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가 - 5일 행복?, 2일 행복? Ch.1 | EP.02
직무 중심 사고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 아닌 ‘직무’를 중심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있다.
Chapter 2. MZ세대는 직장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9회)
“이 정도 조건이면 진짜 좋은 직장인데, 왜 그만뒀어요?”
누구나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당사자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좋은 건 알죠. 그런데… 그게 제 일이 아니었어요.”
이직 시장에서 이제 더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대기업, 공공기관, 유망 스타트업, 공무원.
조건으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는 직장들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빠져나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하던 자리다.
퇴사 사유서를 정리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이들은 말한다.
“직장은 괜찮았어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나하고 안 맞았어요.”
혹은 “저는 커리어를 이렇게 설계하고 싶은 게 아니었거든요.”
이들은 조직이 싫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무의 구조’가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다.
기업들은 고심 끝에 복지를 늘렸다.
재택근무도 열었고, 휴가 제도도 탄력적으로 바꾸었다.
식비 지원, 심지어 반려동물 케어 휴가까지 만든 곳도 있다.
그러나 정작 조직이 떠안은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은 이게 아니에요.”
“저는 이 일을 위해 이 회사에 온 게 아닌데요.”
구성원은 조직 전체에 실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의 내용’에 좌절하는 중이다.
좋은 직장은 있어도,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직무가 없다면
그 일은 내 일이 될 수 없다.
한때는 입사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좋은 연봉, 명확한 직무, 넓은 사무실, 인지도 높은 기업.
이 조건들은 이직의 마지노선을 그어주는 “좋은 직장의 지표”였다.
하지만 지금의 일하는 사람들은 조건보다 구조를 본다.
이 일은 어떤 흐름으로 반복되는가?
내가 맡은 역할은 문제 해결의 어떤 부분에 속하는가?
내가 제안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가?
이 일은 나의 성장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는가?
즉, ‘일의 내용’과 ‘몰입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조직을 바라보는 감각이 높아진 시대다.
그래서 더 이상 “좋은 직장인데 왜 나가?”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조직 안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했느냐”가 중요해졌다.
30대 중반의 한 이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 직장은 이름값으로는 최고였죠.
누구한테 말해도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스스로가 너무 공허했어요.
3년이 지나도 ‘나는 무슨 일을 잘하지?’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는 그 회사에서 ‘일을 했던 사람’은 맞지만,
‘어떤 일을 했는지’는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난 회사를 다닌 게 아니라, 그냥 소속돼 있었던 거구나.”
반면, 규모는 작아도
스스로 “이건 내가 만드는 일이다”라고 느끼는
작은 조직의 프로젝트 리더는 달랐다.
“저는 작은 팀에 있지만,
고객 피드백부터 기능 기획, 결과 정리까지 맡고 있어요.
매주 내가 하는 일이 쌓여서 팀이 나아가는 게 보여요.”
그의 말에서 보이듯
일의 구조, 설계 가능성, 감정의 주도권이
이제는 직무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 것이다.
물론, 직장이 무의미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좋은 직장에 ‘좋은 직무’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모든 좋은 직장에서 좋은 직무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직장의 이름보다
내가 맡은 역할, 그 역할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경로가 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직무에서 몰입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구조 안에서 성과와 감정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가?”
이제 직장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니다.
직장은 수단이고,
그 안에서 수행하는 ‘직무의 내용과 구조’가 핵심이다.
직장은 경로를 제공할 수 있지만,
직무는 몰입의 감정을 제공한다.
그리고 몰입 없는 일은 결국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직장’을 넘어
‘좋은 직무’를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는 ‘좋은 직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오래도록 공유해왔다.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고, 정시 퇴근이 가능하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곳”, “친척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곳”,
“이직 안 해도 평생 일할 수 있는 곳.”
이런 기준은 사회적 인정을 기준으로 직장을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기준을 꺼낸다.
“그 직장 안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제가 맡게 될 프로젝트의 역할은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인가요?”
질문은 점점 ‘조직의 조건’에서 ‘직무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는 이런 기준이 들어있다.
기준 설명
조건 높은 연봉, 복지 포인트, 식대, 명절 보너스, 유급휴가 등
문화 수평적인 소통, 사내 복지 이벤트, 젠더/세대 감수성, 회식 강요 없음
안정성 정규직 채용, 사업의 지속 가능성, 명확한 인사제도와 승진체계
인지도 기업 브랜드, 사회적 위상, 부모님 설득 가능성, 동문 커뮤니티 등
이 요소들이 합쳐져 ‘좋은 직장’으로 불리는 것이다.
물론 이 기준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 기준만으로 직무의 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직무는 조건보다 경험과 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
기준 설명
몰입감 내가 시간을 잊고 일에 빠질 수 있는 구조인가?
성장 가능성 그 일을 반복하며 어떤 역량이 쌓이고 있는가?
자율성 이 일을 내가 설계하고 주도할 수 있는가?
정체성 이 일을 할 때 나는 나답다고 느끼는가?
좋은 직무는
조직이 나를 대우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중심으로 본다.
다음은 두 가지 사고방식의 차이를 간단히 비교한 표다.
구분 직장 중심 사고 직무 중심 사고
핵심 질문 “어디에 입사했는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평가 기준 연봉, 복지, 기업 브랜드 몰입감, 자율성, 성장 가능성
목표 안정적인 경력 설계 가능한 경력
커리어 전략 한 번의 입사 → 승진 중심 경력 다양한 프로젝트 → 경험 중심 경력
감정적 동기 인정받는 소속에 속해 있음 내가 만든 결과를 보는 기쁨
직장 중심 사고는
커리어의 출발 지점으로는 유효하지만,
몰입과 지속성, 그리고 감정의 주도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반면, 직무 중심 사고는
내가 어떤 흐름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일을 정의하고 성장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게 한다.
MZ세대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 이름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죠.”
“저는 어디 다닌다는 말보다, 어떤 일을 했는지로 말하고 싶어요.”
이는 단순히 ‘브랜드보다 자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언어’를 바꾸고 있는 변화다.
‘직장은 소속이고, 직무는 서사’다.
‘직장은 조건이고, 직무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무 중심 사고는
일의 방식만이 아니라 삶의 설계까지 영향을 준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된다’고 믿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거기서 무슨 일 하세요?”
“그 일은 지금 당신을 성장시키고 있나요?”
“당신은 그 일을 하면서 더 나아지고 있나요?”
질문이 바뀌었다는 건,
일의 기준이 구조와 감정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언제나
‘직무’라는 단위가 있다.
MZ세대는 안정적인 조직보다
자신의 역할이 드러나는 구조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이 전환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실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좌절과 불신, 그리고 반복되는 실망 속에서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라난 결과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취업한 공공기관,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자리였지만
막상 배정받은 업무는 엑셀 복사와 문서 관리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배우는 시기니까”라며 참고 일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내가 만들었다고 느껴지는 결과물’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조직의 톱니바퀴인가?
아니면 그냥 교체 가능한 부품인가?”
그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작은 스타트업의 데이터 분석 직무로 이직했다.
“지금은 고객의 행동 흐름을 직접 분석해서
기획과 운영팀에 인사이트를 제공해요.
매일 퇴근할 때 ‘내가 오늘 뭔가 했구나’라는 감정이 들어요.”
그가 선택한 건 회사의 규모가 아니라
직무의 구조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자기만의 커리어 서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MZ세대는 부모 세대처럼
“회사에 들어가면 인생이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시대에 자랐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대량 구조조정…
이들은 반복적으로 ‘조직의 신뢰 불가능성’을 학습해왔다.
반면, 이들은 개인의 영향력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콘텐츠를 기획해 팔로워를 모으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유튜브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내 일’을 설명하고,
크몽, 탈잉 같은 플랫폼에서 강의나 재능 판매를 한다.
이 모든 흐름은
“나의 직무는 내가 설계할 수 있다”는 인식의 결과다.
소속보다 경험의 단위를 우선시하며,
이제는 “나는 어떤 일을 설계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를 묻는다.
“대기업이라도 나한테 안 맞으면 힘들어요.”
“조직문화보다 일이 더 중요해요.”
“상사가 뭐라고 하든, 내가 만드는 성과가 있어야 견딜 수 있어요.”
이 말들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직무 중심 사고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언어다.
이들에게는
브랜드보다 업무의 흐름이,
조직문화보다 자율의 여지가,
승진 기회보다 역할의 선명함이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탐색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직무 탐색으로 이어지는 시대.
MZ세대는 더 이상
조직의 명함이 아닌 직무의 성과로 자신을 설명하고자 한다.
직무 중심 사고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 아닌 ‘직무’를 중심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있다.
그들은 직무를 통해 커리어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직장을 옮기더라도 역할과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한 은진 씨는
첫 직장으로 대기업 홍보실의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회사도 좋고 복지도 나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단지 남이 기획한 것을 예쁘게만 만드는 사람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3년 후, 그녀는 과감히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이번엔 단순 디자인이 아니라
서비스 기획부터 브랜딩까지 아우르는 직무였다.
“대기업에 있을 땐 내 일이 아니라 ‘회사 일이었어요’.
지금은 작은 회사지만, 모든 프로젝트에
내 이름을 걸 수 있어요. 이게 제 일이구나 싶어요.”
그녀는 회사의 이름값이 아니라
직무 설계의 주도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커리어의 확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수 씨는 공기업에 입사했다.
야근도 거의 없고, 연봉도 준수한 편.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게 커리어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제는 단순했다.
업무는 반복되고, 개선 제안은 묵살되고,
기획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회사에선 나를 너무 잘 대해줬어요.
근데 이상하게 나는 계속 위축됐어요.
내가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돌아가는 자리를
한 번쯤 맡아보고 싶었거든요.”
결국 그는 데이터 분석을 공부해
프로덕트 기반 IT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주도한 업무 흐름이 성과로 이어지는 기쁨”을 말한다.
그에게 직장은 바뀌었지만,
직무는 자신만의 서사로 남아 있다.
진아 씨는 같은 업계 내에서
세 번의 이직을 했다.
그녀의 이력서를 본 이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자주 옮겼어요?”
하지만 그녀는 확신에 찬다.
“저는 같은 직무를 세 번 반복한 거예요.
다만 환경과 책임 범위가 달라졌을 뿐이죠.
각 조직에서 쌓은 경험은 연결되어 있어요.”
그녀는 매번 새로운 조직을 옮길 때,
직무의 구조, 즉
“기획 → 실행 → 성과 측정 → 피드백”
이라는 일의 사이클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직장은 달랐지만 경력은 선명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커리어는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구조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해요.”
직무 중심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직을 반복해도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직의 외피가 아니라 역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묻는다.
“이 일은 내 문제 해결력을 높여주는가?”
“이 구조는 내 시간과 감정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가?”
“이 직무는 내가 원하는 서사에 포함될 수 있는가?”
이제 커리어는
어디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했고, 그것을 어떻게 연결했는가로 설명되는 시대다.
직무 중심 사고는 단지 "일을 잘 골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는 움직임이다.
직무 중심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일이 버겁다”는 말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말을 더 자주 한다.
그들은 몰입할 수 있는 흐름을 스스로 구성하며
작은 성과 하나에도 감정적으로 충만함을 느낀다.
이는 자율성과 심리적 소유감에서 비롯된다.
지시된 일이 아니라 내가 기획하고 제안한 일이기에
책임감은 무겁지만 그만큼 주도권도 선명하다.
직장 중심 사고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직무 중심 사고는
“이 경험이 다음 프로젝트에 이어진다”는 확신을 준다.
즉, 직무 중심 사고는
단절 없는 커리어 연결성을 만들어낸다.
이력서 한 줄이 아니라,
내가 구성한 일의 구조와 성과 흐름이
스스로의 커리어를 증명하게 된다.
성과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반면, 일의 구조와 반복에 집중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의 요소를 뽑아낸다.
직무 중심 사고는
“이번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됐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스스로 해석하게 만든다.
그 결과, 성과가 좋든 나쁘든
커리어의 성장 곡선은 꺾이지 않는다.
직장 중심 사고는 "어디에 들어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갇힌다.
하지만 직무 중심 사고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에 집중한다.
이는 직장 선택의 감정 소모를 줄이고,
직무 기반의 납득 가능한 이직과 전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직무, 나랑 잘 맞아.”
이 말 한마디가 직장을 선택하게도, 떠나게도 만든다.
직무 중심 사고는
‘어디에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곧, 감정과 에너지, 시간과 성과를
더 내밀한 방향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직무를 설계하고,
그 직무 안에서 자율성을 누리고,
그 결과가 내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일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음을 실감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왜 힘들까?”
“이렇게 조건이 좋은데 왜 일은 공허하지?”
“왜 나는 이 일을 하는데도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을까?”
그 질문의 핵심에는 ‘직장’이 아니라 ‘직무’가 있다.
우리는 종종 직장을 선택할 때
연봉, 복지, 인지도, 위치 같은 ‘조건’을 가장 먼저 본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소진시키는 건
야근이나 연봉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구조,
개입할 수 없는 흐름,
정체된 역할이다.
즉, 직장은 괜찮아도
직무가 잘못 설계되면 감정은 고갈된다.
이제 커리어는 더 이상
한 줄의 이력서, 한 번의 입사로 설명되지 않는다.
커리어는
어떤 문제를 다뤘는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어떤 감정과 태도로 그 일을 풀었는지,
어떤 성장의 흐름이 이어졌는지
구조적으로 이어진 이야기여야 한다.
직무 중심 사고는 바로 그 이야기의 줄기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줄기는
당신의 경력, 감정, 정체성을 연결해주는 실마리가 된다.
당신이 지향하는 삶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좋은 직무’를 경험하고 싶어서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무는
단지 현재의 일이 아니라,
당신이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1. 나는 지금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가,
아니면 ‘직무’를 설계하고 있는가?
2. 지금 내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나는 그 구조 안에서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3. 다음 커리어를 설계할 때,
나는 어떤 기준으로 직무를 선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