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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오무아무아(oumuamua)

7코스(제주올레여행자센터→서귀포 버스터미널, 12.9 Km) 3

by 커피소년

화살표와 함께 있는 ‘돔베낭골’ 안내판이 보였다. 밑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데크 길이었다. 올레길은 이곳을 비겨간다. 황우지·선녀탕 안내판이 있는 곳부터 이곳까지가‘돔베낭길’이다. ‘돔베’는 제주어로 도마, 낭은 나무를 뜻한다. 그래서 ‘돔베낭’은 도마처럼 잎이 넓은 나무가 많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돔베낭골’이니 ‘돔베낭’과 연관된 것이 있나 해서, 그리고 절경이라 해서 내려가 봤다.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과 바위 들의 해안이었다. 오른쪽으론 절벽이, 왼쪽으로 쇠머리코지와 동너븐덕 그리고 멀리 희미하게 새섬이 보였다. 그게 다였다. 나중에 보니 이곳에서 섶섬, 문섬, 범섬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다의 짙은 안개 때문에 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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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베낭골에서 본 풍경>


올라와서 올레길로 들어갔다. 먼저 정자가 보였고, 그리고 정자 전에 있는 작은 직사각형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좀 전, ‘60 빈스 카페’를 지나서 봤던, 한가운데 눈이 있고 챗GPT가 ‘출입 금지’라고 알려주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용은 사다리타기이었다. 이게 뭐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또 챗GPT에게 물어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안내판 하단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플레이 더 제주 <붉은 산호의 수수께끼> 아웃도어 미션형 게임에서 사용되는 조형물입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정자에 앉아 검색했다. 이건 게임이었다. 모바일 앱과 미션이 담긴 키트지를 사용하여, 쓰레기 줍기 등의 임무도 수행하고 문제도 푸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재미와 함께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는 취지도 있다. 게임의 이름의‘붉은 산호’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붉은 산호는 바다 생태계의 건강과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양 생물 지표종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이것을 어떻게 녹여냈는지 궁금하긴 했다. 온라인으로 먼저 키트를 구매하고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받으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게임 구간은 7코스 전체가 아니라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법환 포구까지 이었다. 이 구간을 걸으며 본 안내판은 이 두 개 전부였다. 나머지 수수께끼는 앱이나 미션 키트에 있는 것 같았다.

20250520_150337.jpg <게임 '붉은 산호의 수수께끼'의 안내판>

가만, 이것이 게임이라면 챗GPT가 알려줬던 ‘출입 금지’(정황상 출입 금지가 맞을 것 같지만)라는 안내판은 그 의미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챗GPT도 그것이 게임인지 몰랐던 것 같으니. AI도 사람을 닮아간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아는 채는 사람 말이다.


돔베낭골 주차장을 지나자 길은 내륙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서 스친 젊은 부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내가 주변을 보느라 걸음을 멈출 때면 그들은 나를 앞질러 갔다. 길의 중간쯤, 어느 집담에 피어있는 누런 결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소금 결정들이 검은 현무암들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결정이 아니라 식물이었다. 그런데 장식장의 꽃무늬처럼 보였고, 조화였으면 조화였지 생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꽃찾기앱을 통해 보니 다육이였다. 지금까지 내가 본 다육이는 작은 화분에만 있었다. 이렇게 야생에서 담에 핀 다육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머리를 심하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경험이 고정관념을 만들고, 고정관념이 세상을 좁게 제한하며 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론 경험은 사실을 보는데 장애물이었다. 경험은 사실의 한 부분일 뿐이니, 우리는 경험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집담은 예뻤다. 초록 잎의 가지들이 집담의 위쪽을 덮고 있었고, 빨간 장미가 담을 넘어 홍일점처럼 얼굴을 보여주었다. 검은 현무암들을 배경으로 피어난, 색이 빠진 다육이와 색이 진하게 드러난 장미 그리고 초록이 무성한 가지들이 자연 그대로 어울리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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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에 핀 다육이>


길은 태평로라는 도로에 막혀 직진을 멈췄다. 모퉁이에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Lua & Tigre’였다. ‘Lua & Tigre’는 카페였고, 포르투갈어로 Lua는 달을, Tigre는 호랑이를 의미했다. ‘Lua & Tigre’를 검색하다 우연히 섶섬, 문섬, 범섬의 설화를 보게 되었다. 옛날에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화살을 쏘았는데 잘못해서 설문대할망의 엉덩이를 맞추었다. 화가 난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서 바다로 던졌는데 봉우리가 쪼개져 떨어지면서 섶섬, 문섬, 범섬이 되었고, 한라산의 봉우리가 뽑힌 곳은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섬을 차례로 포개면 원뿔의 봉우리가 된다는 말도 있다. 일설에는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산방산이 한라산에서 뽑힌 봉우리라는 설도 있다. ‘Lua & Tigre’에서 문섬과 범섬을 볼 수 있다고 하기에 그런 설화를 실은 것 같았다. 카페는 ‘돔베낭골’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있었다.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20250520_151157.jpg <카페 Lua & Tigre 안내판>


왼쪽으로 방향을 튼 길은 서귀포여고 지나 첫 번째 골목에서 아래로 내려가 바닷가를 향했다. 이 골목에서는 간판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골목 입구에 개방된 넓은 마당을 가진, 아담한 건물의 카페가 있었다. 이름은 ‘벨롱벨롱’, 제주어로 ‘반짝반짝’이었다. 중간쯤엔 HARAKEKE(하라케케)라는 간판도 보였는데, 이곳은 수영장이 있는 카페였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언어로‘늪과 저지대의 숨결’이라는 뜻이고, 백합과에 속하는 식물인 삼을 부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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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롱벨롱 / HARAKEKE(하라케케)>


조금 더 내려가면 타일로 모자이크가 된 조형물 옆에 있는, 산화되어 갈색으로 녹이 슨 것 같은 철판에 Villa oumuamua(빌라 오무아무아)라고 새겨져 있었다. 오무아무아? 왠지 낯설진 않았다.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자주 듣는 천문학과 관련된 유튜브(개인적으로 천체물리학을 좋아한다)에서였다. 태양계 바깥에서 태양계 내로 들어온, 최초로 관측된 성간 천체 이름이었다. 발견 당시에는 태양계 내에서 공전하는 혜성으로 보았으나, 혜성과 같은 꼬리가 없고 무척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어 성간 소행성으로 보고 있다. ‘오무아무아’는 하와이어로 ‘먼 곳에서 찾아온 메신저’라는 의미이다. 올레길에서 천문학 단어를 만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 상호의 이름은 지역의 방언이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빌라 주인은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듯했고, 빌라 또는 펜션이 어떨지 궁금했다.

20250520_152030.jpg <Villa oumuamua(빌라 오무아무아)>


‘오무아무아’를 지난 길은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모퉁이에서 기호 하나를 만났다. ‘⩌⫐⩍’, 무슨 의자 방석 같기도 한 기호였다. 조금 내려가니 ‘카페 ⩌⫐⩍’라고 적힌 하얀 간판이 보였다. 너무 궁금했다. 잠시 멈추고 기호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생각해보았다. 문자 같았다. 영문 알파벳, ‘UDA’. 검색해보니 ‘UDA’가 맞았다. 읽으면 ‘우다’이고, ‘우다’는 제주어로 ‘~입니다’였다. 표현이 너무 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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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UDA>

이 길로 내려가면 바다와 만나는 속골이었다. 돔베낭골에서 속골에 이르는 길이 보여준 상호 이름들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포르투갈어, 제주어, 마오리족어, 천문학 용어-하와이어, 변환된 기호, 나에겐 언어의 길이었다.


속골 화장실에 다녀와서, ‘대륜명소 12경 안내도’를 보았다. 앞으로 지날 길에 명소가 있는지 확인했다. ‘망다리’에서 바라본 해안가 절경인 ‘대륜해안경승지’가 있었다. 그러나 바다 풍경인데 이렇게 안개가 짙으니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돔베낭골’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계속 궁금했던 ‘골’에 의미도 쓰여 있었다. ‘골’은 논농사를 짓기 위해 물 댔던 물골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전엔 ‘돔베낭골’ 근처에서 논농사를 지었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지질 특성상 지표에 물을 가둘 수 없었기 때문에, 논농사가 매우 힘든 곳인데 이곳은 가능했나 보다. ‘속골’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사시사철 물이 솟아 바닷가까지 흐르는 하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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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로 나갔다. 평소였다면 이곳에서는 범섬이 보였을 텐데,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서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찰랑찰랑 파도 소리만 들렸다. 오른쪽을 보니 걸어야 할 지형이 보였다. 저기 방파제가 보이는 곳이 법환 포구 같았다. 우선 저기까지라며 나름 걷을 목적지를 설정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또 설정하면 된다. 벌써 15시 30분이었고 월평아왜낭목쉼터까지 갈 길이 멀었다. 정자에서 잠시 쉬며 물을 마시고 다시 걸었다.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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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골에서 본 풍경>

글을 쓰다 돔베낭골을 다시 검색하니, 같은 출처((VISIT JEJU)인데도 각각의 명소(돔베낭길, 돔베낭골)에서 설명하는 돔베낭골의 유래가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둘 다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돔베낭이 동백나무라는 뜻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돔베낭길은 원래 돔베낭골로 돔베낭이 많은 굴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돔베낭은 동백나무를 이르는 제주어이고, 굴은 골짜기를 뜻하는 골[谷]이 변한 소리이다. (VISIT JEJU, 돔베낭길 참조)


해안 절벽과 휜히 트인 바다의 경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해안이다. 돔베(도마)같이 넓은 나뭇잎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돔베낭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기묘한 모양의 절벽들과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맑고 깨끗하여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식수원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VISIT JEJU, 돔베낭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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