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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10. 2024

아침의 비관론자

이제 막 깨어난 다람쥐를 건들지 마세요.

깊은 밤, 감수성이 짙어지는 것을 우리는 [밤수성]이라고들 한다.


이 밤수성에 취약한 나는 밤만 되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며, 사랑을 노래하는 로맨티시스트가 된다.


실상은

열심히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조그마한 체구의 외노자,

혹은 누군가와 손을 잡아 본 적도 없는 모태솔로이지만..


다음날 아무 죄 없는 이불을 걷어차게 되리란 것을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찾아오는 밤수성이란 손님을 난 극진히 모신다.




밤의 손님과 시시덕거리다가 잠기운이 솔솔 들기 시작하면

눈치가 백 단인 그 손님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ASMR이라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렇게 꿈나라행 급행버스는 오래 걸리지 않아 종착지에 나를 데려다준다.


한참 그곳에서 놀고 있으면, 어김없이 [알람]이라는 무례한 놈이 나타나 저항하는 내 뒷덜미를 콱 잡은 채 현실이라는 곳으로 질질 끌고 온다.

그렇게 현실에 도착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역시나 밤의 손님을 온데간데없다.


대신 그 자리엔 내 허락도 없이 방문을 따고 들어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다른 손님이 있다.


그래, 얘가 바로 아침마다 나를 찾아오는 비관론자다.




얘는 짧으면 1시간에서 길면 3시간을 내 곁에 붙어 있곤 하는데,

제멋대로 찾아와 놓고는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떠날 때는 흔적도 없이 떠나 준다.


밤새도록 마음이라는 풍선에 열정과 설렘이라는 숨결을 가득 불어넣어 둔 밤수성의 노력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날카로운 가시로 단숨에 팍! 터뜨려 버리는 게 이놈이 아침마다 하는 관례이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세상이 잘못했네!! 넌 너무 잘하고 있는 걸???”

언제 어디서든 나의 편이 되어주는 밤수성에 반해서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아 내가 보기엔 걔는 좀 별로인 것 같은데..”, “너 진짜 한심하네.”

언제 어디서든 가시 돋친 말들을 퍼붓는 것도 얘의 특징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나쁜 애라고 하기엔 또 그 정도는 아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게 이 아이의 주특기인 건 맞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환상에 젖어 있는 나의 뺨을 정신이 번쩍 들게끔 사정없이 후려쳐 주는 것도 이 아이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가시 속에서 명약으로 쓰일 건 얼마 없지만, 제대로 된 약효를 가진 것들 덕분에 크게 신세를 진 적도 있었기에 난 못돼 먹은 이 아이를 미워할 수도 없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했던가, 이 아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날 찾아올 텐데, 그러기 위해선 나도 이 아이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난 나만의 전략들을 세웠다.




전략, 그 첫 번째는 맞이하기다.


어, 오늘도 왔구나.
꾸준히 부지런하네.
어서 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심술을 부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쫓아내지 않고 들여보내준다. 뭐 이미 문을 따고 들어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쫓아낼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냥 맞이해 주는 수밖에.



그럼 그때부터 따발따발 총알같이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가시들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거기서 나의 두 번째 전략이 빛을 발한다.


이 아이가 쏘아대는 가시들의 허와 실을 구분해 내는 것, 이 전략을 터득한 이후로는 난 더 이상 그 아이의 가시를 피하지 않게 되었다.




[엄청 힘들지? 그만두고 싶지? 그만둬버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두렵지? 무섭지? 숨고 싶지? 포기하면 편해.]

[뭣하러 되지도 않는 도전을 한다고 난리야. 안정적인 길로 가라면 가.]


셀 수 없이 많은 가시들의 98%는 쓸데없는 투덜거림, 혹은 나와 삶을 적대시하는 부정적인 것들 투성이다.


모든 가시들은 속이 비었든 알찼든 상관없이 외관상으론 모두 날카롭긴 똑같이 날카롭기 때문에 멍청하게 맞고만 있으면 피가 철철 흐르며 아프다. 여기서는 이 가시가 명약이 될지 안 될지 구분해 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만약 빈 껍질뿐인 가시라면 맞거나 잡고 있지 않고 그대로 나를 지나쳐가도록 흘려보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이 비어 있기만 한 것들은 무조건 흘려보낸다.


이는 나머지 2%의 실을 찾아내고, 그에 따른 문제 파악과 해결책 검토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위한 큰 그림이 된다.




내가 저 전략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짧게나마 써보자면..


일하러 가기 위해 새벽 3시 반에 깨어나면, 얘는 기다렸다는 듯 어김없이 조잘거리기 시작한다.


[야, 더 자고 싶지???? 새벽 3시 반 기상이라니 미친 거 아냐??? 어휴 불쌍해.. 너 언제까지 알바만 하면서 살래? 1년 뒤에도 아르바이트하고 있으면 어떡해? 가엾어라..]


불필요한 가시들이라는 걸 알았으니, 난 이렇게 되받아친다.


그래. 넌 떠들어라.


[조잘조잘...] 양치를 하고 가볍게 씻는다.

[재잘재잘...] 옷을 갈아입는다.

[왈왈...] 현관문을 열고 출근길에 나선다.

[...] 페달을 밟으며 한적한 주택가를 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얘는 어느 순간 흥미를 잃어버린다. 솔직히 말해 정말 단순한 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묵묵부답인 내가 지겨워진 그 아이는 어느새 시원한 새벽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려, 다음 날 아침까지 찾아오지 않는다.


흥, 내년에 내가 아르바이트하고 있으리란 걸 나도 모르는데 넌 어떻게 알겠어? 두고 보라지.


속이 빈 가시들은 사정없이 무시해도, 조금은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에는 이렇게 되받아치기도 한다. 이는 스스로 말을 내뱉으면서 나 자신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안겨주고, 그 아이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기 위함이다.


이 아이와 나의 철저한 전략들로 인해, 나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더 성장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난 나를 위해 [아침의 비관론자]를 내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아이의 가시 돋친 말들에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약에 쓰이지도 않을 불필요한 날카로운 가시로 인해 나의 하루가 아침부터 피를 흘리며 아파하기에는, 이 세상과 내 삶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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