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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Mar 06. 2024

늦깎이 문과생, 캐나다 카트 알바에서 개발자가 되다

인생 참.. 알다가 모르겠네요.

취업 실패 후 생계유지로 했던 카트알바가 제게 개발자가 될 기회를 줄 기회가 될지 몰랐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기회와 선택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캐나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안 돼서 공항에서 카트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알바라기보다는 캐나다 와서 얻은 첫 정직원 직업이었습니다. 돈 많이 버는 용접 인스펙터가 되겠다는 목표는 점점 희미해져 갔고 반올림하면 시급이 2만원 정도여서 나름 만족하면서 일했습니다.


공항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정말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예의 없게 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죠. 차 경적을 울리는 사람, 네가 하는 일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하며 공항으로 들어가는 사람 등...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인프제인 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상처를 많이 입곤 했는데, 그럴수록 빨리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중국인 동료의 결정

그렇게 약 1년 반 동안 근무하고 있었을 때, 평소 이야기를 나누던 중국인 친구가 파트타임으로 전환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유인즉슨 IT 계열로 직업 갖기 위해 공부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저보다 나이도 3살 더 많고, 어린 딸도 2명이 있고, 그의 와이프도 공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이런 리스크를 갖고 와이프와 같이 공부하려는 용기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같이 일할 때마다 계속 IT 직업에 관해서 물어봤어요. 와이프도 파트타임이고 아이도 2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비전공자도 IT 분야에 취업할 수 있는지 말이죠. 한국에서는 전혀 관심 없는 분야였고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야지 일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저도 매일 퇴근 후 코딩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두 기회

때마침 저는 슈퍼바이저 자리로 진급할 수 있는 추천을 받았고, 더 이상 영하 30도가 되는 밖에서 일하지 않고 시급도 조금 오르며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었기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비전공자를 위한 무료 IT 취업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는데, 오일/가스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다양화를 모색하기 위한 앨버타 주정부의 첫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신 영주권자, 그리고 무직자 혹은 파트타임인 사람들만 지원할 수 있었죠. 정말 우연히도 며칠 전에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영주권을 받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두 개 다 모두 지원해 보고 되는 거 위주로 하자'는 생각에 IT 프로그램과 슈퍼바이저 진급 인터뷰를 모두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둘 다 합격이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슈퍼바이저로서 진급하는 날과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도 같은 날이었어요... 모두 합격해도 기쁘긴커녕, 내적 갈등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갈등 그리고 아쉬운 결정

무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슈퍼바이저 직을 포기하고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거나 그만둬야 했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인프제이시면 아실 거예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몇 백개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었죠. 그리고 와이프는 당시 임신 중으로 곧 육아휴직을 갈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학생이 된다면 얼마 안 되는 와이프의 월급으로 모두 경제적인 충당을 해야 했어요. 두 갈래 길에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도 갈등할만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편한, 24불의 시급을 주는 슈퍼바이저로 일하면서 공항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커리어 전환을 위한 과감한 행동을 할 것인가... 와이프와 뱃속 아기는 어떻게 먹여 살리지? 안정적이지만 평생 공항에서 무례한 고객을 대응할 자신이 있을까?'


결국 고민 끝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학교로 가서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바로 공항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근데 뭔가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와이프와 뱃속의 아기를 위한 결정이었지만, 뭔가 안타깝고, 찝찝하고, 내키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영주권도 프로그램 시작 전에 때마침 나왔고, 나보다 더 큰 리스크를 가지며 공부하는 중국인 친구 부부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는 걸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날 밤을 새우면서 머리가 과부하가 될 정도까지 고민하다가 다음날 새벽에 다시 공항으로 차를 움직였습니다. 마음은 두근두근 떨렸지만, 이제 막 출근한 부장님께 학교 입학이 되어서 죄송하지만 이 직무를 포기해야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나서 부리나케 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직 제 자리가 남아있길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찔금 흘렸던 눈물

수업을 받고 있는 교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면목이 없었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같은 반 친구들은 저를 보고 박수를 쳐주었고 다행히도 제 자리의 이름표는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찔금 눈물이 났어요. 계속 불안한 건 사실이었지만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 제 자신에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응원해 준 와이프와 같은 처지에 이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반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습니다. 프로그램을 수료하기 전 아이가 태어났고, 인턴쉽이 잘 구해지지 않아 불안한 날은 여전했지만 결국 여차저차해서 무급 인턴쉽 기회를 가졌고 그 경험이 스타트업, 그리고 지금의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사실 계획대로 라면 용접 검사원이 돼서 지금 다니는 정유 회사에 일하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엔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프제가 깨닫길.. 결국 '계획'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저의 취업 성공기라기보다는 이런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캐나다에 오기 전에 고심해서 짰던 계획들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알 수 없이 펼쳐지는 우연과 선택으로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 너무 미래를 상세히 계획하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뜻밖의 기회는 언젠간 올 거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을 한다면 그 과정은 불안하겠지만 여러분들이 원하는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도 있을 겁니다. 이런 기회들을 미리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지만 불안하더라도 묵묵히 관련 경험을 잘 쌓는 것이 나중에 여러분이 취업하시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 후 이야기

코로나가 터지면서 공항은 인원을 많이 감축했고 결국 안정적이라 믿었던 제가 있었던 부서는 폐지 되었습니다. 같이 카트를 정리하던 옛 동료들도 모두 해고되었죠... 그리고 같이 IT 공부를 했던 중국인 친구와 그의 아내는 현재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3명 모두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저는 그의 와이프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고요.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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