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나는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방 사립대를 다니며 세상의 중심보다는 주변부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흘러가는 존재였다. 그러다 대학 졸업 무렵, 문득 나 자신의 빈곤한 내면과 마주했다. 지혜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나는 뒤늦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적인 허기를 채우는 행위였으나, 동시에 타인의 문장을 내 것인 양 포장하여 전시하는 은밀한 도용의 시작이기도 했다.
20대의 나는 그 갓 수확한 지식들을 휘두르며 '확신'이라는 가시 돋친 옷을 입었다. 책에서 읽은 단 몇 줄로 세상을 재단하고, 내가 세상의 해답을 독점한 양 굴었다. 깊다는 글귀를 입안에서 굴릴 때마다 마치 내 영혼의 수심이 깊어지는 착각에 빠졌다. 그때의 나에게 진리란 흑백이 분명한 바둑판이었고, 나는 내가 꽤나 영리한 대국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이 육신을 관통해 흐르면서, 독서는 나에게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오답에 가까운 존재인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깊어진다는 것은 문장을 축적하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세운 확신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이었다. 내면의 우주가 넓어질수록, 역설적으로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좁아졌다. 어제 내가 '맞다'고 선언했던 문장들은 오늘 아침 비문(非文)이 되어 돌아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제 나는 말의 밀도를 줄이는 법을 배운다. 세상은 이미 해석의 과잉으로 터질 듯 팽팽하며, 나의 한마디를 보태는 것은 소음의 지수를 높이는 피로한 일에 불과하다. 저 사람은 저러하고, 나는 이러하다. 이 당연한 다름 사이에 서늘한 선을 긋는 것, 그것이 인간이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이자 겸손임을 깨닫는다. 이해받으려 애쓰는 것은 유치하고, 이해시키려 드는 것은 오만이다. 각자의 렌즈로 굴절된 진실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그렇군요"라는 건조하지만 단단한 마침표를 찍고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