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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전업주부 일기.

by 온다정 샤프펜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아침에도 102호 거실에서 눈을 떴다.

늘 그렇듯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렸지만 전 날에 조금 피곤했던지 오늘은 몇 번이나 알람이 울린 후에야 일어났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2층으로 올라갔다.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벌써 다 씻고 옷 입느라 한창이다.

(엄마가 1층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후로 어쩐 일인지 깨우지 않아도 혼자 벌떡 벌떡 잘 일어나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야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오늘은 무슨 메뉴로 아침밥을 할까. 극 P성향인 나는 짧은 시간 급하게 머리를 굴려본다.

일단 냉장고를 여니 엊그제 사놓은 딸기가 눈에 띈다. 주말에 가끔 예산 근처 하나로 마트에 가는데 농부들이 수확한 작물들을 싸고 신선하게 바로 살 수 있어서 좋다. 교외로 드라이브도 가고 장도 싸게 볼 수 있어서 어느새 우리 부부의 주말 루틴이 되었다.


딸기를 씻고 플레인 요거트를 꺼냈다. 딸기를 잘 못 먹는 첫째를 위해 참외도 하나 깎았다.

평소에는 주먹밥이나 계란 볶음밥, 계란국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늦게 일어난 탓에 가볍게 준비했다.


초라하게(?) 차리든 화려하게 차리든 두 딸과 남편은 별 반응이 없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한적한(?) 주택에 사는지라 아이들의 학교가 가깝지는 않다.

작년까지 두 아이들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었는데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시간이 애매하게 맞지를 않아서 요즘 둘째는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를 다닌다.

상대적으로 학교가 먼 중학생을 데려다주게 됐다.


차에 타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오면 길냥이들이 밥을 달라며 날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빴던 녀석들이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날 보면 밥 달라고 야옹야옹 뭐라고 말도 건다.

작년 겨울에 우연히 길냥이 모녀가 우리 집 지하에서 추위를 피해 머물게 되었는데, 봄이 되니 엄마 고양이는 조금 성장한 새끼를 두고 떠나버렸다.

쪼그만 게 뭘 안다고 엄청 풀이 죽은 작고 초라한 생명이 한동안 안쓰러웠는데, 지금은 동네 길 냥이 친구들도 생기고 우리랑도 많이 친해져서 한결 마음이 좋아졌는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가끔 마당 풀숲(초기 잡초 뽑기에 실패한 마당은 조금만 있어도 숲이 우거진다) 구석진 곳에서 늘어져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서 이런 게 행복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할리땡으로 출근(?)을 했다.

학교 근처 도로변에 3층짜리 할리땡 단독건물이 있는데, 넓고 조용해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일이나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이 찾는다. 매장 크기에 비해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눈치 보지 않고 두 어시간 작업하기에 좋은 장소다. 여기서 식사도 해결할 수 있어서 가끔 점심을 먹기도 한다.


8시 50분, 할리땡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0분 정도 차에서 멍 때리다가 9시에 화상영어회화 수업을 위해 줌에 접속했다.

25분 동안 수업이 진행되는데 공부한 기간에 비해 나의 영어실력은 형편없기도 하고 실력이 느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선생님의 밝은 인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안 되는 영어를 하느라 나의 뇌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좋아서 이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10분 정도 수업 내용을 잠깐 복기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너무 좋아하는데 요즘은 이도 안 좋고 빈속에 마시는 것이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서 따듯한 녹차로 메뉴를 바꿨다.(녹차가 잇몸 건강에 좋아고 한다)


보통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 정도 초 집중해서 작업을 하는데 돈이 되는 작업은 아니라서 가끔 해이해지거나 목표를 잃고 넋 놓고 살 때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 하면 내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는 거 없이 곧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서 엄청 산만한 나이지만 나름 노력 중이다.


이렇게 오전시간에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나의 뇌와 정신건강에 아주 도움이 된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자기 전에 뭔가 뿌듯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아서 잠이 잘 온다. 아이들 케어와 집 안일도 더 에너지 넘치게 임할 수 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서 집안을 정리했다. 평소 2시 반 이후에는 첫째와 둘째를 번갈아 가면서 학원에 데려다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하느라 오후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요즘은 아이들 저녁학원 시간에 맞춰 오전에 하던 필라테스를 저녁시간으로 옮겼다.

오전에 운동을 하면 그날은 작업하는 시간이 애매해져서 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가 버릴 때가 많은데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저녁타임 수업을 가니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저녁에 하는 것이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운동 다녀온 후에 에너지를 끌어모아 저녁시간을 더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하는 것도 더 개운하게 느껴지고 잠도 더 잘 자게 되었다.

일상의 패턴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서 최적의 루틴을 찾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오늘도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공부도 좀 봐주고(잔소리도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1층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조용히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다.

느릿느릿 샤워도 하고 잠옷을 입고 얼굴에 로션도 바르고 유튜브도 본다.

가끔 낮에 다 못한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밤작업은 나름 여유로워서 좋다.

유튭을 보다가 잠이 들면 다음날 다시 나의 하루는 시작될 것이다.


일기로 시작했는데 뭔가 또 길어지고 말았다.

오늘의 하루도 이렇게 알차게 끝이 났다.

40대 전업주부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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