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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언제나 '아닌 척'을 잘한다(WBD 인수)

콘텐츠 카트 20

by 시그리드

해당 글은 뉴스레터 '콘텐츠 카트' 로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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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미국 미디어 산업에서 재밌는 뉴스거리들이 많았어요. 디즈니의 <주토피아2>의 세계적인 흥행과 오픈AI 투자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떠들썩했던 것은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 소식이었습니다.


‘해리포터와 DC유니버스의 히어로들과 <프렌즈>까지. 모두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게 될 거래’ 이 한마디만으로도 놀라울 법했죠. 그런데, 이 소식에 무척 화난 곳도 있는 것 같아요. 바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입니다. 그동안 WBD와 지속적으로 협상하면서 여러 번의 제안을 거듭하며, 진심으로 워너브라더스를 가져오고 싶어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워너가 넷플과 손을 잡아버리면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된 거죠. 물론, 이대로 가만히 있을 파라마운트가 아니어서 바로 ‘적대적 인수’를 선언하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글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의 콘텐츠 카트에서는 다들 왜 이렇게 워너브라더스를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인지,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의 입장을 살펴보고, 콘텐츠 업계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과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 그리고 한국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까지 전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볼게요.


넷플릭스가 WBD를 원하는 이유


넷플릭스는 언제나 '아닌 척'을 잘한다

넷플릭스는 언제나 아닌 척을 잘합니다. 광고 요금제를 도입할 거냐는 질문에 넷플릭스 경영진은 "광고는 현재 계획에 없다. 우리에겐 맞지 않는다"라고 답하고 나서 그해에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기 시작했고요.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하기 전인 지난 실적발표에서 '레거시 미디어 네트워크를 소유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죠. 원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넷플릭스는 언제나 '강한 부정'을 하고, 바로 시행했어요.


이미 잘 나가고 있고 업계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넷플릭스가 왜 지금 워너브라더스를 가지려는 걸까 의아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넷플릭스는 '광고 요금제' 다음이 필요해요. 이미 스트리밍 시장은 과거처럼 크게 성장하는 단계가 지났거든요. 워너의 HBO 맥스를 합병하면 시장 점유율을 한번에 키울 수 있죠. 게다가 유튜브의 부상도 의식할 수밖에요. TV시청 시간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건 유튜브고,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정체되어 있거든요.

출처: 닐슨 게이지 보고서(11월 기준)


넷플릭스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브라질에서의 세금 문제로 일시적으로 마진이 떨어졌다고 보고했으나,매출은 크게 늘었고, 광고 구독자들도 증가세였죠. 그러나 수익성 측면에서는 우려를 자아냈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10대1로 주식분할을 결정했지만, 이런 호재에도 주가 상승이 오래가지는 못했죠.


광고요금제의 경우 2025년 말까지 광고 수익이 ‘전년 대비 2배’ 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전체 가입자의 3분의 1이 광고형 요금제를 구독하고 있다고 해요.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 구독자의 30%, 디즈니+ 구독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광고요금제 가입자였습니다. 올해 두 스트리밍 대장들의 구독자 수가 크게 증가한 건 광고 요금제 덕이에요. 광고 없는 요금제 구독자 수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죠.


넷플릭스는 언제나 배가 고프다

넷플릭스는 언제나 IP가 고팠어요. WBD의 IP를 손에 얻는다면, <해리포터> <프렌즈> 프리퀄 시퀄도 만들 수 있어요. 그간 공개한 오리지널 히어로물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이젠 DC 유니버스의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온갖 히어로를 활용해서 마블과 붙어볼 가능성도 있죠. 아래는 WBD의 주요 IP 목록이에요.

제작: 퍼플렉시티


넷플릭스의 최근 모습을 보면 디즈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체험을 통한 부가창출’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IP의 필요성을 더더욱 실감했을 거고요(이 정도까지 터질 것은 내부적으로 예상 못했을 거 같지만). <케데헌>의 극장 개봉과 외부 이벤트 등을 진행하면서, 팬덤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를 통해 단순히 스트리밍 안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야 돈이 된다는 걸 깨달았겠죠.


온라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콘텐츠를 직접 경험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아요. 디즈니의 전체 매출 중에 반절이 파크(테마파크, 크루즈) 부문에서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렇기에 넷플릭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WBD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앞으로 확보한 IP들을 가지고 2차 저작물 사업도 하는 플라이휠을 그릴 수 있을테죠.


이뿐만 아니에요. 워너 작품들의 시청 데이터를 확보해서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을텐데,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100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데이터예요. (넷플릭스는 정말 <블랙 미러> ‘존은 끔찍해’ 속 스트림베리가 되려는 것일까요?)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의 '존은 끔찍해'


‘넷플+워너’? 할리우드가 싫어합니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의 스튜디오와 HBO 맥스 인수 소식을 두고 업계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크죠. 특히, 창작 사이드에서는 다양성이 줄어들고, 넷플릭스 종속 현상이 심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어요. 미국 작가조합(WGA)은 일자리 감소·임금 하락·콘텐츠 다양성 축소를 이유로 “반드시 막아야 할 합병”이라고 성명을 내기도 했어요.


CEO 사란도스가 극장 개봉에 회의적이었던 사람이다 보니, 극장 영화는 더 어려워질 거란 게 중론이에요. 물론, 넷플릭스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워너의 현재 운영을 유지하고, 여기에는 영화의 극장 개봉도 포함된다"라고 밝혔어요. 그러나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이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다고 의견을 내비친 것을 볼 때, 극장 개봉이 넷플릭스가 인수한 워너의 메인이 되진 않을 거예요. 마케팅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요. 최소한 지금의 워너브라더스가 하듯 극장 개봉이 필수가 아니게 될 거예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는 재앙’ 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사란도스 넷플릭스 CEO가 그간 극장 개봉에 회의적이었던 태도를 비판하면서, 극장 개봉을 유지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약속은 ‘미끼’라고 말했죠.


바로 이 부분을 넷플릭스에 선수를 빼앗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공략하고 있어요. 본인들이 WBD를 인수할 경우 연간 30편 이상 극장 개봉을 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더 '친극장·친창작자적'이라고 주장해요.


여기가 재밌는 포인트인데, 오라클이라는 테크 기업의 엘리슨 가문이 주도하는 파라마운트가 창작자들을 존중하며 레거시, 구 미디어 입장을 대변하고 있단 점이에요.


파라마운트가 WBD를 원하는 이유

엘리슨가(왼쪽부터 아부지 래리 엘리슨, 딸 메건, 아들 데이비드)


파라마운트는 워너에 배신감을 느낀다

잠깐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대표 데이비드 엘리슨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그는 스카이댄스라는 제작사를 설립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만들었고(아버지의 신용을 담보로 2억 달러를 빌려서 투자), 성공한 영화 제작자가 됐어요. 그리고 파라마운트라는 100년 된 거대 미디어 사업자를 '잡아먹었죠'. 스카이댄스의 기업 가치는 47억 5000만 달러, 파라마운트의 시가총액은 80억 달러였어요. 즉, 몸집이 반밖에 안 되는 기업이 큰 기업을 품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는 워너브라더스까지 꿀꺽하려고 했으나, 갑툭튀 넷플릭스가 튀어나와 낚아 채는 바람에 이걸 놓치게 된 셈이에요.


두 회사의 제안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넷플릭스는 720억 달러에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와 HBO 사업권을 인수하겠다고 했고

파라마운트는 1080억 달러에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회사 전체를 넘겨받고 싶어해요.


일단 현재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시총은 150억 달러예요. 넷플릭스는 4000억 달러예요. 아무리 중동 국부펀드, 트럼프 사위의 사모펀드 자금까지 끌어모았다고 하지만, 워너 입장에서는 썩 안정적인 인수 상대는 아니었을텐데요. (이후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회사도 파라마운트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구성되었던 그룹에서 철수했어요) 인수에 필요한 자기자본 407억 달러 전액은 엘리슨 가문과 레드버드 캐피털이 전액 보증하기로했는데. 워너는 이 보증이 오라클 주식 약 2500억달러어치를 보유한 가문 신탁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는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했어요.


최근 오라클은 기업의 현금흐름을 넘는 부채를 발행해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어요. 수익에 비해 너무 빚을 많이 낸 것 아니냐는 우려에 AI 버블 논란의 중심에 있죠. 아래 그림은 오라클의 최근 급등한 신용부도스와프(CDS) 스프레드예요. 신용부도스와프는 오라클이 발행한 채권의 부도 위험에 대한 일종의 보험상품으로, 위험도가 높을수록 상승해요. 즉, 파산 위험이 커질수록 채무자들이 더 많은 프리미엄(이자)을 원한다는 뜻이에요.

출처: 블룸버그


이러니저러니 해도 넷플릭스에 뺏기는 건 도저히 눈 뜨고 못 보겠던지, 파라마운트는 8일(현지 시각) '적대적 인수'를 선언했어요. 넷플릭스보다 높은 금액에 전액 현금 인수(주당 30달러)를 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워너 이사회는 주식 가격만 보면 파라마운트 제안 금액이 높은 것은 맞지만, 분할 이후에도 주주들이 두 회사의 주식을 계속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넷플릭스와의 딜이 31~32달러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죠.(케이블 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 팔면 주당 4~5달러는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파라마운트가 33달러는 제시해야 매력적일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넷플릭스는 위약금도 8%로 높게 걸었거든요. 일반적인 인수합병(M&A) 위약금(1~3%)인데 그만한 자신감을 보여준 거예요. 워너 이사회는 12월 17일(현지 시각) 넷플릭스와 맺은 기존 인수 거래를 공식 추진할 계획라고 밝혔어요.


또 ‘아빠 찬스’ 까지 꺼내들었지만…

파라마운트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여요. 지금의 파라마운트는 크기로 치면 넷플릭스나 디즈니, 아마존에 밀리는 애매한 포지션이거든요. 워너브라더스라도 인수하면 그래도 붙어볼 만했을 수도 있겠으나... 결국엔 뺏긴다? 그러면 결국 밀려서 도태될지도 모르죠.


표면적인 이유만 본다면, 파라마운트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IP), HBO MAX(스트리밍), CNN(케이블 네트워크)을 손에 넣고 싶어해요. 할리우드 스튜디오 2개(파라마운트+워너),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Paramount+·HBO Max), 방대한 케이블 네트워크(CBS+CNN+TNT 등)를 가진 수직 통합 미디어 그룹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자금 출처에 대한 논란을 완화하기 위해 12월 22일(현지 시각), 데이비드의 아버지 래리 엘리슨이 404억 달러 전액을 보증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순자산 약 2500억 달러의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부담할 계획이에요 기존 파라마운트가 만기일인 내년 1월 21일 이전에 공개 매수가를 상향할 거라는 얘기도 있지만, 워너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지금의 제안으로는 어려워 보여요. 파라마운트의 공개 매수에 응한 WBD 주식은 40만 주 수준에 불과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엘리슨가의 큰 꿈, 그리고 CNN

사실 파라마운트가 워너를 탐내는 것은 스튜디오 때문만은 아니에요. 넷플릭스와 달리 파라마운트는 방송, 케이블 등 사업을 모두 인수하고 싶어 하는데 여기에는 케이블 뉴스 채널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CNN이 포함돼요.


CNN을 인수하면 미디어 업계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겠죠. 특히, 진보 성향인 CNN을 인수해서 "더 균형 잡힌 뉴스 조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을 트럼프 정부에 전달했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이 CNN이 이번 인수의 거래변수로 떠올랐어요.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딜이든 CNN은 반드시 팔려야 한다. 지금 경영진은 부패했거나 무능하다”고 말해, CNN이 포함된 파라마운트 딜을 선호하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어요.


18일(현지 시각) 오래도록 끌던 틱톡의 미국 사업권 매각 계약이 마무리됐죠. 이제 틱톡의 미국 내 데이터 보호와 알고리즘 보안 등 권한은 오라클이 참여한 미국 합작 법인이 맡게 돼요. CNN에 이어 틱톡까지, 오라클가는 미디어 제국을 만들려는 걸까요. 이를 통해 얻고자하는 것은 뭘까요? 아마도, 그들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권력의 의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거예요.


CNN은 여전히 미국 성인 3분의 1이 정기적으로 뉴스 소비에 사용하는 매체이고, 민주당·공화당 간 신뢰도 격차가 극단적으로 큰 매체 중 하나예요. 이 매체를 손에 넣어 입맛에 맞는 뉴스를 생산할 수 있다면, 트럼프 정부 및 우파 진영에서는 큰 부담 하나는 덜게 된 셈이죠.

출처: 퓨리서치(CNN의 극단적 신뢰도 격차)


일단은 넷플릭스 쪽으로? 반독점법을 넘어서라

지금까지 흘러가는 흐름을 봤을 때 넷플릭스가 유리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어요.


바로, ‘반독점법’이에요. 미 법무부는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가 스트리밍 시장 지배력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기 시작했어요. 미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합병 후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 경쟁사 간 직접 결합은 불법으로 간주하는데, 파라마운트는 이 거래가 ‘넷플릭스의 글로벌 지배력을 과도하게 키우는 거래’라며 반대 근거로 삼고 있어요. 하지만, 넷플릭스는 유튜브 등 무료 동영상 플랫폼도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소비자 피해는 없을 거라고 주장해요.


정치권은 진영을 막론하고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번 거래를 "독점 금지 악몽"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넷플릭스의 시장 지배력을 우려해요. 특히, MAGA 인사들은 넷플릭스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인연을 거론하면서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 인수로 민주당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음모론을 퍼트리고 있어요.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이 엔터 산업을 넘어 정치권의 ‘문화전쟁 의제’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있죠.


넷플릭스와 워너를 합쳐도 유튜브를 이길 수 없음


업계에 미칠 영향

넷플릭스가 최종적으로 WBD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마무리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될 거예요. 넷플릭스는 절차상 12~18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니, 빨라야 27년으로 예상돼요.


넷플-WBD의 합병을 두고 ‘할리우드 경쟁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WBD를 넷플릭스에 파는 것’ 이라는 냉소적인 비판이 나올 정도로, 업계는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될 거예요. 콘텐츠 투자, 제작 사이드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더 커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테죠.


한국 콘텐츠 업계의 경우 협상력은 악화할 가능성이 커요. 공급자 입장에서 봤을 때, 구매자가 많고 경쟁하는 환경이 유리하니까요. 이미 독과점 체제에 가까운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거예요. 넷플릭스가 WBD의 방대한 라이브러리까지 갖추게 되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거고요. 그러다 보면 이미 넷플릭스 우위인 시장에서 국내 창작자들이 불리한 계약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어요.


넷플릭스는 국내 제작 시리즈의 배우 출연료 상한선을 회당 최대 4억 원으로 정하는 등 제작비 단속에 들어간 바 있어요. 가성비 있어 선호하던 K-콘텐츠의 제작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는 작년부터 나왔었죠. 드라마 콘텐츠 비중을 줄이고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예능과 같은 언스크립트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어요.


영화계는 더 암울한데, 영화 투자배급사 1위였던 CJ ENM이 영화 사업을 접는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투자심의를 통과해 제작에 들어간 작품 수가 쪼그라들었는데요. 극장용 영화 제작이 줄어들다보니, 그나마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는 영화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이마저도 줄어들 수 있는 거죠.


올해 극장 영화 전체 관객수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외화 덕에 간신히 1억 명을 넘길 전망이에요. 일 년에 12~14편의 극장 개봉 영화를 만들던 워너브라더스가 넷플릭스와의 인수로 극장 개봉 영화를 줄이게 되면, 상영할 영화가 없어 관객수가 반 토막 나버린 극장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토종 OTT도 더 불리한 상황에 직면할 거예요. 다수의 OTT를 구독하던 시대에서 그 숫자를 줄이고, 광고형 요금제 구독으로 전환하는 상황이 된 지금 넷플릭스의 '구독 1순위 굳히기'는 더 강화될 것 같아요. 쿠팡 플레이는 지금까지 HBO, 워너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고 있었는데, 다음에는 재계약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국내 OTT의 차별화 전략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출처: 영화진흥위원화 (아득한 2억 명 시대)

결론: 콘텐츠 시장 재편 그 이상

넷플릭스도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WBD가 필요하고, 파라마운트가 끈질기게 집착하는 이유도 이해돼요. 조금 더 넓게 보면, WBD 인수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의 싸움은 단순히 스트리밍 기업과 스튜디오가 맞붙었다는 것 이상이에요. 반독점법 심사에 트럼프의 의중이 중요하니까요. 사업가인 트럼프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한편으로는 이번 인수가 ‘콘텐츠의 틀’(콘텐츠가 보여지는 방식)이 변화하는 분기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큰 변화를 맞는 건 영화일 거예요. 그간 우리가 알던 영화-극장에서 몇 주간 독점으로 상영되고, 그 뒤로 VOD,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는-방식은 이제 바뀔지도 모르겠어요. 2029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이 TV가 아닌 유튜브에서 중계될 거라는 소식이 있었죠. 아카데미 시상식 입장에서도 수년간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ABC 채널을 통한 중계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을 거고, 시상식의 흥행을 위해서는 유튜브가 더 나은 플랫폼이라고 판단했을 거예요.


영화의 멸종’ 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는데요. 영화는 멸종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다만,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겠죠. 영화관에서 소비하는 영화의 기준이 더 까다로워진 지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 윈도우의 변화는 필연적이에요. 지금 극장들은 이제 영화 대신 공연이나 팬덤이 있는 콘텐츠를 유치하는 ‘공간 사업자’로서의 비즈니스 모델로 변해 가고 있어요. 특수관을 늘려가며 ‘영화적 체험’ 수요를 노리고 있고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도 과거처럼 극장 개봉을 통해 BEP를 넘을 수 있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철저하게 나누어 개봉해요.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 영화는 그저 손을 놓고 리스크 방어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해져야하지 않을까요? <귀멸의 칼날>과 <체인소맨> 그리고 <주토피아>에 이르기까지 팬덤 위주의 해외 애니메이션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상황에서 관객의 취향과 영화적 체험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숏폼에 익숙하고,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 방식을 고민해야하죠. 극장에 걸면 관객이 찾아오던 과거의 꿈에서 깨야해요. OTT를 탓하고, 비싼 영화 티켓값을 탓하고, 팬데믹 이후 변해버린 관객들을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줄어든 시장에서 수백억이 넘는 제작비를 회수하고 싶다면 내수 중심적인 시각을 확장해, 해외를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의 기획개발에 힘을 써야 합니다.


사실 이건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결국 시간 뺏기 싸움이죠. 영화 말고도 수많은 재미있는 것들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에 팬데믹 이후로 이제 영화의 경쟁작은 동 시기에 개봉하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재미있는 모든 것’이 되었어요.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경쟁자를 유튜브와 수면시간, 게임이라고 말하고는 하죠. 넷플릭스는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WBD가 필요한 거고요. 앞으로 누가 더 ‘재미의 파이’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AI 로 요약하는 오늘의 뉴스레터(by ChatGPT 5.2)

연말 최대 이슈는 단연 넷플릭스의 WBD 인수 추진이에요. 광고요금제 이후 성장 동력을 위해 워너 스튜디오·HBO Max·방대한 라이브러리를 한 번에 품어 시청 시간 경쟁(유튜브)에서 우위를 노립니다.


반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친극장·친창작’을 내세우며 적대적 인수와 현금 공개매수로 맞불을 놓고, CNN까지 품으려고 해요. 이제 공은 반독점범 통과 여부 등 규제와 정치로 넘어갔어요.


업계는 넷플릭스의 인수로 인한 일자리·임금·다양성 축소와 극장 개봉 영화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해요.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더 커져 창작 사이드의 협상력이 위축될 수 있고, 극장·토종 OTT는 더 어려운 싸움을 준비해야 해요.


결국 이번 인수전은 콘텐츠 재편을 넘어 ‘시간 쟁탈전’의 분기점입니다. 누가 더 많은 ‘재미의 파이’를 가져올까? 넷플릭스는 그 답을 WBD에서 찾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콘텐츠 카트'로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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