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ONG Jan 25. 2022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

반려견이 비매너 개와 견주를 대하는 법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까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등 감정의 산물을 쏟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왜 저렇게 화가 많을까?', '무엇이 저리 짜증을 나게 만들었을까?'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음 편히 돌아다니지 못하는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이 예민한 상태에 이르렀다. 간혹 예약 전화를 건 손님이 빨리 전화를 안 받았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낸 후 흉기를 들고 찾아갔다는 뉴스가 보도되거나, 층간소음으로 큰 싸움이 났다는 류의 뉴스가 수시로 들리는 것을 보면 의외로 감정의 피로도가 최대치인 사람은 도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듯하다.


언제인지 모를 어느 날부터 주인 없이 오프리쉬로 동네를 돌아다니던 깡마른 갈색의 믹스견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주인이 있는지, 유기견 인지도 모를 행색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녀석이었다. 평소 크기가 작고 짖음이 심하거나 아무 데나 마킹 또는 배변을 하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예의가 없는 아이들을 대놓고 싫어하는 똘이는 갑자기 나타난 믹스견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곤 했다. 빤히 보고 있는데도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거나 데크에 마킹을 하고서 태연하게 뒤돌아가는 그 아이는 똘이에게는 눈엣가시였으리라. 그래도 특별히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개인 공간에 침범하지 않는 선이라 그런지 똘이의 표정과 눈빛에서는 꾹 참는 것이 보였다. 하루는 온 가족이 별일 없이 집에 머무르던 주말이었다. 볕이 좋았던 날 엄마는 건조대에 섬세하지만 빠른 손길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 옆을 지키던 똘이는 태양열로 따끈하게 데워진 나무데크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창문 너머 엄마와 똘이를 지켜보던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움에 '오늘 하루도 무사하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습게도 어느 영화나 드라마처럼 얼마 안 가 사고가 터지는 뻔한 전개가 펼쳐졌다. 녀석이 선을 넘고 데크 위로 올라온 것이다.


우리 집 데크는 그리 높지 않고 울타리 살 간격이 꽤 넓어 어떤 크기의 강아지가 와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이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자신만의 룰을 잘 지키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녀석은 그런 똘이를 도발하며 마치 나올 수 있으면 나와보라는 듯 왔다 갔다 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며 정면으로 대치하지 않은 우리 가족과 똘이는 성격도 꼭 닮았다. 그럴 때마다 똘이는 애써 그 녀석을 무시하려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그때 도망쳐야 했다. 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좌우를 뛰어다니며 짖는 녀석의 행동은 '놀자'는 시그널이 아닌 명백히 시비를 거는 모습이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엄마 대신 집 안에 있던 나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현관 밖으로 나와 그 녀석을 쫓기 위해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안간힘을 썼다. 녀석은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지만 잠깐일 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똘이를 보고 짖으며 뛰어다녔다. 슬슬 한계인 똘이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느린 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빨리 걷지 앉는 똘이의 걸음은 유난히 느려서 마치 사냥 전 맹수가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자극이 되었는지 녀석은 데크 위로 올라와 똘이를 공격할 듯 달려들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순간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고 왼쪽 정강이를 물렸다. 그 모습을 본 똘이가 이젠 참지 않겠다는 듯 녀석에게 짖으며 달려드는 순간 엄마가 나와 똘이를 말렸다. 우리는 알고 있다. 화가 난 똘이에게 물린다면 녀석은 큰일이 날 것이라는 걸. '우리 개는 순해요. 안 물어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이유는 똘이는 개라는 동물이고, 진돗개이고, 주인 성격을 닮았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데크를 돌아다니던 녀석의 뒤로 중년의 여자가 오더니 맹렬히 짖던 똘이에게 짖지 말라며 개껌을 툭 던져주고는 녀석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엄마는 주인이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는 순간 화를 냈다. 상황을 다 지켜보고서도 사람이 물렸는데 괜찮냐는 사과도 없이 개껌 던지는 건 무슨 예의이며, 공격성이 있는 개를 관리도 없이 오프리쉬로 방치하는 건 책임감이 없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건 억지로 하는 괜찮냐는 한 마디와 유난을 떤다는 식의 비아냥이었다. 어디 가서 지지 않는 한 성격 하는 엄마는 언성이 높아졌고 주변 동네 사람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녀석의 편을 들어주는 이 없이 처음 주인을 본 사람들은 견주에게 한 마디씩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고, 똘이와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분들은 편을 들어주었다. 본인이 불리하게 느껴졌는지 견주는 슬금슬금 개를 데리고 집으로 갔고, 그 이후로 그 개는 볼 수 없었다. 이후 사과를 하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쫓아 가 항의를 하거나 신고를 할 수도 있었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으로 녀석을 볼 수 없게 되니 그 주인의 성향이 그려지며 녀석이 짠해졌다. 사랑받고 안정된 곳에서 생활했다면 교육이라는 걸 받았을 테고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 결론은 반려견은 주인을 닮고, 주인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