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자신마다 가지고 있는 아픔이 존재한다. 각자마다의 경험과 깊이, 시간 그리고 그를 정의하는 생각까지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픔들을 두고 누가 더 가볍네 무겁네 할 수 없다.
내가 던진 작은 돌이 타인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평생 지우지 못할 흉터를 남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 또한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남 무서울 것 없이 살아왔다. 원하는 건 가졌어야 했고, 나부터가 타인을 두고 급을 매기고는 했었다. 그러한 이기적인 나를 바꾸어 주었던 게 고등학교에서의 3년이라는 긴 암흑과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아픔이 있어야 배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그 당시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 정당했다고도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어두웠던 시간 속에서 나를 대놓고 무시했던 그들의 바람대로 나라는 존재를 포기하는 대신, 그들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
지금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면, 과연 내가 하루라도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것을 모두 버텨냈던 과거의 내가 참 대견하다. 그런 내가 있기까지 스스로도 노력한 건 맞지만, 정확히는 그런 내 곁에 엄마와 든든한 가족이 있어 준 덕분이다.
자퇴를 결심했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담임 선생님과 함께 거의 모든 결정을 내린 후 마지막으로 여름 방학을 보낼 때였다. 가족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향해 말했다. 길이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라고, 학교가 아니더라도 나아갈 길은 많다고 말해줬다. 사랑과 진심이 담겨 있던 그 말과 응원이, 학력이 중요한 한국에서 자퇴를 결정해야 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여름 방학 동안 나는 제주도에 계신 이모댁에 한 달 남짓 가서 지냈다. 학교와 자퇴 생각으로 온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지만, 물리적으로라도 이렇게 멀어져 있으니 살 것만 같았다. 밝은 날 햇빛을 받으며 이모댁 근처를 산책하기도 하고, 이모, 이모부와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그동안 지쳐 있던 나를 치유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여름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어떤 계기로 다시 돌아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모, 이모부와 지내면서 세상의 넓음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클 것이다. 학교란 게 얼마나 작은 세상인지, 그렇게 작은 세상에서 난 이겨내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다시 돌아갔다.
돌아갔다고 해서 그전과 달리 나아진 건 아니었다. 고 3 때까지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똑같이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내 두 손에 졸업장을 쥐었을 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유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알 수 있었다. ‘이겨냈다’ 스스로에게 증명하게 되면서 한층 더 강해진 나를 맞이한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나는 자퇴 대신 졸업을 택한 건 맞지만, 그와 함께 3년 중 대부분의 기억이 지워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만약 자퇴를 했었다면 더 많이 웃었을지도 모르고, 많은 추억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졸업장을 떠나서, 이 길을 걸어온 덕분에 지금의 나를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서, 그것을 나 또한 타인에게 나누어주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이 길을 걸어오며 배운 인생의 가르침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관심과 사랑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렇기에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내가 받은 이 마음들을 전해주고 싶다. 이것이 지금 당장은 그 아픔이란 것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겠지만, 쉼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쉼표 또한 필요한 순간마다 계속 찍어주다 보면 서서히 그 꼬리가 짧아져 어느 순간에는 마침표가 되어줄 것이다.
마음속에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부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아픔도 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소중한 조각이기에.
끝내 빛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아름다웠을 내 모습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