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 | 사막 투어
배낭을 역도 하듯이 들어 쇠골뼈 언저리에 걸치고 있으니 지나가던 승객이 도와줬다.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리라. 델리에서 자이살메르까지는 한나절을 줄창 달려도 모자란 거리, 두번 잠에 들고 네댓 번을 먹어댔다. 창문을 여니 눈과 입으로 모래가 들이닥친다. 파란 좌석 시트 위에 쏟아버린 듯하고, 옷 주름 켜켜이 하얗다. 거의 다 온 것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는 아름다운 황금빛 성채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숙소 내 식당은 독특하게 좌식이었는데 말린 바나나 잎을 엮어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바닥과 벽면에 흰 페인트를 발랐고 괜히 둔 것없이 말끔했다. 나는 차양막 아래 마름모꼴로 생긴 그늘에 숨어서 메뉴판을 보았다. 한국 메뉴들이 보이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지고, 옆에 있던 종업원이 헤벌쭉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한국 음식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오후 일정을 마친 투숙객들이 식당으로 올라왔다.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건만, 어색한 분위기는 날아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금세 친해졌다. 해가 지면서 차양막이 거둬졌고 별 빛에 푸르스름 번지는 하늘이 드러났다. 별자리를 보라는 사장님의 권유로 모두 발라당 누웠다. 오리온자리가 선명했다. 콕 콕 찍혀있는 별들을 검지손가락으로 이어 그리다가 문득, ‘밤하늘이 이렇구나’ 깨달았다.
잠을 설쳐 버렸다. 대절한 차량을 타고 낙타가 대기 중인 위치까지 간다고 했다. 모래바람을 뿌옇게 뒤집어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며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멀리 가는구나…’
내가 뭐에 홀린 듯 낙타를 만지려 하자 길잡이가 소리쳤다. “안 돼요!“ 위험하다며 도리질을 쳤다. 나는 얼른 등 뒤로 손을 감췄다. “화가 나면 침을 뱉거나 뒷발로 걷어찰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길잡이가 고삐를 잡아당겼다. 눈 앞에서 멜론통만한 무릎이 구부러진다. 몸뚱이에 비해 다리는 한없이 길고 가늘었다. 낙타가 앉았는데도 안장까지 높이가 아직 상당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친절한 길잡이가 자신의 무릎을 꿇어 보이며 여길 딛고 발받침을 밟으라 한다. 그러면서 단번에 힘을 주어 올라타야 한다고.
말캉할 거라고 생각했던 혹이 돌덩이 같았다. 그것을 마법구슬 다루듯이 쓰다듬어 보았다. 귀여웠다. 길잡이가 구령을 내뱉자, 낙타가 엉덩이를 치켜 올렸다. 머리가 꼬꾸라지면서 앞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이번엔 앞다리가 펼쳐졌다.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우아아!” 등꼴이 서늘해질 정도의 높이였다. 낙타는 우람했다. 몸이 단단한 걸로 모자라 딱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왜 그렇게 걷는지, 제자리에서 통통 튀듯이 걸었다. 그 율동감이 고스란히 내 엉덩이에 생각지 못한 통증을 일으켰다. 매타작이 따로 없었다. 허리를 요리조리 돌리며 꾀를 내 봤지만 낙타 걸음이 워낙 울렁거려 아무 효과가 없었다. ‘아이고 죽겠다.’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래된 빔프로젝터 돌아가는 소리가 강의실을 메운다. 수업 종료까지 9분 남짓, 이 수업만 끝나면 약속 따라 흩어질 청춘들은 지루하다. 화면의 절반 넘게 까만 하늘이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로 붉은 텐트 이미지가 가로지른다. 초창기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는 사진은 맥없이 흔들려서 불빛이 사방으로 어린애 낙서하듯 지랄이 되어 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오래된 사진이지만…” 자글자글한 노이즈가 사진 속 인물뿐 아니라, 급한 데로 먹고 남긴 잔반, 옷가지가 나뒹구는 텐트 내부 위로 징그럽게 맺혀있다. 이어서, 모래 언덕이 커튼콜 무대처럼 식어가는 경관 - 하얗게 뭉개진 섬광 - 네 발 달린 짐승의 그림자를 찍은 사진이 차례로 넘어간다. “이때, 아이들과 함께 있었어요. 큰 애가 열 살이었죠.” 목덜미가 드러난 선명한 짐승의 실루엣에서 화면이 멈춘다. “여기가 사막이에요. 아이들과 별자리를 보고 잠들었는데, 갑자기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녀는 잡고 있던 마우스를 흔들었다. 화살표 커서가 요동치다 그 짐승의 얼굴로 추정되는 위치에서 동그랗게 동그랗게 그려졌다. ”이 녀석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겠어요? “ 그 순간을 떠올린 듯 미간이 찌그러진다. “야생동물을 대적할 도구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어요. 소리도 지르고 텐트 벽을 치면서 더 큰 존재인 양 굴어봤지만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죠. 나는 종교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진지했다. ”녀석은 계속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불현듯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던 것 같아요.“ 그녀가 숨을 고르려던 순간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청춘들의 책상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고 누군가는 손목시계를 보거나 턱을 괴고 창 밖을 보거나 했다.
돌연 그녀가 빙그레 웃어 보이며 말했다. “떠돌이 개를 왜 늑대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음 사진을 띄웠다. ”아마 불안했겠죠.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가.“ 지금 생각해도 멋쩍다는 듯 코 끝을 쓱쓱 문질렀다. 그날은 그녀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어둠은, 개를 늑대로 착각하게 했지만 밤하늘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날 밤 봤던 은하수를 잊지 못합니다. 지금도 종종 두려운 만큼 아름다웠던 별빛을 생각하면서 지낼 때가 있어요.”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그렇게 대신했다. 저화질 화면에도 선명한, 까만 허공을 가득 채운 하얀빛의 무리.
그리고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떠올려보고 있다.
엉덩이가 마비될 때쯤 돼서 내렸다. 간이 움막 하나가 쳐져 있었고, 저 멀리 개미처럼 다른 투어 팀이 지나간다. 길잡이는 낙타에 매달아 놓은 짐을 모두 내리고 고삐를 풀어 자유롭게 했다. 낙타들이 일렬종대로 모래 언덕까지 걸어 나갔다. 인상적이었다. 모래 낱알이 소금 결정처럼 반짝거렸다. 내딛을 때마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맨발을 드러내고 ”이게 편하다“ 했다. 사막이 노란 바다처럼 보였다. 끝없이 이어지다 지평선이 싹둑 자르고 앉아 있었다. ”저 너머에도 사막이 이어질 것만 같아.“ 누군가 피식 했고 다시 고요했다. 그러다 우리들 목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 조용히 그걸 듣고 있는 이가 있었다.
하늘에 불구덩이가 떠있다. 오렌지 같더니 돌변을 한다. 태양의 귀갓길이라고 청소라도 해놓은 듯 구름 한 점이 없다. 왕림하듯이 천천히 내려 온다. 이제는 진홍색으로, 눈을 떼지 않았음에도 그 신비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깨닫는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망망대해같은 땅에 앉아 한국에 있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봤으면 좋았을텐데.” 그 말이 살아서 스스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