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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Feb 28. 2024

[호스텔 탈라베라] 적당히를 모르는 순수, 헤수스

[호스텔 탈라베라] 적당히를 모르는 순수, 헤수스

럭셔리하게 굶주리는 중

호스텔 탈라바라에 머무는 여행자나 직원들은 가장 저렴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매 끼니 직접 해먹는다. 

나도 직접 해먹어도 되지만, 파스타 같은 간단한 것을 해먹으나, 사먹으나 별 차이 없기도 하고, 해먹으려면  생각보다 필요한 것이 많다 기본적으로 소금이나 설탕 식용유같은 것을 사기도 애매해서, 대충 때운다. 

아침이나 점심에는 컵라면이나 아메리카노를 숙소에서 사먹고, 하루 한두끼는 간단한 타코나 햄버거를 먹는다. 숙소에서 사먹는 컵라면은 30페소, 아메리카노는 20페소로 한국돈으로하면 2400원, 1500원 정도 한다. 가장 간단한 아침이 타코 두개 값이지만, 너무 얄밉게 굴지 않으려고 적당히 숙소에서 사먹는다.  다른사람들은 저렴하게 열심히 해먹으면서도, 과일이나 고기를 빼놓지 않고 잘 챙겨먹는 것에 반해 나는 럭셔리하게 굶주리는 중이다.    


부모님과 싸워 4개월 장기투숙중 - 헤수스  

이 숙소에서 나와같이 굶주리고 있는 또 다른 친구가 있는데, 헤수스라고 가장 어린 멕시코 남자다. 부모님과 싸워서 4개월째 탈라베라에 살고 있다.  아마 나랑은 20살 가까이 차이나지 않을까 싶은데, 얌전하고 조용하고 어려서 모두가 먹을때마다 챙겨준다. 하루는 아침을 먹으러 올라왔다가 헤수스가 아침을 커피로 때운다길래 초콜렛 쿠키를 나눠줬다.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먹고남은 쿠키로 초콜릿 쉐이크를 만들어서 얼려놨다가 예쁘게 장식해서 돌려줬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이후로 헤수스는 가장 편한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많아서 숙소에 항상 있기도 했고, 말은 안통해도 푸에블라 근처에 좋은 곳을 이곳저곳 소개해주기도 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쁜 어른들 보다는 시간이 많은 헤수스에게 물어봤다. 오랜만에 숙소 사람들이 다 나가고 헤수스와 나만 있던 날이었다. 헤수스가 점심을 어떻게 먹을꺼냐 물어와서, 이참에 점심한끼 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100페소 짜리 뷔페에 가자

"나는 매일 타코와 브리또만 먹어, 니가 멕시코 음식을 추천해 주면, 점심은 내가 살께."

"같이 먹고 오자."

이렇게 제안했다. 헤수스는 100페소면 뷔페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 가자고 했다. 100페소면 한화로 8000원 멕시코에서는 저렴한 식당인 편이라서 따라나섰다. 

그날은 강의 준비로 하루종일 바쁜날이었는데, 갑자기 헤수스가 버스를 잡아탔다. 

'그래 멕시코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도 버스를 타니까 뭐.'

그런데 30분이 지나도록 내릴 생각을 않는다. 아. 오늘 일하기는 글렀구나, 포기할 무렵 낯선 동네에서 내렸다. 

돈낼 준비는 됐겠지?

한눈에도 지금까지 본 멕시코와는 판이하게 다른 부촌이었다. 집집마다 차고가 몇개씩 있고, 코너마다 잘꾸며진 바나 식당이 있었다. 한국으로쳐도 부촌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과도한 친절은 역시 해로운 것이었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돈낼 각오를 단단히 하면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은 뷔페도 아니었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식당들을 모아서 만들어놓은 힙한 푸드코트같은 곳이었다. 

적극적으로 나를 이 먼곳 까지 데려온 헤수스는 도착하자마자 잔뜩 주눅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안통하는 말이 더 안통하게 되었다.  답답해진 내가 영어하는 직원을 물어서, 음료를 먼저 주문했는데, 아무리 헤수스가 마실 음료를 주문하라고 해도, 음료를 주문하지 않았다. 

틱톡에서 본 식당인데,  점심 특가 같은 것을 봤던 것 같다. 헤수스는 낯선 분위기와 비싼 가격때문에 잔뜩 움츠러 들어서 음료도 주문하지 못하고, 계속 메뉴만 공부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동양인인 내가 쌀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비싼 스시를 싸게 먹을 수 있는 곳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식당에서 캘리포니아 롤세트와 라멘을 먹었다. 헤수스가 말한대로 일인당 100페소 정도로 일본식당중에서는 매우 저렴한 편에 속했다. 물론 캘리포니아롤은 너무 현지화 되어 일본음식은 아니었다. 연어한점없는 김밥과, 볶음밥 바나나 치즈튀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라면은 인스턴트라면에 김과 계란 고기를 가미한 것이지만 그런대로 맛있고, 양도 많았다.      

왠지 부끄러워진 헤수스는 너무 배가 부르다면서 자신의 라면까지 먹으라고 자꾸 권했다. 남이 먹던 라면을 먹기 싫었던 나는 극구 사양했지만, 다 먹었다면서 거의 손도 대지 못한 라면을 권했다.  말도 없이 너무 멀리까지 대려온 벌로, 나는 내음식을  맛있게 다 먹고, 배부르면 남기고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정신없이 라면을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내가 남긴 볶음밥까지 깨끗이 먹고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20대 중반은 되었겠다고 생각한 헤수스가 그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를 막지나서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탈출해 이제막 세상의 쓴맛을 보기 시작한 나이 같았다. 

  

믿을꺼야? 당할꺼야?

철없이 거의 한시간이나 떨어진 곳으로 데려간 분별 없음과 아마도 내가 가장 원할 것 같은 스시를 찾아나선 순진함, 오늘을 계획대로 보내지 못하게 만든 괘씸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분별있고, 적당히를 알아버린 내가 아쉽기도 했다.  좋은 것, 행복한 것을 적당하지 않고, 무모하게 헤수스 처럼 찾아나서지 않는 것이 과연 분별을 알게 된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간 우리는 해가 지고 겨우 돌아왔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을때 해수스는 번역기로 30페소만 빌려달라고 했다. 안그래도 괴씸한 마음이 들었는데, 돈을 빌려달라니 역시 외국인과의 관계는 어렵다. 

그래도 사람을 믿는 것은 언제나 나를 지키는 힘이기에 마음속으로 제발 돌려줘라고 기도하면서, 20페소만 빌려줬다. 

갈림길 위에 서 있는 호스텔 탈라바라는 이 미묘한 위치처럼 언제나 선택을 강요한다. 믿을 것인지, 당할 것인지. 오늘은 믿을 것을 선택했지만, 내일은 당했다고 생각할지 알 수 없다.  오늘은 믿어보기로 했다. 분별없는 순수함을

그리고 그 순진한 마음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반짝이는 금빛 새 동전으로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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