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나라로 날아가서 창가에 선 적이 있다. 사진은 그곳의 바다와 닮았다. 지구가 뒤집어지면 같은 자리로 올 지 모를 바다. 아무튼,
창가에 서면 온갖 장면들이, 예고 없이 허리춤으로 치고 들어온다. 장면들은 소리로, 이야기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냄새로, 공기로 내 방을 덮친다. 나는 그것들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생은 어쩌면, 창가에 서 있는 짓이다. 대학교에서의 첫 방학, 새시와 창을 달아대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술에 취해서 큰 공장의 높은 창가에서 추락할 뻔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날개가 없지만. 그 창은 공원들을 위한 창이 아니었다. 공원들은 그 창가에 설 수 없었다. 창을 설치하는 나만이 오직 창가에 설 수 있었다. 내다보이는 것은 마찬가지 우리의 삶. 내다보는 나는 작가가 되어 글을 쓴다. 밤이 되면,
진짜의 밤이 된다면, 아무것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내가 창가에 서서 보는 것이라곤 그저 창에 비친 내 모습, 그래 밤은, 나를 가지고 왔다. 창가에 서서 나는, 나를 옮겨내는 작가가 된다. 이런 작가나 그런 작가나 작가는 매한가지. 창가에 서서 나는,
선생님과 선배들이 창가에 서서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을지를 떠올리면 잠시,
운다.
작가라고 불린 순간마다, 매 순간마다 흠칫 놀라면서 돌아다보았을 선후배들이 창가에 떠오른다. 커튼을 슬쩍 젖히고 내다본다. 저것은 불빛. 사람들은 불빛을 가리키지만 내게 저것은 밤빛. 칠흑 같은 밤을 내다본다. 밤에 새겨진 내 얼굴을 본다. 밤은 내 얼굴 위에, 지치지 말거라, 창가에 선 것은 네 선택이었다, 밤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전망 좋은 방 창가에 서서 밤처럼 짙은 이슬람의 차를 마신다.
창 아래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기억에 나는 아마, 담배를 끊었던 같다. 저 바닷물이 똑같구나. 해지는 케이프타운의 물과 제주 고산리 3760 물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