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면접 특강에서 사용하는 PPT 내용 중에 취준생들이 가장 와닿는다고 말하는 슬라이드가 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하다고 말하는 모순
이것이 바로 면접관 앞에 선 취준생들의 심리다. 애써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 거짓말의 향연이나 다름없다. 어린아이에게 ‘숙제 했니?’라고 질문했을 때 안 하고도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숙제를 안 한 것을 알고 ‘내일까지 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을 때,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심리적 거짓말’이다.
‘심리적 거짓말(Psychological Lies)’은 코치가 만든 표현이고,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기기만(Self-Deception) 또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라고 한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그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 때문에 긴장하게 된다. 그 아이가 자라 취업준비생이 되어서도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면접에서의 긴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물론 이렇게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취준생에게 그런 거짓말을 강요하는 사회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갈수록 신입 지원자에게 높은 수준의 직무 역량을 요구한다. 제대로 된 산학협력이 전무한 현실에서, 해보지도 않은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거장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의 심리적 고통이 ‘자기경험’과 ‘자기개념’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자기경험’이 꾸밈없는 날것 그대로의 ‘진짜 나’라면, ‘자기개념’은 ‘나는 ~해야만 한다’ 또는 ‘나는 ~처럼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가면을 쓴 ‘만들어진 나’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우리는 내면의 균열을 경험하며 불안과 긴장에 시달린다.
면접을 준비하는 취준생의 마음이 바로 이 심리적 불일치의 전형적인 예다.
코칭을 받기 전에는 특정 회사에 대한 지원 동기라고 할 만한 게 딱히 없는데, 자꾸 지원 동기를 물어보니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회사의 인재상, 비전 같은 것들을 보고 저를 그 인재상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어요.
‘진짜 나’는 직무 경험이 부족하고, 화려한 성공담도 없으며, 때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확신이 없다. 하지만 면접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직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을 갖춘 준비된 인재’라는 ‘만들어진 나’를 연기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취준생들은 합격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읽으며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고뇌한다. 코칭을 받으러 온 많은 분이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즉, 본래의 나와 말하는 나의 불일치, 이 자기모순의 상태가 해결되지 않는 면접 긴장을 유발하는 것이다.
면접관의 눈을 바라보며 “저는 이 직무에 가장 적합한 인재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는 ‘과연 그럴까?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내면의 충돌이 바로 긴장의 실체다. 입으로는 자신감을 말하지만, 눈빛과 표정은 불안을 숨기지 못한다. 그리고 면접관은 그 미세한 균열을 읽어낸다.
자기불일치의 심리는 취준생들을 ‘슈퍼맨 콤플렉스’로 몰아넣는다. 합격자들의 자기소개서에 등장하는 화려한 해외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 경력, 특출난 리더십 사례 등을 보며 ‘저 정도는 되어야 합격하는구나’라는 잘못된 기준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평범한 경험들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한다.
대한민국 취업 시장에서 ‘직무 역량’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역량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독일처럼 진정한 산학협력의 체험 기회가 제도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지 않은 활동을 있는 것처럼 적거나 부풀리는 부정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면접 코칭은 스토리, 스피치, 마인드 코칭이다. 각 영역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할 말이 없어요.” (스토리의 부재)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근사한 이야기’가 없을 뿐이다. 자신의 작고 소소한 경험들은 ‘이야기’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스스로 판단해 버린다. 친구들과 MT 가서 설거지를 도맡아 했던 즐거움이나, 동네 노래자랑에서 프라이팬을 상품으로 받아 기뻤던 기억은 ‘직무 역량’이라는 거창한 단어 앞에서 초라하게 느껴진다.
“너무 떨려요.” (스피치의 불안)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진다. 내 이야기가 면접관에게 어떻게 들릴지, 혹시나 비웃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자기검열에 빠진다. 이는 결국 스피치 울렁증으로 이어진다. 내가 하는 말에 스스로 공감하지 못하니, 듣는 사람 역시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마인드의 위축) ‘나는 부족하다’는 자기인식은 결국 ‘나는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거야’, ‘나는 합격할 수 없을 거야’라는 부정적인 자기 예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마인드는 면접 내내 자신감 없는 태도로 드러나며, 면접관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회사도, 면접관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신입 지원자에게 경력직 수준의 완벽한 직무 역량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거창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일을 잘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일을 시켜봐야 제대로 알고, 결혼도 해봐야 그 사람을 온전히 알게 되듯, ‘사회적 결혼’이라 할 수 있는 취업도 마찬가지다. 면접관은 지원자의 과거 경험을 통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예측할 뿐이다.
코치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사람이다. 지원자의 과거 경험을 듣고, 그것이 미래에 하게 될 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다리를 놓아준다. 그리고 면접관에 앞서 지원자 스스로가 그 연결고리를 납득하고 수긍하게 만들어야 한다. 코치가 원하는 멤버의 마음은 이렇다.
‘나는 그 일을 직접 해본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 일과 관련된 경험은 있어. 단순히 관심의 차원일지라도, 그것을 나의 강점으로 말하자.’
코치는 늘 말한다. “경력직 면접에서는 세 가지만 묻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떤 결과를 내었고, 어떤 평가를 받으셨나요? 하지만 신입 지원자는 경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험’을 묻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관심, 참여, 공부입니다.”
관심: 그 직무와 산업에 대해 얼마나 꾸준히 흥미를 가지고 지켜봐 왔는가? 관련 뉴스를 스크랩하거나, 관련 서적을 읽는 것 모두가 훌륭한 ‘관심’의 증거다.
참여: 직접적인 직무는 아니더라도, 관련 동아리 활동, 스터디, 공모전,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그 분야를 체험한 적이 있는가?
공부: 그 일을 잘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가? 자격증 취득, 온라인 강의 수강, 관련 프로그램 학습 등은 모두 그 직무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부’의 과정이다.
예를 들어, 건설회사에 지원했던 한 멤버는 자신의 ‘노가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현장소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꼼꼼함과 연결했고, 은행에 지원했던 다른 멤버는 부모님의 은행 앱 사용 경험을 고객 관점의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자신의 평범한 경험을 ‘관심, 참여, 공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직무와 연결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진솔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가진 지원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