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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17. 2024

캐나다산 까만콩이 되어 버렸다.

까만콩이라도 행복하면 됐어.

이 지구상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그중 여름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도시로는 밴쿠버가 빠질 수 없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밴쿠버의 여름은 천국(Heaven)이야!

이곳에서 겨울은 두 번이나 지내보았지만, 정작 해-븐이라는 여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아니, 대체 얼마나 해븐이기래, 이런 구리구리한 겨울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살고 있는 거지?’라며 여름에 대한 환상이 이미 커질 만큼 커져 있던 상태였다.



여기서 잠깐 짧게나마 적어 보자면,

밴쿠버의 겨울은 ‘레인쿠버’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조금의 과장을 보태어) 겨울의 10일 중 8-9일은 비가 내린다.


한마디로 1년 중 맑은 날이란 맑은 날은 모두 끌어다가 여름에 “몰빵”한 도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주룩주룩 비만 내리던 겨울날에 갑자기 맑은 날이 찾아오기만 하면, 이게 사람인지 식물인지, 다들 광합성을 받으러 나온 식물인 마냥 우르르르 실외로 나와 햇빛을 쬐고는 한다.


안타깝게도 겨울엔 오후 3~4시가 되면 해가 져 버리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그 맑고도 밝은 그 햇빛을 생명수처럼 들이켜야 해서 **햇빛이 났다!!** 하면 집순이인 나조차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기 바빴다.




아무튼 이런 겨울과는 정반대로 밴쿠버의 여름은 비가 오는 날이 극히 드물고 항상 맑은 날이 이어진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름인데도 덥지 않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겠지만, 난 대프리카에서 살아남은 서바이벌 종결자라서 더위에 대한 참을성이 강하다.)


바로 곁에 바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습한 더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대구의 여름은 공기가 너무 후덥지근하게 뜨거워서

내가 바깥에 나와 있는지, 습식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는데


이곳은 습기조차 없으니 땀으로 온몸이 쩍쩍 달라붙지도 않을뿐더러, 햇빛을 피해 그늘로 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다.


한 번 이곳의 여름날을 경험하게 되니 다들 앵무새처럼 “여름은 천국!!”이라고 외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흡사 천국과도 같은 여름날의 버프로

구리구리한 겨울의 우기를 감내하 이곳에서 지내는구나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쓰다 보니 거의 밴쿠버 찬양단이 된 것 같아서 이쯤에서 급하게 마무리를 지어 놓겠다.




내가 살고 있는 키칠라노는

해-븐인 밴쿠버 안에서도 날씨, 온도, 습도, 바람, 풍경까지 모든 게 갖추어진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이다.


파워 집순이인 나로서도 이렇게 집에만 쳐 박혀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름날의 키칠라노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래서 난 집순이만의 굼벵이 같은 본성을 거스르고선 계속해서 바깥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씽씽 달리기도 했고, 공원 밴치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기도 하, 이모와 함께 이곳저곳 뚜벅뚜벅 산책하며 여름날을 만끽했다.


그렇게 나돌아 다니면서 선크림을 얼굴에만 조금 바를 뿐 몸에는 귀찮아서 바를 생각도 하지 않았더니, 정신 차리고 보니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몸은 거의 불에 그을린 구황작물이나 다름없었다.


햇빛을 받지 않은 비교적 하얀 속살에 팔을 가져다 대었을  이게 내 팔인지 아닌지 나조차도 의심스러울 정도,


매일 거울을 통해 보는 얼굴에도 이따금씩 ‘누구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아주 새카맣게 타버린 까만콩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어째선지 이런 까맣게 탄 내가 즐거워 보인다.


거울을 통해 까맣게 그을린 동양인이 자기도 웃기는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웃기 바쁘다.


웃고 있는 나도, 거울 속의 까만콩도 행복해 보인다.


원래라면 가디건을 챙겨 다니며 피부가 햇빛에 타지 않도록 가리기 바빴을 텐데, 캐나다 물을 조금 먹기도 했고, 이모께서도 이런 나를 보고 “예쁘게 탔다”라고 해주신 덕분에 ‘ 이왕 이미 타 버린 거, 제대로 타야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부가 타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오히려 까만콩이 되어 버린 나를 향해 ‘더 까맣게 태워버리자’라고 하고 있으니, 내가 이곳에 오기 전과 지금,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실감이 났다.



해외에서 지낼 때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제 이 말이 너무 진부하게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약 1년 반을 지내고 있는 해외살이 초짜인 나 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진짜 미친 사람처럼 홀딱 벗고서 춤추며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남이 나를 신경 쓸 일은 거의 없다는 걸.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남이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서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동안 억눌러왔던 내 속의 자유들을 표출해 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시도해 보지 않았던 패션도 과감하게 도전하게 되고, 쌩얼이라도 ‘이게 나야!’라며 이곳저곳 아무렇지 않게 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이모께서는 이렇게 바뀌어진 나를 보며 놀라며 말씀하셨다.


‘네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땐 화장하는 데만 2시간은 더 걸렸는데, 지금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금방 끝내게 되었네’라며.


당연하다. 그냥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선크림을 바르면 된다. 머리는 드라이나 고데기를 할 필요 없이 시원하게 뒤로 질끈 묶으면 [준비 끝-!]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오래되고 낡은 틀 속에 박혀 있던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내 삶은 더욱더 다채로운 추억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얗지 않았던 한국산 까만콩은 자신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가 열광하는 흰 강낭콩의 하얗고 매끈한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부정하는 데 허송세월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자유의 맛과 개성의 아름다움을 맛본 캐나다산 까만콩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결심했다.


이왕 까만콩으로 태어난 거, 윤기가 반질반질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까만콩이 되어 보자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밝은 햇빛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행복한” 까만콩이 되어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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