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소소하고 하찮은 글을 써 내려가던 중,
어느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ㅋㅋ 글을 보니 누군지 알겠다~^^ 다음에 비행 때 봐요~^^‘
내 브런치 글과 프로필 사진의 뒤통수만 보고도 내가 누군지 처음으로 알아맞힌 기장님이 계셨다. 딱 한번 같이 비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봐 주신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면서, 내 뒤통수에 독특한 매력이 있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뭔가 정체가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님과 비행이 나왔고 그제야 나를 알아보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취미가 비슷했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장님은 비행 책을 내셨고
나보다 주식 수익률이 한 32배는 좋으신...
아니, 아무튼
글쟁이는 글쟁이를 알아보는 것일까, 글이라는 취미 하나로 기장님과 나누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그 후 기장님과 비록 비행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사석에서 따로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늘 아쉬웠던 것은 비행.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친한 사람과는 업무로 엮이면 안 된다는 말. 하지만 나에게 비행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친한 기장님과 비행을 하게 되면 안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 연구해 본 것들을 실제 비행에 적용해 볼 수가 있고 그중에는 실제로 평소에 내가 하던 조작보다 더 매끄러운 것도 있었다.
그런 와중 연말의 선물이었을까.
기장님과 12월 말, 드디어 비행이 나왔다.
일본을 퀵턴으로 들렀다가 부산에서 체류하는 스케줄.
비행 당일,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니 다음 비행까지 꽤 여유가 있었고 기장님과 나는 면세점에서 과자 같은 것을 사기 위해 나갔다.
가끔 인천국제공항에 외국인 조종사가 캐리어 없이 게이트 앞 면세점들을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비슷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승무원인 경우 150불까지 면세 한도가 인정된다. 주류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어차피 나리타 공항에서 과자를 싹쓸이할 생각이었기에 기장님과 타임어택 쇼핑을 시작했고, 거의 일주일치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질소포장 된 과자, 이미 가득 찰 대로 차버린 캐리어에 과자를 넣게 되면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 올라갔을 때 과자 봉지가 부풀어 오른다. 보일의 법칙이라 하는데, 일정한 온도 조건에서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하는 것이다. 더 설명을 했다가는 나의 지식의 밑천이 금방 드러나니 과학 공부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어쨌든 김해공항에 착륙할 때까지는 어찌저찌 큰 탈 없이 들고 왔지만, 문제는 김해공항에서 다시 김포공항으로 올라올 때였다.
이때 캐리어는 최선을 다하는 상태인데,
1. 1박 2일 치의 짐
2. 나리타 공항 면세점에서 산 과자들
3. 호텔에서 받은 식권으로 교환한 파리바게트 빵들
이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하는 캐리어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캐리어가 기장님의 캐리어보다 큰 사이즈였고, 아이들 과자까지 구매하신 기장님과 다르게, 나는 아내와 나의 과자만 있었기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기장님과 부산에 체류하면서 맛있는 걸 먹고 돌아가는 길, 기장님께 말했다.
“기장님 제 캐리어가 여유가 좀 있어서 혹시 내일 캐리어 터질 것 같으면 말씀하세요. 좀 들어드릴게요.”
“그래그래 고마워, 내가 한번 해보고 정 안되면 SOS 칠게.”
그리고 다음날,
혹시나 기장님께 연락이 올까 하여 출근 전까지 캐리어 정리를 미루다가 연락이 없으셔서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였다.
나보다 캐리어 크기가 작으시고 짐이 많으실 텐데, 어떻게 잘 정리가 되신 걸까? 혹시 기장님께선 테트리스의 달인이신건가? 아니면 모든 과자에 구멍을 뚫어 부피를 줄이는 최후의 방법을 쓰신 건가?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 멀리서 걸어오시는 기장님이 보인다. 어미거북이가 아기거북이를 등에 업은 것처럼, 기장님 캐리어에는 과자봉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아니 기장님,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망고야, 내가 아까 나오기 전에 캐리어를 정리하는데 너무 정리가 잘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근데 너무 딱 들어맞게 짐이 들어가서 나오 려는데, 저기 내 신발이 밖에 있더라. “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장님, 이게... 약간 세상일도 그렇고... 제 뜻대로 뭔가가 잘 되어가고 있으면 분명 뭔가 잘못되어있는 거예요. “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
세상일이 그렇다.
뭔가가 잘되어가고있으면....
항상 의심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혹시 독자분들이 구매한 주식이 너무 잘 오르고 있다면
꼭 의심을 하시고, 종목을 저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주시면...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