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기까지
지금까지의 난 심각하리만치 [나]가 아닌 [남]을 우선시하며 살아왔다.
불필요한 불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남들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의 인간관계가 더욱 더 건강해질 줄 알아서
그 시작점은 아마도 나의 학창시절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되려 은따를 당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따갑고도 차가운 시선들을 또 받게 될까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던 나는
어느샌가 물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관계에 나의 모든 집중을 갈아넣다 못해
나의 의견, 가치관, 주관까지도 갈아 없애버리며 살았다.
그렇게 십 년을 살아오니
[넌 어떤 걸 좋아해?]
[넌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
나의 의견을 구하는 물음에
너는 어떤데?
모든 입력값에 대한 출력값이 오직 하나인 로봇처럼
자동반사적으로 다시 되묻는 나만 남아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이렇게 해서라도
상대방과 좋은 관계가 이어지기만 한다면
잘 살아가는 것이라며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를 좀먹는 관계가 더 많아져 있었다.
[만만하게 봐도 상관없는]
[내가 힘들 때만 찾아갔다가 떠나도 되는]
[시간 상관없이 내 얘기만 하고 싶을 때 찾는]
[무시해도 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는 관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사실 은연 중에 알고는 있었다.
건강하지 않은 그 관계들을 끊어내지 못했던 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다.
미움을 받는 게 싫었다.
엇나간 관계가 생기는 게 싫었다.
그냥 모든 게 순탄하길 원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질질 끌고 가는 것에도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이제는 좀 바뀌기를 하늘도 바랐던 건지
한국을 떠나 해외에 장기간 지낼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일차적으로 난 모든 관계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