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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by Simon Jan 06. 2018

새해의 다짐 따위는 넣어둬

인생의 짐짝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아보려 해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다이어리나 달력을 주고 받지. 올해 넘길 종이장도 없으니, 마치 화장실에서 휴지가 다 떨어져 급하게 채우는 듯이 말이야. 그렇게 달력을, 다이어리를 받으면 1월, 2월, 천천히 한 장씩을 넘겨봐. 올해는 공휴일과 연휴가 바르게 배치되어 있는지, 근데 웃기지 않아, 설령 일요일이 공휴일을 잡아먹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연휴가 길든, 짧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날 거잖아. 휴일이 많이 없어 세상을 욕해봐도 알잖아, 엄청 긴 연휴가 두 번이나 있었던 작년에도, 매정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했고, 장기연휴가 닥쳐오면 막상 뭘 해야 하는지, 마치 머릿 속이 아노미 상태인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 사실 이 연도를 구분하는 게 개인에게 무슨 그렇게 큰 일이 있겠나 싶긴 해. 12월 31일에서 1월 1일에 간다고 그 사잇시간을 전능한 어떤 신께서 잠시 멈추게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1월 1일은 서비스로 한 시간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해'라는 분기점에 잠깐 머무를 뿐이야. 심지어 여기 한국엔 설날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새해는 두 번이나 챙겨, 거나하게.


연말에 다 마치면 좋을 일들이 다 끝나질 못했어. 새해 첫 날 출근하면서 결국 내가 해야 했던 건 작년과 다르지 않았어, 물론 나는 새로운 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직 지난 일들이 끝나지 않았어. 어떤 일이든 12월 31일 부로 칼로 벤 듯 끝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다만 나이를 한 살 더 먹긴 하는데, 나이도 이제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아. 학교를 다닐 때나 나이를 한 살 먹으면 한 학년을 올라가는, 그런 분절이 있으니까 나이는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솔직히 세는 게 싫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사실상 새해가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다시 다이어리 얘기를 하고 싶어. 올해는 작정하고 연말에 커피를 사 마셨더니 말로만 듣던 그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았어.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 커피 14잔과 스페셜 음료 3잔을 마셔야 하는데, 스페셜 음료는 뭘 먹어도 맛없고 비싸기만 하더라. 난 단 음료가 싫어.) 나름의 성실함을 보태 얻은 다이어리라 욕심이 나긴 했어. 이 다이어리를 좀 올해는 알차게 채워봐야겠다. 


그럴려면 뭘 해야겠다는 목표가 필요할 것 같잖아. 새해에는 뭘 해야 하나 또 머릿 속에서 인생의 중요한 과제들을 일단 책상 앞에 다 어질러놓아 보게 돼. 천성이 집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을 줄을 모르다 보니, 이미 작년에 너무 바쁘게 살았어. 새 회사에 새로 안착했고, 첫 책을 쓰기도 했어. 영어 코치도 1년 내내 했고, 수영도 운동도 열심히 했어, 새로 글도 쓰고, 여행도 열심히 다녔어.


돌이켜보니 내가 작년에 바쁘게 살았던 대부분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어. '성과'는 없었어.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성과라는 게 어떤 거냐면, "일본어 자격증을 땄다." "살을 몇kg 뺐다." 같은 그런 묵직한 팩트 있잖아, '그래서 내가 이걸 이루어냈다.' 라고 할 만한 것들. 1년 내내 그저 꾸준히 했다는 것 말고는 그렇게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 깨달음이 잠시 나를 흔들었어. 새해에는 그런 묵직한 한 방을 만들어보자. 새해에 출근해서 회사 어르신들과 식사를 하는데, 새해에는 목표를 좀 가지고 도전적인 삶을 살라고 하시더라. 새해에는 다들 그렇게 진취적이야.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지. 나는 그런 건 당분간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지 않잖아. 요 근래 부쩍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을 싫어하게 되었어. 맥락없이, 어디서 들은 약간의 정보로 갑자기 무언가에 달려드는 그런 사람들, 나는 그런 금사빠가 아니라서 그런가, 이해하기가 힘들더라고. 갑자기 새해 들어서 일본어 자격증이라니. 결혼이라니. 지금 살고 있던 내러티브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거잖아. 굳이 잘 살아왔던 걸. (그래도 일찍이 비트코인을 사놓지 않은 건 좀 배가 아프긴 해.)


누군가에게 뭘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 작년과 똑같이, 출근을 하고, 영어 코치를 하고, 운동을 하고, 수영을 하고, 주말 아침이면 카페에 앉아 글을 써보려 해. 그러다 글이 제법 모이면 새로운 책을 또 내겠지. 다만, 그 중간에 이런 건 어떨까 하고 아주 작게, 나만의 실험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 지금 연주하고 있는 멜로디에 변주를 주는 거야, 마치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과 하농을 연습하듯, 1번부터 60번까지의 연습 멜로디를 이리저리 연주해볼 것 같아. 그렇게 굵은 뿌리에서 튼튼한 가지를 뻗고, 거기에 또 가지를 치는 거야. 하나의 나무처럼. 그게 내 삶에는 맞는 방식이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 나이가 더 들면 아마 이 생각 또한 바뀌리라 짐작은 되는데, 그럼에도 그 변화를 잘 넘기지 않을까? 매번 새해에 크게 힘 빡주면서 금방 지치기 보다는, 인간 수명 100세의 쉽게 죽지 않는 삶의 흐름에서, 완급조절을 잘 해보려 해.


그래서 올해 목표는, '일단' 없어. 무엇이 앞에 닥칠지 모르기에 재밌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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