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깨달음 #102

"당신이 창조할 때"

by 깨닫는마음씨


아주 큰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항아리 안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자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늘 끔찍하게

무서워지곤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깜깜하게 펼쳐진

그 공간이

무한한 것만 같아

늘 숨막히는

폐색감에

위축되곤 했습니다


자신을

깨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독한 번민 속에서

항아리는 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만을 붙잡은 채

형편없이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또 다른 길도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며 살던

항아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꽃들의 속삭임과

바람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항아리는 왠지 모르게

알 것만 같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문득 자신의 안이

궁금해진 항아리는

한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항아리는

보았습니다


무한한 공간을

완전히 가득 메운

항아리를 향한

사랑의 찬송과

기쁨의 기도를


항아리는

온전함의 노래로

가득 가득

넘치고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를

우주라고도 부르고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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