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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Aug 02. 2018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은유 <출판하는 마음>

어쩌다보니 책 리뷰 블로그를 하고 있다.



블로그를 하고 싶어서 여러해 동안 몇몇 플랫폼을 거쳐오다 우연히 브런치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책 리뷰만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쓰다보니 가장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책에 관한 글이었다. 책을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옮겨 적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서 글로 쓰는 것. 쉽게 휘발되어버리는 읽을 당시의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 싶어서였다. 


왜 책을 읽는가. 처음엔 재밌어서 읽었다. 그러다보니 소설을 위주로 읽었다. 그러나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라면 읽지 않을 책들도 읽었(어야했)다. 점점 책이 일상으로 들어오며, 온/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일들이 많아졌고, SNS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책이 있으면 따로 적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읽는 책의 외연이 넓어졌다. (물론 아직도 엄청 편협하다. 과학, 역사는 아예 손도 안댄다) 그렇게 넓혀지는 책의 분야만큼 나의 사고도 확장되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책을 읽으면 마음이 침착해지는 것이 좋다. 책에 집중을 하다보면 잡생각이 덜 나기도 하고, 나의 상황과 비슷한 소설이나 따뜻한 말 한다디를 건네는 에세이같은 책을 읽을 때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삶이 바뀐다는 것.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돈 쓰는 데가 달라지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책 사고 강좌듣고 공부하는 일에 지출이 늘었다. 책을 쓰거나 만드는 사람들과 주로 교류하고 있었다. 말 섞는 재미가 솔솔 피어나고, 대화 궁합이 착착 맞았다. 사는 얘기가 책 얘기로 흘러가고 책 얘기가 다시 사람 얘기로 흘러나오고 자꾸 걸어나가서 세상사를 다 어루만지는 기분에 젖었다. 나라 걱정부터 신세 한탄까지 열내고 욕하고 의심하고 회의하고 과시하고 반성했다. 목적 없는 대화는 어설프나 간절하고 치열했다.

- <출판하는 마음> 중



빵이 아닌 책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분명...


<출판하는 마음>은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을 읽을 때 책을 쓴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는 종종 생각해보긴 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책 한권이 나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일련의 과정에는 사람의 손길이 있고, 그들의 '마음'이 있다. 처음 책을 기획하는 사람, 제작하는 사람, 디자인을 하는 사람, 팔기 위해 마케팅을 하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온/오프라인에서 수많은 책들을 배치해 놓는 사람, 큰 출판사에서 역할을 나누어 일을 진행하는 사람, 1인 출판사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 사람, 대형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 독립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 이 책은 바로 그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책은 물론 상품이지만, 조금 특별한 상품이다. 책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고." 내가 파는 상품이 진짜 좋은 상품이라고 믿고, 또 그런 상품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만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고, 생각이 달라지고, 위로를 받는 나와 같은 무수히 많은 독자이자 고객들을 위해 진심을 담아 고민하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책에서 말한대로 "나쁜 마음으로 일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쁜 마음으로 하지 마세요." 

살면서 행하는 잡한 일들을 '해치우듯' 살아가는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한마디였다. 이 책을 쓰면서도 저 대사를 자주 생각했다. 글은 너무도 깨끗한 거울 같아서 글 쓴 사람의 태도와 생각, 마음의 잡티까지 정직하게 반영한다. 더군다나 나쁜 마음으로 일하지 말자는 내용의 책을 쓰는 내가 나쁜 마음으로 써서는 안 될 일이니,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일 때 원고에 집중했고 쓰다 보면 좋은 마음이 금세 차올랐다. 글을 쓰다가 속상해서, 꾀가 나서, 혹은 힘에 부쳐서 대충 하고 싶을 때면 나쁜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좋은 마음으로 해야만 나쁜 현실을 바꿔낼 수 있을 테니까.


이러한 태도는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런 태도를 읽게 될 때마다, '아 내가 지금 읽는 이 책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것이구나' 하고 느껴져 한 문장 한 문장, 더 아껴읽게 됐다. 


김민정이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를 발간하며

평소에 좋은 산문과 칼럼을 많이 썼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나 혼자 보기엔 아까우니까, 같이 보면 좋겠다, 세상에는 이런 어른도 있다'는 마음으로 책을 펴냈고, 큰 사랑을 받았다. "편집자를 하다보니 그걸 책으로 내서 모두가 읽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는 제가 가진 그 공명심이 맘에 들기도 해요. 최소한 내가 읽고 싶어서라도, 나를 위한 책이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만들 것 같아요."

 

정지혜가 <사적인 사점>에서 책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은 왜 상처받았을 때 책을 찾을까.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공감을 얻으니까요. 집단주의, 남성문화, 성공지향주의가 팽배한 기관에서 일하다 보니까 매번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건가 싶어 힘들었는데, 이 세권의 책 <개인주의자선언>, <위대한개츠비>, <무라카마 하루키 잡문집>이 자기가 잘못된게 아니란걸 느끼게 해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책이 이렇게 사람을 치유하는구나, 이렇게 묶이는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책은 어떤 가치인 동시에 상품이다. 돈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출판시장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책과 많이 팔릴 책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책만 팔아서는 망할 수밖에 없고, 팔릴 책만 팔아선 질적인 측면에서 책 생태계 자체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어려운 출판시장과 책이라는 독특한 가치를 가진 상품때문인지 그 고민의 지점들에서도 책을 대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박흥기가 책을 제작하며

제작비를 줄이는게 제작자의 임무라지만, 출판사만 생각하고 무조건 제작비를 낮추는게 능사는 아니에요. 기본으로 최소한 지켜줘야 할 금액은 지켜줘야 해요. 서로 같이 먹고살아야 하는데 서로 같이 힘들어지니까 아쉽죠." 사계절 출판사는 책값이 높지 않은 편에 속한다. 폭리를 취하면 안 된다는 원칙으로 최소 마진을 지키면서 적정 가격을 정한다. 


박태근이 책을 팔며

10년차 경력자로서 그들 세대, 젊은 출판인들이 겪는 문제점과 상황을 충분히 얘기할 필요가 있으며 나서서 발언하는게 건강한 태도라고 생각해서다. 그게 다음에 오는 이들에게 더 나은 상황을 제공할 거라고 믿기에 노력을 기울인다. '책을 파는 사람'이라는 짧은 문구에 드러나지 않는 의들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야만 '책을 파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은, 그가 청춘을 다해 작성한 세상에 하나뿐인 답안지다.  


책에 소개된 독립책방 <사적인 서점>


그리고 노동에 대하여



책을 이토록 아끼고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일은 일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무작정 책 만드는 사람들은 이토록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만들고 파는 노동에 대해서 담담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실제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역량을 갖추면 좋을지에 대해서 취재한 점이 좋았다. 마냥 핑크빛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는 것. 막연하게 아 언젠가 나도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또한 노동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이 어려운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태도에서 같은 노동자로서 어떤 태도를 배워간다. 


알림이 안울리면 아 오늘은 주문이 없구나 하고 낙담한다. 어느 날은 50부 들어오면 오늘 고기 먹어야겠다 약속을 잡는다. 저자한테 메일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가라앉았다가 누가 한번 보자고 하면 세상 날아갈 것 같다가, 그러다가 만났는데 책 못한다고 하면 또 실망하는 식으로 일희일비했다. "이젠 하루에 책이 50부 나가면 내일은 안나가겠네 해요. 일부러 감정을 잠재웠어요. 기쁨도 슬픔도 없는 침착한 상태. "


인터뷰 도중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로 수차례 대화가 일시정지됐다. 그는 복잡한 로터리에서 수신호를 보내는 교통경찰처럼 민첩하고 노련하게 응대했다. 제작자가 하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데도 전혀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책의 내용을 읽는 것만큼이나 책의 촉감, 종이 냄새의 포근함을 좋아하고 원하는 책을 하루빨리 소유하지 못하면 안달이 나는 나는, 내가 누리는 그 복락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또 고마워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인터뷰 내용을 정말 따뜻하고 세심한 손길로 다듬어 낸 은유 작가를 처음 알게 되어 좋았다.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하나같이 이름은 멋스럽고 공간은 오붓하다. 아마도 찻잔 같은 책방에 티백처럼 폭 잠겨 책을 들춰보는 일이 현대인의 건조한 일상에 진향 향기 우러나는 체험이 된 듯 하다. 

- <출판하는 마음> 중에서 독립책방을 소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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