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신왕국의 대서사시"
인간의 역사를 관장하던
대신이 있었다
그녀는 주신 중의 주신
모신(母神)이었다
인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녀의 지배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인간이 쌓은 모든 문명은
그녀의 통치하에 이루어진
모신왕국의 문명이다
그녀가 왼손에 든 것은
인과론이라고 불린다
그녀가 오른손에 든 것은
목적론이라고 불린다
인과론은
과거에 대한 결정론이고
목적론은
미래에 대한 결정론이다
너는 이 어미로부터
인과했고
어미를 통해 모든 아이가
행복하게 될 현실을
목적해야 할지니라
그것이 네가 태어난 이유며
네가 살아야 할 목표다
신성한 운명이 생겨났다
황금의 족쇄가 발명되었다
자유는
거칠고
무례하고
폭력적인 것
야만과 동의어가 되었다
황금의 족쇄는
감옥 안에
끝없는 싸움을 만드는 데
능률적으로 이바지했다
인과론과 목적론은
싸움없는 곳에도
싸움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전략병기였다
영웅들은
인과론과 목적론에 따라
자기들이
그녀의 참된 자식임을
증명하기 위해
싸움의 과업들을 수행했다
대지 위에
젖처럼 피가 흐르고
강물 위에
꿀처럼 살점이 진득할 때
성직자들은
그녀와
그녀에 대한 숭배의 결과들을
분리하려고 시도했다
마녀들은 결코
어미가 될 수 없는 것들
사악한 존재들
이 세상에 존재치 말아야 할 것들
성모(聖母) 대신에 여성은
희생되기 시작하였다
화형대에 불이 마를 날이 없고
세상은 뜨겁고 또 뜨거웠다
인과론과 목적론에 따른
싸움과 처벌의 기제는
최고의 화력발전의 동력이었다
자기를 놓고 이루어지는
형제자매들의 대립과 갈등은
그 중심에 정좌한 어미에게는
언제나 흐뭇한 미소였다
분열은 어미의 힘이었다
분열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성대하게 불타오를 때
어미의 뺨은 홍조를 더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나는 벌겋게 살아 있는 한
나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가 가진
영생의 소망이었다
아니 영생의 당위였다
인과론과 목적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자유를 봉쇄하고
그 대신
어미가 영생할 당위를
출범시켰다
충성스러운 자식들은
그 영생의 아름다움을
함께 노래했다
어미에 대한 오래된 신앙
고대 모권사회의
주술논리로부터
중세의 연금술이 태어났다
이 인과론과 목적론의
구체적인 신앙형태인
연금술을 다시 취해
헤겔은 역사변증법을 만들어
갈등하는 모든 것이
연금술의 항아리와 같은
모태의 자궁 속에서
통합의 현실을 이루어가는
구조를 발명하였다
마르크스는 큰 형을 이어받아
역사통합을 당위로 노래하며
결국에는 엄마의 품 속에서처럼
모두가 다 평화롭게 지내게 될
유토피아를 예언했다
막내인 융은 더 과감하게도
자기 엄마는 원래 신이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에
자기 엄마를 합류시킨
사위일체설을 주장하였다
모든 것이 다
어미의 영원불멸성을 당위로
외치기 위함이었다
과거에 묶는 인과론과
미래에 묶는 목적론이
아무리 자유를 상실하게 해도
그 현재는 늘 분열이 만든
싸움과 처벌의 뜨거움으로만
덮인 지옥이라 할지라도
엄마가 죽어서 사라진다면
그곳은 지옥만도 못하다며
어미의 아이들은 격하게
부르짖고 있었다
자기 엄마의 영생을 위해
다 함께 지옥에 가자며
인류를 상대로
전쟁을 걸고 있었다
뜨거움만을 계속 만들어
그 열기 속에서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감각이라며
당차게 죽음을 거부하고자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웃픈 시간들은
고집스럽게만 퇴적되어 갔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붓다는
인과론과 목적론을 동시에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선택하였다
인과론과 목적론이 만드는
당위의 뜨거움의 반대편에
자유의 선선함이 있다는 걸
붓다는 일찌감치 눈치채었다
자유는 그 죽음의 자리에
존재했던 것이다
황금의 족쇄에 매인
모신의 노예로 평생 사느니
차라리 죽더라도
나는 스스로 자유롭겠다
붓다가 가출한 그 이유다
예수는 더 직접적이었다
니 어미로부터 미움받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길이다
모신왕국의 모든 논리를
예수는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40일간의 광야의 시험은
모신의 시험이었다
"우리 예수 하고 싶은 거 다 해"
엄마 같은 자기만 따르면
인기도 얻게 해주고
돈도 벌게 해주며
최고의 권위를 얻게 해준다는
그 시험에 예수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사람이 SNS의 좋아요로
사는 거 아니거든"
인터넷은 모신왕국이 낳은
최대의 걸작품이다
모두가 다 모신이 되어
사람을 신처럼 띄우거나
악마처럼 추락시킬 수 있는
모신의 권능을 체험한다
실존주의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이 모신왕국의 문명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이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이다
인과론의 족쇄와
목적론의 족쇄에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실존주의는
단독자가 되고자 한다
단독자
그것은 자유의 이름이다
신의 속박에서 풀려난
인간 본연의 이름이다
신은 많고 많지만
실은 하나의 신이다
모신만이 유일신이다
종교전통들에서
개념적인 유일신이 정말로
유일신이었던 적이 없다
유일신은 언제나 인간에게
자기 엄마였을 뿐이다
가부장제도 표면적 연극이며
가부장의 수호자들은
그저 엄마의 충성스러운
사내아이들에 불과했다
외디푸스도
엘렉트라도
아빠를 대상화해
엄마를 성취하려는
모신숭배의 방식이다
그렇게
모든 아들은 실은
엄마로부터 자유롭고자
투쟁하며
모든 딸 역시도 실은
엄마로부터 자유롭고자
투쟁한다
그것을 얻거나
그것과 동일시되면
이제 더는 그것이
자기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믿고 싶은 까닭이다
남성도 여성도
서로와 싸우고 있지 않다
남성은 여성 뒤의 모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며
여성은 남성 뒤의 모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모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단지 당위성이다
생명에 대한
모든 억압의 명령은
모신에게서 나온다
인간에 대한
모든 싸움과 처벌의 논리는
모신에게서 나온다
절대적 독재의 왕국이다
지구 위에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는
엄마 기운이 넘치는
모신에게 빙의된 이들이다
주술적 모권사회에서
연금술적 정신구조를 거쳐
인터넷 세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늘 독재에 시달려왔다
독재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졌던
모권주의 연금술 인터넷이
실은 독재의 주체였다
집 밖에 있는 이들은
다 너를 병신취급한다던
엄마만이 나를 유일하게
병신취급하던 이였다
자식이 무능해져야
왕권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약해져야
나아가 인간이 자기의 약함을
예찬하기까지 해야
신은 그 뿌듯한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
그리 결심하며
오늘도 광야로 뛰쳐 나가는
인간이 있다
그들은
붓다고
예수며
자기 자신이다
단 하루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고픈
인간 중의 참인간이다
모신왕국의 대서사시를
끝낼 이들은 바로 그들이다
엄마가 침대 머리맡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어
대대로 착하게 전승시킬
그 어떤 이야기도 아니고자
이야기를 다만 끝낼 이들이다
기나긴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그 즉시 온몸을 휘감아오는 것
자유다
자유란
우리가
모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수한 예언자들이
얼마나 간절히도
이 말을 하려 했던지
우리는 신 너머에서 왔다
우리는 신 너머의 것의 아이다
지구가 모신의 영토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영토를 포함하는
더 거대한 존재의 영토에서 왔다
작은 것에서 죽음으로써
우리는 더 거대한 자신의 면모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에게 모신이 인형옷을 입혀
자기의 자식처럼 만든 것이
바로 자아다
그래 자아가 모신의 자식이라면
자아는 죽자
자아로 사느니 차라리 자아는 죽자
자아가 죽은 자리에서
자유가 살게 하자
자유로 다시 태어나자
광야로 나가보자
우리가 모신으로부터 받지 않은
분명하고 유일한 것
마음씨를 뿌려보자
이 세상 그 어떤 독재자라도
막을 수 없는
이 지구 그 어떤 신이라도
억압할 수 없는
네 마음을 가진 너는
자유다
너는 자유다
네 눈앞에서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너는 자유다
자유를 대표해서
알리라고
너는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