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아래 층에서 울린 알람에 깼다.
촌의 집은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다. 눈이 번쩍 뜨였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금세 각성이 되어 계단으로 내려갔다.
간단히 아침 요기할 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 그 앞에 앉아서 어제의 가족 행사, 우리 시가 식구들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이 밭에 나가자 할 일이 없어졌다.
고요한 새벽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잠시 바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완연한 가을 제주 아침은 동 트기 전 하늘이 불난 것 처럼 붉어진다. 처음 알았다. 그런 뜨거운 하늘인 걸. 오늘은 특히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이 작열하는 태양빛이 구름 뒤로 부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햇빛이라고 하기 그렇다. 이건 태양이다. 우주에 가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태양빛이다.
바람이 갑자기 많이 불어 날이 수상하지만 나가보기로 했다. 십 년도 더 전에 왕십리역에서 엄마한테 사준 새빨간 노스페이스 잠바를 입었다. 딱 내 사이즈다. 엄마 체구가 이렇게 작았나, 하며 주섬주섬 마당으로 나간다.
강아지랑 아침 인사를 했다. 갔다 올게, 쓰다듬어 주다가 털레털레 걸어나가다 뒤돌아보니 나를 계속 쳐다보며 우뚝하니 서있다. 바보같은 놈. 곧 돌아올 거야.
도로를 건너 횟집 쪽 올레길 표지를 따라 걸어나갔다. 역시, 나가보길 잘했다. 비단결같은 아침 바다가 나무와 돌 사이사이로 보였다. 머리 위로는 엄청난 거미줄들이 걸쳐져있다. 새소리도 계속 나를 따라온다.
바다가 더 펼쳐질 때까지 조금 더 걸었다. 내리막길을 따라가자 마침내 그 하늘이 보였다. 이상하게 부글거리던 그 하늘이.
그 먼 동트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파도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아주 먼 곳에서, 또 가까운 곳에서.
유튜브에서 가끔 틀어놓던 명상이 생각났다. 파도가 내 잡념을 가져가는 걸 상상해보라던. 잠시 그런 상상을 하면서 가까운 파도소리와 먼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중하다보니 새가 계속 지저귀는 소리도 같이 들린다. 규칙적으로 우는 새, 간헐적으로 우는 새, 이렇게 새가 많았나 싶다.
이제 눈을 뜨고 파도치는 걸 다시 보았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응시하다 다시 그 태양이 작열하던 방향으로 머얼리 바라본다. 이상하다. 갑자기 울컥한다. 울음이 나려는 건가? 왠지 모르겠는데 하며 그냥 있었다.
하늘은 한참 변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보았다. 얕은 구름이 온 하늘에 펼쳐져있다. 파란 하늘이면 이정도로 넓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구석구석 보니 구름의 모양이 방향마다 제각기다. 바다만큼이나 널다랗다. 몸을 한바퀴 돌려가며 앞바다의 하늘과 저 산 쪽의 하늘과 나무쪽, 현무암이 널린 바다의 하늘까지 다시 눈에 담았다.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갑자기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 여기서 지낼 것 같아. 그리고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어 다행이야.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울고 있구나, 그럼 울자. 왜 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자고 마음을 먹어버렸다. 눈물이 다 흘러 넘칠 때까지 울어버리기로 했다. 우는 소리도 좀 내었다. 시원하게 그렇게 울었다.
왜 그런 건지 잠깐 생각해보려다가 말았다. 다 울고 나니까 그저 시원해졌다. 어깨에 올라와 있던 것이 모두 내려진 듯. 잔잔한 불안이 그 바다에 다 씻긴 듯. 개운했다.
아직 동이 다 트지 않았다. 겨울이 가까워지니 정말 해가 늦게 뜨나보다. 오히려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눈물이 마른 얼굴로 바다를 등지고 천천히 돌아갔다. 오늘 그 바다에서 울었던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P.S. 아참 빨간 잠바 주머니 속에 이런 노래 가사가 적힌 구깃구깃한 메모지가 들어있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