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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 Sep 07. 2024

네가 지나가던가 내가 지나가던가

조드푸르 | 생명의 탄생


조드푸르 버스정류장에서 숙소가 있는 중앙 시장까지 오토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도로 정비 중인지 곳곳에 공사 펜스가 쳐져 있고 흙먼지가 많이 날렸다. 릭샤가 커다란 암벽처럼 들쭉날쭉한 돌바닥 위를 요령 없이 질주해 대는 통에 멀미가 심하게 났다.


시장 입구 앞에 내리니 버터 달구는 냄새가 진동했다. 조리사는 흔한 평상복 차림에 손톱 밑이 새까맸고 가판대에 매달린 수건은 많이 더러워 보였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위생상태와는 별개로 멀미는 진작에 끝냈고 내 머리를 지배한 그 고소한 냄새에, 나는 홀린듯이 오믈렛을 두 개나 먹어 치웠다. 그 사이 단련된 덕에 음식에 섞여 나온 바퀴벌레 하반신 쯤은 도리질 몇 번에 이내 상관 없어질 만큼 나는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한 터였다. 시장은 저렴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맛집 음식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고 뷰티용품과 화려한 옷가지를 눈요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좋은 곳이었다.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간 숙소엔 빈 방이 없었다. 올라가는 계단을 빙 둘러 각국의 후기가 가득한 걸 보니 인기 좋은 숙소가 분명했다. 내가 아쉬워하니 내일은 방이 날 거라고 했다. 하릴없이 하룻밤 묶어 갈 곳을 찾아 동네를 기웃대다가 조금 먼 곳까지 걷게 되었는데 그쪽은 비교적 여행자 통행이 적은 듯했다. 층계에 청소가 착실해 보였고 주변이 조용했다. 옥상에서 빨래 널던 할머니와는 다음 날 아침에도 눈이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지 않는 내가 이내 별꼴이라는 듯 연신 고개를 까딱 거렸다. 어딘가 매몰찬 구역이라 느껴졌고 마음이 위축되어 그 숙소에 방이 제발 나야할텐데, 하며 급급해졌다.


조드푸르는 길목을 점령하고 앉은 소나 개들이 많았다. 물리거나 받히면 비할 바 없이 큰일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조심했다. 아침 산책할 겸 들어선 오전에 상점가. 마주 온 사람들의 어깨가 스쳐질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나는 우선 짜이를 먹을 심사로 다른 요깃거리엔 시선을 거두고 작은 장신구들을 떼다 파는 노인들의 모습이나 바라봤다. 그사이 만남이 빈번해진 어떤 할머니와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덩치 큰 소 한 마리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하얀 뿔에 거무튀튀한 게 묻은 누런 황소였다. 나는 피할 곳이 마땅찮아서 일단 벽으로 등을 안일하게 붙이고 섰다. 소에게 길을 양보한 셈. 그런데 이 소, 지나지 않고 내 앞에 그대로 멈춰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영문인가, 쳐다보니 그 동물도 멀뚱히 나를 본다. 네가 가야 나도 갈 거 아니냐, 이런 황당한! 그것의 굵직한 뿔에서 매서운 기운이 솟구치고, 나는 과녁에 묶여 버린 듯 아예 꼼짝을 못 하겠다. 내 눈인사를 상냥히 받아주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앞으로 쿡쿡 찌르며 지나가라는데, 쭈그리고 앉아 싸리 원단 끝이나 싹싹 비비는 꼴이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인간의 촉은 때때로 얼마나 믿어봄직한가, 나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큰 눈알이 내 발 끝을 노려보고 있다. 눈치 없는 날파리가 앞면에 알짱거려도 미동도 없이. 내가 울 것같은 표정으로 어쩌질 못하고 있으니, 저어쪽 소 뒤꽁무니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냥 오면 된다며 재촉한다. 이제 내 뒤엔 어느 남자가 짐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서있다. 퍼스트 펭귄이라도 된 듯한 이 압박감은 무어라 말이냐, 나는 떠밀리듯 엉거주춤 오른발을 앞으로 주섬주섬 내밀었다. 머릿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잽싸게 다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곁눈으로 나를 따라붙는 녀석의 머리가 보이고 말았다. ‘저뿔에받히면죽을지도몰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넘어졌고 그 바람에 돌벽에 드르륵 옆구리가 갈리며 티셔츠가 터졌다. 소름 돋는 공포가 몸을 얼렸고 나는 마치 지옥문에라도 갔다 온 사람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안도와 함께 놀란 마음이 지랄을 뿜으려던 찰나, 어느 젊은 청년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어딘가를 가리킨다. 눈에 봬는 것도 없을 것 같은 거기엔 그 어미에 반 줌도 안되어 보이는 송아지가 있었다. 그 어린것이 겁이 나서 어미소 가랑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얼 빠진 내 표정이 귀엽다는 듯 희죽희죽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나는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이대로 여행 종 칠 뻔한 게 아니었나 싶어 결국 억울한 감정이 폭발했다.


옆구리 살갗이 뒤집어져 피가 삐질삐질 흐르자, 놀란 마음도 주룩주룩 눈물을 흘려 그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울에 비춰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 마땅한 게 없어 급한 데로 후시딘을 치덕치덕 바르고 다시 보니, 흐르는데로 문질러 닦아 눈물과 범벅이 된 얼굴이 볼썽사납다. 두다다다 뒤늦게 달려오는 타격감에 공중에 발길질이라도 해야 나을 성싶다. 아오, 아오, 감정의 시체처럼 죽어나오는 외마디 신음이 부대꼈던 마음을 겨우겨우 식혀주고 나는 그만 모든 의욕이 사라져 옆구리를 헤 벌린 채 쓰러져 그대로 낮잠에 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묶던 숙소는 소위 게스트하우스 상권이 형성된 골목에 있었다. 외국인이 자주 드나드는 골목이다 보니 비교적 청소가 활발하긴 했으나 송아지가 왜 유독 많이 보이는지는 의문이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소유겠거니 했으나, 모두 ‘떠돌이 소’ 일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 산책을 나설 때도 웬 어미소와 송아지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몸에 붙은 이물질을 떼줘도 가만히 있는 게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눈치였다. 듣기로는 출산이 임박한 암소가 자리를 선택한다 했고, 그렇게 어느 집 앞으로 소가 찾아오면 무사히 출산을 하고 송아지와 떠날 때까지 자발적으로 보살피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에게 매우 익숙한 일로 보였다. 며칠 뒤, 골목 초입에서 배가 남산만 한 암소 한 마리를 봤고 그걸 본 누군가가 지나가며 오늘, 내일 중일 거라고 말했다.


메헤랑가르 성*을 둘러보고 중앙 시장으로 돌아와 맥주와 요리를 즐겼다. 한 번 보는 걸로는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었고 그 미감에 감동한 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절거렸다. 해 질 녘엔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라씨집에 찾아갔는데 줄이 바깥으로 길게 서 있었다. 다가올 물갈이 후폭풍쯤이야, 이렇게 더운 날씨에 안 마시고 버티는 게 어디 쉽겠냐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입장 줄에 서있었다. 한 줄로 긴 입장 행렬이 테이블 사이와 사이를 굽이쳐 카운터 앞에 다다르면 사람들이 라씨 한 잔을 받아마자 쭉 들이키고 입가를 쓱 닦으며 저 끝에 보이는 출구로 빠져나가는데 그 모습이 흡사 컨베이어벨트 같았다. 드디어 주문에 들어간 내가 이 긴 줄을 다시 설 순 없다며 세 가지 맛을 받아서 손가락 사이에 끼어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무심코 쓱 핥아먹었을 때, “세상에, 뭘 넣은 거야?”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윗입술을 구겨 넣고 비닐 컵이 찌그러지게 후루룩 쭉쭉 빨아 마셨다. 한국에서 사 먹던 라씨와는 전혀 달랐는데 뭐랄까, 고급 향수 같은 맛이 났다.  

  

*메헤랑가르 성: 1459년 마르와르 왕국의 왕인 라오 조다가 122m 언덕 위에 건설한 거대한 요새 궁전.


캄캄한 밤, 요리와 라씨로 든든해진 배를 두들기며 걸었다. 노오란 가로등이 돌바닥과 건물 외벽을 비추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숙소로 접어드는 공터 앞에 웬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봤더니 곧 송아지가 태어날 것 같다고 했다. 거기에 어제 봤던 그 소가 있었고, 아마도 그의 집 앞인지 어떤 남성이 곁에서 살피고 있었다. 그 공터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 여행자들이 앉아 있는데 대강 어림해도 백 명은 넘어 보인다. 나는 심히 영화의 한 장면스런 그곳의 한쪽 귀퉁이에 조용히 앉았다.


이미 잠든 것처럼 조용한 거리. 소는 미끄러지는 몸을 안간힘으로 바로 세우고 있다. 남성이 물동이를 떠 와 옆에 두고 조금 떨어져 그걸 보고 있다. 그 사람에게만 허락하고 있는 거리였다. 눈가와 입가에 허여멀건한 점액질을 매달고 있는 모습에, 얼마나 인간답게 이기로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소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리를 고쳐 앉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걱정이 어려있다.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구르는 짐승의 눈,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긴 진통을 덤덤하게 참아내고 있다. 얼마나 큰 고통일까, 상상할 수 없다. 소가 벌떡 일어났다. 엉거주춤 앞 뒤로 걷는다. 골반 뼈 아래로 송아지를 품은 배가 터질 것만 같다. 하얀 콧김이 세차게 뿜어진다. 차가운 침묵, 곧 쏟아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주시하던 남성의 눈빛이 바뀌었다. 들은 사람이 그 옆에 귓속말을 한다. 그게 도미노처럼 나에게 다다르자, 송아지 발이 보인다고. 소가 몸을 돌려 머리를 저쪽에 두니, 내게도 보인다. 작고 나란한 발바닥. 남성의 표정이 어둡다. 소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뿐, 어떻게 송아지를 밀어내야 될지 모르는 눈치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송아지의 일부가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최대한 돌려 자꾸만 뒤쪽을 보려 한다. 송아지의 뒷다리가 좀 더 나왔다. 이제 거의 무릎이 보일락 말락. 분명하게 알아봐 지는 송아지의 뒷다리다. 흐르려는 감탄사, 암소가 놀랄까 봐 손바닥으로 얼른 입을 막는다. 소는 계속 뒤쪽을 의식하며 불안한 표정이다. 그때 소가 몸에 힘을 준다. 절제되어 있는 힘이다. 단 한 번도 울지 않고 소는 엄청한 힘으로 새끼를 낳고 있었다. 송아지의 허벅다리가 보이던 순간, 소가 다음 호흡을 내뱉자 그 엉덩이까지 불쑥 밀려 나왔다. 낮은 탄식의 소리가 흐른다. 왜 송아지는 한 번에 나오지 않고 저리 어미 소를 힘들게 하는가. 송아지의 뒷다리가 어미 소의 엉덩이 아래에 낀 채로 한참 동안 진전이 없다. 긴장한 표정의 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 상태로 몇 분이 지났다. 송아지가 숨은 잘 쉬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된다. 남성이 손을 댈지 망설이던 찰나, 송아지가 왈칵 쏟아져 나온다. 얇은 막에 둘러싸여 버둥거리는 몸.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모두 얼어버렸다. 송아지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머리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 여린 모가지가 비틀거리니 보는 사람 애간장이 탄다. 옆으로 누운 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어린 생명이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네 다리를 펼쳐본 후 곧바로 다시 주저앉더니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린다. 귀여운 얼굴. 어서 오렴, 감동이 밀려온다. 어미소는 송아지가 뭘 하던 신경 쓰지 않는다. 보지도 않는다. 매정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어린 생명이 의지를 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리라. 양수를 뒤집어쓴 송아지의 얼굴이 가냘프다. 앞다리에 힘을 줘 딛고, 뒷다리를 일으켜 세웠다가 다시 실패한다. 두어 번 반복하더니 기어코 제 힘으로 벌떡 일어섰다. 넘어질 것처럼 비틀댄다. 다리를 시옷자 모양으로 넓게 벌려 균형을 잡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다. 비로소 어미소 곁으로 걸음을 떼니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한 환호를 보낸다. 그제야 어미소는 다가오는 송아지에게 곁을 내준다. 남성은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뒤쪽에 얇은 모포를 깔았다. 송아지는 이제 말똥말똥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낯선 이가 두려워 엄마 바짓가랑이 뒤로 숨은 어린아이처럼.


그 광경을 함께 본 같은 숙소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옥상에 모여 있었다. 감격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본 것과 느낀 점들을 나누며 식당 영업이 끝날 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오래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거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앉았다. 나는 송아지가 완전히 배 밖으로 나오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송아지는 두려워했으려나? 기대하고 있었으려나? 차가운 돌바닥으로 떨어졌던 그 순간, 잠깐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모습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송아지는 훨씬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그 귀여운 생명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크라며 축복의 말을 던져주었다. 가끔 젖을 빨고 어미가 조금만 움직여도 졸졸 따라다녔다. 오래 쳐다보는 것은 어미의 경계심을 부추겨 좋지 않다는 말에 나는 얼른 시선을 거두고 잰걸음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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