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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Nov 30. 2022

그럼에도 한 번 해보세요 : 도움의 한계를 알아보기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없을지라도. #나라예산빼먹기 #국취제

이태원 참사 이후로 세월호 때와 비슷하거나 더 큰 우울감을 느낀다. 인명이나 규모의 차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인 분노와 슬픔이 한 번에 터졌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참사뿐만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도 하루에 3~40명이 죽어가는데 국가행정은 매일같이 모르는 체한다. 국가에 대한 불신에서 나아가, 현재의 상태가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 같다. 참사 이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중 하나는 "각자도생"이었다. 


우리가, 국가에 아무리 고함을 지른다고 해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까? 점차 나 스스로 생존하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간다. 나 혼자 잘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걸까. 포기와 체념의 감정이 어느새 주류가 되고 있다.  


앞선 글에서, 나는 경찰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심정과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비합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도움을 구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또 다른 피해자를 주저앉히는 글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그럼에도 한 번 해봐야 한다고 말해 본다.


지난해 코로나 지원금들이 각 지자체 및 행정부에서 지급되기 시작했을 때는 가구주 별 지원이었다. 다시 말해 집을 나온 나는 집을 나온 원인인 아버지가 피 같은 지원금을 꿀꺽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별 거 아닌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정말 귀하고 귀한 돈이었다. 그 후 몇 차 지원금이었을까, 지속적인 이의제기와 관할 주민센터의 문의를 통해서 나는 드디어 지원금의 일부를 수령할 수 있었다. 단서조항을 통해 주민센터 직원을 넘어 구청 직원에게 관련 서류를 제출하느라 며칠 지연되었고, 그 사이 내 아버지가 써버린 일부 지원금은 회수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일부라도 받을 수 있었다! 


얼마 안 된다고, 포기했다면 웬수 같은 아버지가 돈을 쓰게 내버려 뒀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복지 신청이다. 알다시피 부모님 소득이 잡히는 나 같은 탈가정 청년의 경우 복지예산 수령이 거의 불가능했다. 끊임없는 문의와 검색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원금도 받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나라에서 예산을 일부 지원받게 되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경우에는 소득분위 산정이 함께 사는 세대 기반이었다. 친척집이나 형제에게 신세를 지더라도 같이 사는 직계혈족(부모)의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는 안정적으로 1유형으로 매달 50만 원을 6개월간 지원받게 되었다.


물론 단점은 있다. 취업지원제도라서 기간마다 구직활동을 해야 하며, 다른 일을 병행하며 돈을 받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매달 50을 받으면, 50만 원 이상 알바를 구할 수 없다.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정해진 금액에 맞춘 아르바이트 자리는 정말, 없었다. 그래서 임대료를 내야 하는 탈가정 청년의 경우에는 신청하지 못할 것 같은 자리였다. 그래도 나는 지원금 덕분에 일부 모아둔 돈을 기반으로 6개월간 구직활동에 전념할 기회를 얻었다.


항상 성공적이진 않지만, 한계를 알아야 한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부모님의 주민등록등본 조회를 막지 못했다. 현재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아마 평생 얽매여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여성의 전화와 경찰의 도움으로 실제로 등본 조회를 막은 사람들이 있다. 

국취제도 취업대상만 되고, 복잡하고 번거로운 데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법들과 까다로운 규정들, 일부 태만한 공직자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한다. 막다른 벽에 도달하면 무릎을 꿇고 싶어 진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 그동안의 수고가 다 허사로 느껴진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나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단 한 번 해봐야 한다. 되는지 왜 안되는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짜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안된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시험당하는 만큼 우리는 세상을 시험해봐야 한다. 할 수 있는 영역의 윤곽선을 따라 훑어야 한다. 그래서 챙길 건 챙기고, 안 되는 건 되게 할 수 없는지 문의해야 한다. 


규칙이 항상 완전한 형태는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법과 규칙들은 항상 수정되고, 오늘은 안 되는 게 내일은 될 수도 있다. 또한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오류가 많기에 완전히 안될 줄 알았던 비슷한 경향의 일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 이게 되네? 싶은 일들. 그런 일들을 좀 더 많이 겪어보았으면 좋겠다. 모든 행위들이 의미 없어 보일 때 갑작스럽게 일이 풀리는 일들이 가끔 생긴다. 그런 일들이 앞으로도 사람을 노력하게 만든다. 


 "이게 되네" 싶은 일들은 세상의 허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왜 안되냐고 물었던 우리의 승리다. 허사일지도 몰랐던 모든 질문들이 또 다른 사람에겐 구원이 되기도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약자 입장에서는 자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은 목소리로도 끊임없이 벽을 부숴달라고 소리친다면 가끔은,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




<탈가정 청년을 위한 국민 취업지원제도 소개>

부모의 재산이 소득기준에 바로 합산되지 않고 함께 거주하는 직계 가족의 재산만 포함된다. 
(독립가구 개인 기준, 친척집에 얹혀살아도 지원 가능)

연령제한 : 15~ 69세. 취업준비 계층이면 거의 누구나 가능, 무직, 청년 우대(20~34세)

1유형 기준 월 50만 원씩 * 6개월 = 300만 원 지원 (2유형 면접, 교육수당 지원)
취업교육 감액 혜택 존재 (내일 배움 카드 사용 시 적용, 대부분 자비부담 없음)

다만, 월 5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얻으면 금액 지원 종료 -> 대부분의 알바는 제한적,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힘듦.
월별 구직활동 2회 혹은 자격증 등 취업교육 필요. 정기적 상담, 상세 규정에 따라 스트레스받을 수 있음. 

문의처: 관할지역의 고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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