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솔로와 비트코인 투자
주말 오전, 소파에 묻혀 넷플릭스를 켰다. 화면 가득 508미터의 수직 절벽이 펼쳐졌다.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가 대만의 타이베이 101 빌딩을 로프 하나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생중계 영상이었다.
바람 소리가 마이크를 때릴 때마다, 그가 미끄러운 유리 외벽에서 다음 창틀로 위태롭게 손을 뻗을 때마다 안전한 거실에 누워 있는 내 손바닥에도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한 번이라도 헛디디면 끝이다. 그 원초적인 추락의 공포가 화면을 뚫고 나와 내 심장을 조여왔다.
문득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해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이 불쾌한 감각. 낯설지가 않았다.
기억을 되감아보니 그곳은 2018년 겨울, 내가 처음 비트코인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비트코인 시장은 광기 그 자체였다. 차트는 등반이라기보다는 발사에 가까웠다. 며칠 사이에 가격이 몇 배씩 뛰었다. 자고 일어나면 연봉이 벌려 있기도 했다. 빨간색 양봉이 수직으로 꽂힐 때마다 뇌에서는 도파민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 뒤에는 항상 짙은 그림자 같은 공포도 따라붙었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투자자가 아니라 도박판에 뛰어든 눈먼 갬블러였다. 내가 산 게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남들이 오른다니까, 왠지 지금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아서 탔을 뿐이었다.
차트가 조금만 흔들려도 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언제 이 거품이 터져서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칠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은 무지가 주는 형벌이었다.
다시 TV 속 호놀드를 본다. 90분간의 빌딩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표정은 소름 끼치도록 평온했다. 땀은 흘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그가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강심장이라거나 돌연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fMRI 스캔 결과, 그의 편도체는 정상이었다. 다만 그가 공포를 느끼는 임계점이 비현실적으로 높았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해답은 호놀드가 남긴 말속에 있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안전지대를 확장해서 그 안에 등반 루트가 들어오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는 무모하게 덤빈 게 아니었다. 등반 전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했다. 손가락을 거는 각도, 고도에 따른 바람의 방향, 심지어 자신이 실수해서 추락하는 장면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미지의 영역을 기지의 영역으로 바꿨기에 508미터 상공에서도 그의 뇌는 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인간의 뇌는 예측하지 못한 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2026년 2월 6일 오늘, 비트코인이 1억 원을 깨고 8,900만 원까지 추락했다. 시장은 비명을 지르고 뉴스는 거품 붕괴를 떠든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손을 덜덜 떨며 패닉에 빠져 매도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의 나는 호놀드처럼 평온하다. 심장이 두꺼워져서가 아니다. 나 역시 지난 2년간 비트코인이라는 거대한 토끼굴을 파고들며 나만의 안전지대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차트 대신 책을 폈고 가격 대신 원리를 팠다. 그렇게 들어간 토끼굴 속에서 나는 단순한 믿음이 아닌 검증된 사실들을 목격했다.
첫째, 난이도 조절(Difficulty Adjustment)이라는 자정 작용이다. 가격이 폭락하면 비효율적인 채굴자는 도태된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난이도를 스스로 낮춰 살아남은 자들에게 수익을 몰아준다. 비트코인은 하락장을 통해 약한 고리를 끊어내고 더 단단해진다. 나는 이 시스템의 생존 본능을 이해했다.
둘째, 오스트리아 학파가 가르쳐준 돈의 역사다. 금이 왜 왕이 되었는지, 법정화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가치를 잃고 소멸해 갔는지를 배웠다. 지금의 하락은 비트코인의 가치가 떨어진 게 아니라, 유동성이 말라가는 거시경제의 그림자일 뿐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수록, 희소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결국 우상향 할 수밖에 없다는 '물리적 필연성'을 확인했다.
셋째, 우리 집 거실에서 돌아가는 노드의 존재다. 나는 은행을 믿기보다, 대신 내가 직접 내 장부를 검증한다. 가격이 반토막이 나도 내 노드 안의 블록 데이터는 위조되지 않았고, 2,100만 개라는 총 발행량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돈을 검증하라(Don't Trust, Verify)"라는 비트코인의 철학을 실천하며 나는 투기꾼에서 시스템의 검증자가 되었다.
넷째, 낮은 시간 선호의 지혜다. 당장의 마시멜로를 먹어치우는 대신, 미래를 위해 인내하는 것. 비트코인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가장 안전하게 저장하는 배터리다. 1억 원에서 8,900만 원으로 떨어진 것은 찰나의 노이즈일 뿐, 10년 뒤의 구매력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회다.
과거엔 그저 오르내리는 숫자였던 비트코인이 이제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구명보트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안다. 호놀드가 추락을 상상하며 공포를 지웠듯, 나 또한 시스템의 붕괴를 시뮬레이션하며 오히려 본질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절벽은 그대로지만 등반가가 변했다. 나는 이제 어디가 썩은 돌인지, 어디가 단단한 홀드인지 안다. 가격이라는 껍데기가 흔들려도 가치라는 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기술적, 철학적 토대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기에 나는 이 변동성의 공포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다.
호놀드에게 508미터 빌딩 등반이 수행이었듯, 나에게 비트코인 투자는 더 이상 도박이 아니다. 그것은 소음과 공포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내가 선택한 가장 이성적인 길이다.
화면 속 호놀드가 웃으며 "뷰가 좋네요"라고 말한다. 계좌는 파랗게 질려 있지만, 나도 따라 웃는다. 공포를 이긴 게 아니다. 그저 남들이 보지 못한 지도를 머릿속에 그렸을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