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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19. 2024

지난 날의 너에게 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널 만날 수 있다면, 난 너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몰라. 그냥 계속해서 울고 있는 널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너의 아픔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이전보다 빈도는 확실히 줄었지만, 아직까지 가끔 지난 너의 하루가 나의 꿈에 투영되어 나타나곤 해.


 그래서 난 느낄 수 있었어.

저 깊고도 캄캄한 마음의 한 구석에는 슬픔에 잠긴 작은 네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걸.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선 지금 난 한 명의 멋진 성인이 되었지만, 17살의 너의 마음은 아직까지 완전히 치유해 주지는 못했다는 걸.


 어떻게 하면 너를 진심을 다해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너를 차갑고도 컴컴한 깊은 심연 속에서 데리고 나와 숨을 쉬게 해 줄 수 있을까 참 많이 고민했어. 그러다가 문득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내 손으로 직접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도 난 지난날의 너에 대해 가능한 한 회상하고 싶지 않았어. 어차피 지나간 일이었을뿐더러, 나를 포함해 모두가 반길 만한 주제도 아니었으니, 굳이 네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모두의 기분을 가라앉히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난 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 이제는 정말 내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훨훨 날아 떠날 때가 된 거야. 그래서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모자이크 처리를 해두었던 너에 대한 기억들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어.


 역시 생각했던 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어. 그동안 나의 무의식이 그 기억들을 지워내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 있었지. 대부분의 기억들이 지워져 있었어. 돌이켜보니 이러한 증세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어. 친구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그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나는 도통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거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토록 괴로웠기에 잊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쉽게 잊혀 버렸다니. 네가 얼마나 강하게도 그 기억들을 잊고 싶어 했기에 지금의 나는 그때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나 아파했었던 너를 제대로 위로해주지도 못했던 내가 이제야 널 기억하려 한다니, 조금은 아니 많이 한심하게 느껴졌어.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너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면, 기억해 낼 수 있는 몇 가지의 네 무거운 족쇄라도 제대로 풀어내주고 싶었어.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어. 조금 적다 보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 버리는 바람에, 몇 줄 적다가도 냅다 화면을 끄고 그만둬 버리곤 했거든.


 하지만 다시 의자에 앉았어. 화면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렸어. 오랜 시간 그 시간에 묶여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너를 위해, 지금 이 불쾌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기로 했어.


 그때의 너를, 그리고 너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그 꿈속으로 들어가 꼭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

다 괜찮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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