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리 Aug 24. 2024

응? 거기가 아닐 텐데?


만원 버스, 하차 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내 집은 종점 앞에 있어서 들어올 때는 사람들이 점점 빠지고 나갈 때는 점점 차오르는데, 출발해서 세 정거장 정도 지나면 꽉 찬다.


꼬마는 창 밖에 지나가는 간판을 보면서 어디에 가보고 싶고, 뭐는 먹어보고 싶다는 놀이를 하고 있다.


우리 앞으로 젊은 커플이 섰다. 키가 크고 웃음이 헤픈 듯한 남자친구는 배낭 두 개를 겹쳐 메고 그녀의 장단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맨 뒷자리와 그 앞엔 대학생이 꽉 찼는데 소풍 가는 여학생들처럼 요즘 드라마와 인기 있는 연예인 이야기로 신이 났다.


“엄마, 나 간지러워.”


아까부터 곱스레 한 반달눈을 하고 꼬마를 보던 긴 생머리 여자는 눈치가 다 듣고 있는 듯 하다.


“엄마.. 나 간지럽다고!”


그 여자는 옆 친구를 툭툭 치며 쟤 좀 보라는 눈빛을 건네었다가 다시금 ‘찡그리는 얼굴도 귀엽네‘ 뭐 그런 표정을 짓는다.


나는 손을 동그랗게 굴려서 비밀 유지하듯 속삭인다.

“금방 도착하니깐 내려서 긁어줄게.”


꼬마는 듣기가 무섭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엉덩이를 좌우로 들썩이다 쓱쓱 비비고 다시 콩콩 찧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곧 터질 폭탄 같은 것을 다독였다.

“조금만 참자, 사탕 사줄 게.”


꼬마는 얼마 전부터 허벅다리 안쪽에 염증이 생겨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집에서는 속옷을 벗기고 널널한 바지를 입혀 놓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됐는데 외출을 하면 꽉 끼는 옷을 불편해했다.


꼬마는 아까보다 더 격하게 엉덩방아를 찧어대며 긁어달라 긁어 줘 노래를 부르다가 급기야는 벌떡 일어나 골반 뼈를 비트는 요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피식거렸다.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그래.. 보기와는 전혀 딴판인 어린아이 허벅지 속사정 같은 거 그대들이 알게 뭐람.


나는 꼬마를 앉히고 좌식 시트와 엉덩이 사이로 손을 넣은 뒤 아무도 모르게 팬티 라인을 슥슥 긁어줬다.


“더 쌔게!”


주워 담고 싶은 황당한 지령이 떨어졌다.


“더 안쪽으로 더 쌔게 긁어 줘!”

“응? 어디를? 여기, 여기?”


이왕 고개를 쳐 박은 김에 그냥 꼬마 엉덩이 사이로 들어가 소멸되고 싶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박박 긁었다. 꼬마는 괴이한 쾌감의 소리를 내며 마렵던 똥 싼 강아지처럼 개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엄마, 꼬추 긁어 줘”


‘아 안 돼, 안 돼 이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나는 모른 척을 하고 앉아 있었다. 꼬마는 도리질 치는 나를 요로코롬 올려 보더니 ’못 들었나요?‘ 표정이다.


“나 꼬추 간지러워!”


“쉿!”


수군거림과 웃음소리가 파도를 쳤다.

적날한 그 소리 때문에 나도 결국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엄마가 웃어버리니, 엄마가 행복한 줄 안 꼬마는 불길한 시동을 부릉부릉 거는가 싶더니 결국 당당하게 폭발했다.


“나 꼬추 긁어 줘! 꽈추 꽈추!“

그러더니 익살스럽게 웃었다.


아이 웃는 소리는 얼마나 강력한지,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승객 모두의 눈이 꼬마를 향해 있었다.

그 순간에 잠시 시간이 멈췄던 것 같다.


하차문이 열리자 모두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렸고 앞사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뒷사람들의 입꼬리에도 은은한 미소가 끼쳐 있었다.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꼬마는 자기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싸인이라도 하듯 눈 맞춤을 해주느라 바쁘다.


“지금은 어때? 안 간지러워?”

“사탕은 포도맛으로!”


저 멀리 편의점을 발견한 꼬마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고 보니 냥이 코가 가만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