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게 싫어.”
하원 하는 길, 내 손을 잡고 걷던 아이가 대뜸 말한다.
최근 부쩍 거울 앞에서 눈가 주름을 살펴보는 일이 잦아 졌어도
이제 나도 아닌 척 하나는 기깔나는 경력 쯤은 쌓였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야 네가 어른이 되는 거야.”
“싫어. 어른 안될 거야. 엄마도 할머니 되지 마.”
이렇게 보니, 조금 울상이 되어있다.
최근 우린 많이 붙어 지냈다. 잠옷 차림으로 삼시 세 끼 집에서 나오는 음식을 받아 먹으며,
엄마 살 냄새에 파묻여 지냈다. ‘거리두기’ 때문이지만 영유아 이후로 실로 오랜만의 행복이기도 했으리라.
“그건 네가 싫다고 해서 되지 않는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어른이 되어야 새로운 세상이 오는 거야.”
“새로운 세상이 오면 좋아?”
“음.. 뭔가를 기대해볼 수 있지.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가져다주실까 생각해보는 마음처럼.”
“그래도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건 싫어. 할머니가 되면 하늘나라로 떠날 거잖아.”
왜 인간은 행복을 느끼면서 동시에 불행을 신경쓸까.
이렇게 어린 인간도 그 굴레를 감지하고 있다.
“언젠가 네가, 나는 엄마의 분신이라고 했었지? 그래 너는 엄마의 미래야. 엄마는 너에게 미래를 나누어주고 과거가 되는 거야.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좋아. 할머니는 멋진 과거가 될 거야.”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다.
나는 잡고 있던 손을 앞 뒤로 가볍게 흔들어 본다.
“…알았어”
대답하고 얼굴을 들지 않는 아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여린 머리칼을 보면서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싶었다.
“사랑해. 우리가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그게 제일인 거야.”
바람이 제법 따뜻하다. 꽃봉오리가 터져오를 시기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