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떠나는 나라

by 기욤하우어



도시의 새벽길을 걷다 보면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이 있다. 그 빛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루를 비추지만,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 그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서두르는 발걸음만 남은 듯하다. 빠르게 달려왔지만, 왜 달려야 하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과학기술이 급격히 변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 무엇을 준비하며, 누구를 키워야 하는가?



학교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아이들은 공부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느끼고, 그 능력의 방향은 거의 한 줄로 모인다. 의사, 판·검사, 혹은 이름만 들으면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업들. 마치 한정된 등산로만이 정상으로 이어진다는 착각처럼,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연구하는 사람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엔지니어는 ‘공돌이’라는 얕은 호칭 아래 가려진다. 길은 풍성한 숲처럼 다양해야 건강한데, 우리의 길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이 좁은 길에서 가장 먼저 밀려난 이들이 기초과학자들이다. 눈앞의 이익을 바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연구는 가장 먼저 삭감되고 가장 늦게 인정받는다. 때로는 몇 년을 한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데, 이런 느린 시간을 견딜 구조가 한국에는 거의 없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가 조용히 떠난다. 한때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 중 연구자의 길을 걷는 이가 손에 꼽힌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기초’라는 단어의 의미를 잊었다. 아직 모르는 것을 탐구하는 일은 거대한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는 작업처럼 필수적인데, 토대를 무시한 채 외벽만 높이 세우려 한다.



한국의 연구 공간은 늘 부족하고, 새 실험실을 얻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흔하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원생조차 작은 연구비 하나쯤은 갖고 시작하며, 실험을 도와주는 인력과 장비가 비교적 쉽게 마련된다. 연구는 자연이 주는 계절의 리듬처럼 반복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국의 연구자는 사계절이 아닌 ‘빨리빨리’의 단일한 시간 속에서 허덕인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크고 긴 꿈을 꿀 수 있을까?



국회의 모습도 영향을 준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정치보복이 끊이지 않는 회의장, 그 속에서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작다. 연봉은 1억이 넘고 여러 혜택이 보장되지만, 그 혜택만큼의 책임과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냉소를 배운다. 그 막대한 자원 중 일부라도 과학자엔지니어에게 돌아갔다면, 오늘의 한국은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에서 형성되는데, 그 근간에 대한 투자가 가장 더딘 현실은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어왔는지 보여준다.



중국이 우리를 추월했다는 말이 점점 더 많이 들린다. 그러나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추월했는지를 보는 일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을 실험장으로 삼고, 연구자를 장기간 계약으로 묶어 안정을 제공하는 방식. 그 속에서 연구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해봐’라는 격려와 함께 시작한다. 반면 한국은 시작조차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꿈의 크기가 운명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꿈 자체를 좁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뒤늦게 묻는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다양한 길을 열어두고, 조용히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사회적 존중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한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의 뿌리를 살리는 것. 나무는 가지가 많아야 풍성한데, 우리는 하나의 가지에만 햇빛을 몰아주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기초과학을 도외시하는 문화, 특정 직업만 높이는 관습, 정치의 소모적인 다툼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새벽빛은 늘 조용히 변화를 알린다. 그 변화를 제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뒤처졌다는 말보다 앞서간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돌아올 것이다.




이전 08화기대가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