방식들과 다르게 마음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며, 그럼으로써 실제의 삶을 증진시킬 것이다.
마음 같은 것을 살피고, 챙기고, 신경쓰고, 돌보고, 알아주고, 수용하고, 구원하며, 품어주어야 하는, 매우 성가시고 피곤하기만 한 삶은 이제 끝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런 마음 따위는 정말로 엿이나 먹어라.
마음이라는 것이 상정되었을 때 그로 인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더 늘어난다면 그런 것은 없는 것이 낫다. 다행인 것은 '그런 마음'이란 원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성가신 짐덩이로 생각하는 이들이,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엿을 날리고 싶은 이들이 바로 그런 마음들을 발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발명품으로 남들도 힘들게 한다.
우리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쌈마이 같은 것이 마음이라면 마음이라는 것 없이 행복하게 사는 고급의 현실을 택할 것이다.
이 연작글은 우리가 살고 싶은 그 고급현실을 비추어볼 수 있는 일종의 문화비평적 보고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심리학적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존주의 심리학은 역사적으로 바로 그 일을 유려하게 수행해온 바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가짜들을 비워내고 진짜를 채워넣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마음에 대한 확정된 모든 언술은 다 가짜다. 이 세상 누구나 직관하고 있는 진실을 말해보자.
이 세상에는 비워질 수 있는 것만이 진짜다. 그런 것만이 진짜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폐가 비워질 수 없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짜들로 채워져있던 자리가 비워진 바로 그 공간에서 우리 각자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없는' 것을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어떤 것들은 없는 게 낫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내면에 꽉꽉 들어찬 스머프왕국을 만들기보다, 파란 하늘처럼 한없이 펼쳐져있는 공간을 원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자유가 그리워서 저 하늘 끝으로 아득히 달려가고픈 이들. 우리는 그 마음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