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에게

첫 번째 편지 : 가만히 흘러도 좋은 라디오처럼

by pine

"있는 그대로 너는 나에게 빛나는 사람이야. 나에게는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아도 좋아. 네게 온기를 주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안녕.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어?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너의 강한 책임이 스스로를 짓누르진 않았는지. 참 너를 생각할 때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거 같은 내 모습이 신기해. 너의 걱정이 나의 걱정을 앞지를 때면 나는 너를 이렇게 많이 아끼는 구나 새삼 놀라곤 해.



나는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어. 라디오를 틀어둔 채 무언가를 하는 저녁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큰 휴식이거든. 내 삶에서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좋아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면 아마 하나는 라디오일 거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무것도 아닌 날도, 라디오는 나와 함께 했어.


얼마 마음이 아픈 친구에게 라디오 듣는 걸 추천해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묻더라구.

"라디오를 들으면 네 삶의 문제들이 해결돼?"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는 한 번 더 질문공격(?)을 했어.

"라디오를 들으면서 특별히 큰 힘이 되었던 적은 언제야?"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어. 사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아주 거창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거든. 그리고 생각해 어. 나는 왜 라디오를 좋아할까.



나에게 라디오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거야. 화려하고 거창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아. 특별히 라디오를 듣는 시간만을 따로 내지도 않고, 듣는 동안 무언가를 얻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지도 않아.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고 조용히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목소리와 음악을 배경 삼는 거뿐이지. 어떤 날은 아주 깔깔거리며 신나게 듣지만, 또 어떤 날은 두 시간 내내 라디오를 들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어.


그럼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무의미 한 게 아니냐고? 나에게 라디오는 애써 채우지 않아도 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여백이야.



가만히 흘러도 좋은 라디오처럼 어떤 부담도 주지 않는 편안한 위로,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어. 알고 있어. 나는 너의 짐을 대신 들어줄 수 없고, 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 하지만 너의 마음이 울적할 때 사소함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작은 여백이 있다는 걸 잊지마. 사실 화려한 선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위로는 아무나 줄 수 없잖아.


있는 그대로 너는 나에게 빛나는 사람이야. 나에게는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아도 좋아. 네게 온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벌써 시간이 많이 늦었구나. 오늘도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어. 실은 너에게 편지를 쓰느라 어떤 사나왔는지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네. 그래도 좋아. 오늘도 라디오는 따뜻한 배경이 되어주었으니까.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했어. 너의 내일도 매일도 행복하고 따스하기를 기도해.


오늘도 좋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