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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새 발을 뻗고
by omagine Nov 15. 2018

03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청페페

제주에 불현듯 왔다.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에 사흘을 묵으니 다섯 달을 회사도 안 가고 내리 놀면 마음에 빈 공간이 얼마나 생기는지 체감할 수가 있었다. 나는 통성명도 안 한 게스트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고 하루 종일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묻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밥집 정보를 나누었다. 또 삐걱거리는 매트리스와 오래 앉으면 허리가 뻐근한 좌식 테이블에 불평 하나 품지 않고 사흘 내리 술을 마셨다. 어딘지 허술한 큰 집에 정을 붙였다. 그러다가 어느 발 넓은 게스트와 어쩌다가 반나절을 같이 놀았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사람은 처음과 끝 밖에 없다. 그래서 제주의 명소도 입구와 출구만 붐빈다. 


나도 그런 병이 있다. 0 혹은 100밖에 없는 병이라고 스스로 일컫는다. 무얼 꾸준히 하려고 하면 잘하지도 못하는데 왜 해, 하는 생각이 불쑥 솟는다. 그래서 그림도 그리다가 말고 또 한참 그리다가 말고, 글도 쓰다 말고 한다. 계속해야 느는데 그 계속을 못 한다. 100 아니면 안 하는 게 좋다, 이런 마음이 있었다. 


우스운 게 100이 되려면 결국 0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2, 3 정도만 깔짝깔짝 갔다가 관두니까 얼마 안 있어 또 0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속의 목소리가 역시 너는 0이야, 100까지 갈 생각도 마라, 한다. 몇 년 뒤에 보면 나는 계속 0인데 같은 시기에 새로운 걸 시작했던 사람이 70, 80 이렇게 가 있다. 그걸 보면 나도 꾸준히 했으면 저렇게 되었을 텐데, 싶다가도 아냐, 난 어차피 0이니까, 하고 손 놓고 가만히 있다.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잘 보면 죽은 흑고무나무가 그렇게 살았다. 온실은 100이고 우리 집은 30 정도였는데 거기에 맞출 생각을 않고 그냥 죽었다. 완벽한 환경일 때처럼 번성은 안 해도 좋으니까 대충 살아있었으면 잎사귀를 잘라다가 물꽂이 해서 새로 뿌리도 내리게 하고, 그 줄기 하나로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흑고무나무는 아무 여지없이 완벽하게 말라죽어서 0으로 돌아갔다. 



화분을 여럿 곁에 두고 보니 30 정도에 맞춰 대강 사는 식물도 있었다. 


내가 페페를 미워하는 까닭은 0 아니면 100밖에 없는 병에 걸린 내 성미와 도통 안 맞기 때문이다. 검은 고무나무가 안 말라죽었으면 하는 조로 글은 썼지만 사실 나는 꼬장꼬장하게 버티다가 죽은 고무나무를 그리워하고 대충 살아 있는 페페를 미워한다. 


청페페는 말라죽은 유칼립투스 화분의 다음 입주자로 들어왔다. 며칠간은 비싼 유칼립투스를 말려 죽인 속 쓰림도 잊고 어떤 걸 심을까 고민을 했다. 


식탁 아래 조르르 세 화분을 놓아두었는데 창가로부터 유칼립투스, 테이블야자, 스노우 사파이어 순이다. 야자와 스노우 사파이어 둘 다 잎새가 길쭉하고 뾰족해서 유칼립투스의 후속주자는 둥근 잎을 가진 것으로 하자 싶었다. 아주 동그란 잎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것이 글로리아 페페다. 핀터레스트에 식물이나 인테리어 따위를 검색하면 꼭 주황빛 거친 토분에 심긴 글로리아 페페가 있다. 이름을 찾으려고 인터넷에서 고군분투했다.


글로리아 페페는 필리아 페페, 물방울 페페라고도 부른다. 생김이 신기한만큼 기르기 까다로운 식물도 있는데 글로리아 페페는 무난하게 잘 자란다고들 했다. 집에 들이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다. 문제는 어디서 구해 오는 가다. 강남권에 이사 오고 나서 몇 안 되는 기쁜 점이 양재 꽃시장과 드디어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슬프게도 화원의 상인들과 나는 같은 시간표를 공유했다. 말인즉슨 내가 퇴근하면 화원 분들도 퇴근한다. 주중에 아무래도 양재에 갈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보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택배는 영 귀찮았다. 화분과 식물이 상하지 않게 어마어마한 양의 완충재를 넣어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 상자가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는 바람에 택배 상자 안에 흙먼지가 가득하다. 포장을 다 풀고 난 박스와 완충재를 곧바로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어버리는 것도 마음이 그래서 택배는 되도록이면 안 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면 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글로리아 페페를 포기하고 대신 접근성이 높은 다른 페페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제일 흔한 것은 청페페였다. 대신 모양도 흔했다. 잎사귀를 그려보세요, 하면 누구나 그릴만 한 평범한 잎사귀가 바로 페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검붉은 테를 두른 홍페페가 보이면 사기로 마음을 먹고 또 어느 저녁 골목 어귀의 동네 화원을 찾았다. 


아줌마와 나는 쭈그려 앉아서 여러 추천품목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페페는 있고, 또 테이블 야자가 있고(그건 저 이사 와서 여기서 하나 샀어요), 또 잘 안 죽는 걸로 아이비가 있고, 크루시아가 있고, 그러나 예상한 것처럼 홍페페가 없었다. 


홍페페에 대한 정확한 열망보다 무엇이라도 새로 들이는 즐거움이 더 고팠다. 내가 바란다고 판단한 이상적인 뭔가를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비슷한 상품을 비교하는 것마저 골치 아파서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도 인상을 찌푸리고 모든 브라우저를 꺼버리는 나날이었다. 시간을 들이면 완벽한 것을 구할 수 있지만 노력을 감당하기 버거워 아예 관둬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브라우저와는 달리 청페페는 바로 내 눈 앞에 있었고 이번에는 0 아니면 100밖에 없는 병이 발작하지 않아서 나는 아줌마에게 현금 3천 원을 건넸다. 묘하게도 화원을 들릴 때마다 지갑엔 천 원짜리가 적당히 있었다. 


검은 봉지에 담긴 페페는 무게감도 없었다. 그걸 달랑거리면서 집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천천히 걸었다. 분갈이를 할 곳이 주차장밖에 없다. 주섬주섬 필요한 것들을 들고 집을 두어 번 들락날락했다. 꽃삽은 없다. 하여 손가락으로 대충 화분에 있는 흙을 신규 입주자의 뿌리가 들어앉을 정도로만 파고 페페 모종을 얇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쑥 꺼냈다. 작은 구덩이에 페페를 대충 끼워 넣는다. 분갈이 흙으로 위를 살살 덮었다. 


작은 모종은 따로 보니 귀여웠는데 화분에 넣어두니 초라하다. 궁합이 엉망이다. 일전의 유칼립투스는 일직선으로 쭉 뻗은 상승감이 사각 화분의 안정감과 퍽 잘 어울렸다. 청회색의 작은 잎사귀들과 가는 줄기의 청초함도 두툼한 느낌의 화분과 대비되어 보기 좋았다. 그런데 페페는 회청색보단 노란 녹색에 가깝고 키가 크지도 않다. 모종이 작아 화분 끄트머리에 겨우 턱을 걸치고 있는 몰골이 부잣집에 눌러앉은 셋방살이 군식구 느낌. 나는 약간 후회했다. 마음이 급해 영 걸맞지 않은 식구를 들인 것에 대해.


화분을 들고 올라와 식탁 옆 원래 자리에 놓으니 또 웃기다. 길쭉한 잎사귀를 쭉 뺀 옆자리 동료들에 비해 너무 땅딸막했다. 나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페페의 못마땅함을 한참 감상했다. 지금은 조그매서 그렇지 더 크면 멋있을 거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워낙 잘 자라는 식물이니까. 줄기가 쭉쭉 뻗어 위풍당당하게 자랄지도 몰랐다. 


일주일 정도 우리 둘은 탐색의 시간을 보냈다. 보통 분갈이를 하거나 사는 장소를 옮기면 식물들도 낯을 가린다. 나도 관찰 기간이 필요하다. 식물 자체의 성격, 흙의 특성, 화분의 특질, 우리 집의 채광과 통풍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페가 입주한 화분은 유약이 발린 도기인데 유약이 흙이 숨 쉬는 것을 한 겹 코팅해서 물 마르는 속도가 더디다. 더군다나 나는 흙에 마사토라고 하는 조그만 돌멩이들을 섞지도 않았다. 그럼 화분이 입자가 작은 흙으로 꽉 차게 되는데 이것도 물이 더디 마르는데 한몫을 한다. 페페는 물을 자주 안 먹는 식물이다. 그런 애가 습기 찬 흙에 뿌리내리고 살려니 죽겠는 모양이었다. 두꺼운 줄기가 금세 물러져서 자주 드러누웠다.


그럴 때 줄기나 잎을 손으로 만지면 물컹한 느낌이 난다. 이러다가 저 세상으로 가면 과감히 버리고 화분에 걸맞은 새 식구를 들여와야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방치했다. 과습엔 약이 없어서 그냥 한 달 동안 물을 안 줬다. 그랬더니 무른 줄기가 다시 단단해지면서 똑바로 선다. 어이가 없었다. 식물이 무르면 그 부분은 말려 죽이고 말짱한 부분에서 새 잎을 내는 게 보통인데 페페는 뭐가 그리 아까운지 잎 하나도 떨구지 않았다. 


한여름이 되자 페페는 열심히 자랐다. 목덜미를 집요하게 태우는 햇살은 이중창도 통과했다. 습도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페페는 살맛이 났다. 쭉쭉 새 잎을 피워 올리는 게 힘없이 웃자라는 꼴은 아니었고 전심전력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음이 자명했다. 야자나무나 스노우 사파이어는 일 년 내내 같은 얼굴로 차분하게 계절을 타는 바람에 식물도 표정이나 몸짓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는데, 페페를 보면 나는 그가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격도 좋지. 하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일직선으로 우아하게 크지는 않고 사방으로 자라더니 옆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게 무슨 전조였는가, 한 계절이 지나고 나자 내가 페페 꼴이 됐다. 허리에 힘이 없어서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9월 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아와서 회의실에서 정리를 했는데, 두 시간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까 일어서 지지가 않는 것이다. 일어나고 앉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작이라서 무슨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일어나야지, 하고 뇌로 생각하면 바로 일어나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배반당한 충격과 더불어 엉치와 허리 사이에 뻐근하게 통증이 와서 나는 일어나다 말고 책상을 짚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식은땀을 흘렸다. 


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모든 동작이 도무지 너무 느려서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꾸역꾸역 짐을 챙기고 택시에 몸을 접어 넣는데 신음소리가 삐걱 새어 나왔다. 추천받은 척추병원에 도착했다. 당일 접수니까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접수원이 말한다. 점심에 들어갔는데 오후 다섯 시까지 소식이 없다. 앉을 수가 없어서 어정쩡한 공간에 오래오래 서 있었다. 엠알아이를 여섯 시에 찍었다. 시커멓고 허연 사진을 보고 의사가 추간판이 닳았네요, 허리 통증은 신경이 눌려서네요, 시술이 있으니 상담받아 보시겠어요, 하고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나를 일산으로 싣고 들어갔다. 자취하고 3개월 째였다. 


나는 원격으로 병가를 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바로 회사로 보내줬고 나머지 절차는 메일과 전화로 해결했다. 한참 회사 일이 바쁠 텐데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것이 미안해서 우선 한 달만 쉬기로 했다. 정신없는 시기가 시작되려는 찰나 갑자기 멈췄다. 이제 내 일과는 아침에 한의원에 가서 추나치료를 받고 오후에 척추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는 것뿐이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일주일에 사흘 다른 사람에게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어야 했다. 재활치료사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을 꾹꾹 누르고 나는 아파서 끙끙 앓았다.


앉을 수가 없으니 소파에서 티비를 보거나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일도 불가능했다. 햇살을 머리에 업은 은행나무와 부채 같은 잎을 떨구는 플라타너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돌아오면 나는 침대에 바로 누워서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했다. 허리가 그야말로 빵점이었다. 수직과 수평의 생활. 매일 그 단어를 생각했다. 적극적인 행위를 모두 박탈당해서 우울했다. 


3주 정도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뜬금없이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박아뒀던 물감과 종이를 꺼냈다. 여전히 앉을 수가 없으니까 책상에 잡지랑 책을 높이 쌓아두고 그 위에 종이를 놓고 서서 그렸다. 그렇게 잘 그리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초등학교 다닐 때보다 후퇴한 것 같지만 매일, 무작정, 그냥 그렸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0 아니면 100 병이 있어서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않는데 어째서 허리도 안 좋은데 갑자기 그림으로 되돌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생각하면 오히려 허리가 안 좋아졌다는 핸디캡 때문일지도 몰랐다. 내 상태가 이미 별로니까 결과물이 별로라도 양해해줄 수 있다는 생각. 운신도 제대로 못 하는 채로 일산에 처박혀 있으니 그 그림들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래서 결과물의 질은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그저 내가 집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면 좋았다. 


일산에 결국 6주를 있었다. 4주가 끝나갈 즈음 막판에 2주를 연장했다. 10월에서 11월까지 나는 4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겠다고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걸 짜내는 순수한 기쁨이 가을을 채웠다. 딱 절반인 2분 정도를 완성하고 나는 회사로 돌아갔다.


자취집으로 들어와서 제일 먼저 화분을 살폈다. 물을 사랑하는 푸밀라 빼고 모두가 멀쩡했다. 


-


겨울이 되자 페페에게 이변이 생겼다.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잘 지낼 줄 알았는데 잎이 누렇게 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추우면 물을 덜 주라고 해서 물은 이제 거의 주지도 않았고, 건조한 실내를 싫어한다고 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분무기로 칙칙 물을 뿌렸다. 페페는 당황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무나무처럼 귀족적인 자결을 택하진 않고 그냥 누렇게 뜬 얼굴로 매일 아침 창가를 응시했다. 영양제를 하나 급여했지만 반응이 없길래 이이도 죽는 게 아닐까 했다. 고무나무의 시듦을 체감했을 때처럼 속상하지는 않았고 저 어울리지도 않는 세입자가 이제 백기를 드는구나, 과습도 이겼지만 겨울을 이기진 못하는구나 하고 무감동하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나조차도 노랗게 뜰 것 같은 겨울이었다. 한 번 멈추고 돌아오자 모든 동력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를 일하도록 등을 떠밀던 힘이 그저 관성임을 알았다. 적어도 회사에선 100을 다하고 싶었는데 흥미도 의지도 사라졌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는 아직도 유효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탠딩 데스크를 설치하고 서서 일하다가, 답답하면 아예 나가서 걷고 오다가 했다. 일은 100분의 30 정도만 했다. 뭔가를 물어보고 당연히 내게 기대하면 저 한 달 쉬고 와서 몰라요, 그래서 못 해요,라고 대답했다. 


적당히 하루를 보내고 장갑과 모자와 헤드폰을 주섬주섬 챙기면 선배가 얘 또 걸어가려고 하네, 이 겨울에,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캄캄한 겨울엔 걷는 것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재미가 없었다. 강남역을 등지고 돌아 나와서 교대역까지 걷노라면 같이 퇴근하는 세상의 모든 동지들이 종종걸음으로 지하로 걸어내려갔다. 또 서초역까지 걸어가노라면 서류에 파묻힌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내보내는 불빛만이 까마득하게 깜박일 뿐이었고 나는 인적 드문 언덕을 헐떡이며 걸었다. 이따금 귀에 틀어박히는 노랫소리보다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방 안의 따뜻한 공기 때문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거실에서 그대로 가방, 패딩, 모자, 장갑, 양말, 스웨터, 바지를 전부 벗어낸 다음 작은 방에 대충 몰아넣고 거실의 식물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오면 페페가 누렇게 마를 줄 알았는데 누가 얼음, 하고 외친 것처럼 마지막으로 본 모양 그대로다. 


못생기게 살 바엔 아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죽지 않았다. 슬슬 패딩을 벗고 코트로 갈아탈 무렵 유일한 흥밋거리는 페페가 언제 초록색을 회복할 것인가였다. 거의 반년 가까이 생장이 멈춘 채로 있어서 보기도 지겨웠다. 잎 하나가 겨우 말라죽었을 뿐이었다. 잎을 떨구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이 하얗게 질린 잎은 끄트머리부터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다가 마침내 오므라들어 화분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초라한 생이 그렇게 소중한지 모를 일이다.


봄이 와도 페페는 모르는 것 같았다. 화분조차 변화 없는 삶이 지겨워서 나는 또 병가를 낼 궁리를 했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의사 앞에서 할 말들을 생각해봤다. 의욕이 없어요, 모든 게 재미가 없어요, 사람 만나는 게 귀찮아요. 다행인지 뭔지 의사에겐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차트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매년 하는 건강검진부터 수많은 사내 상담실 기록까지. 얼마나 쉬고 싶어요? 그는 그냥 그렇게만 말했다. 


3개월 병가를 받은 다음날 나는 늦잠을 잤다. 눈이 부셨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느낌을 만끽했다.


-


쉬면서 이전에 대충 했던 일들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했던 일들을 대충 했다.


밥은 열심히 지어먹었다. 반찬은 여전히 본가에서 얻어왔지만 현미쌀도 사보고, 그냥 쌀도 사보고, 섞어서 냄비밥을 지어보기도 했다. 산책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놀고 새로운 일을 벌였다. 아프면 꼭 병원에 갔다. 계획을 세우고 데드라인을 맞추는 건 대충 했다. 돈 버는 일을 해야 떳떳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도 대충 했다. 돈이 생기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대충 했다. 완벽해져야지,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쳐내야지, 이런 생각도 대충 했다.


그랬더니 작은 일들이 쌓였다. 각각은 초라한 일일지라도 쌓여서 어제가 되고 어제의 내가 됐다. 돌아보면 발자국이 있었다. 그저께 나는 병원에 가고, 약을 타고, 오늘은 낫는다. 저번 주 나는 친구와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고, 매일 조금씩 쓰고, 오늘 두 번째 글을 완성한다. 한 달 전 나는 반값에 들인 색연필 통을 끄집어내고, 오늘 제주도에서 습관처럼 그림을 그린다. 모든 순간이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버려두면 그럭저럭 오늘이 된다. 한 끗이 마음이 안 든다고 관둬버리면 내일도 없다. 


어째서 페페가 잎 하나도 버리지 않을까 자주 의아했다. 서글픈 흔적을 왜 붙들고 있을지 고민했다. 그게 마이너 스니까, 페페도 100이 될 수 있는데 어설픈 과거들이 점수를 깎아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 창백하고 무른 채 그는 어제를 기억하고, 시원찮은 얼굴빛을 하고도 오늘을 살아간다. 0이건 100이건 중요한 건 아녔다. 살아 있다는 것,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또 새로운 하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20점짜리 글을 써대고 34점짜리 그림을 그려댄다. 페페는 누런 채로 새 잎을 피워 올린다. 새 잎은 아무렇지도 않게 초록이다. 그래 뭐, 다들 대충 사는 거지. 내게 있는 게 그것뿐이라도 아무런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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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럴 때 있잖아요, 이건 해도 안 되겠다 하는. 그래서 정말 안 하면 몇 년 뒤에 후회하게 되는. 그래서 결국 이런저런 걸 시도해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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