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발언에서 위로를 얻다

by 기욤하우어




언어 순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 관련 기사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용에 깊이 공감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해 왔고, 누군가가 나 대신 이렇게 말해 주니 속이 후련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분명 이재명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내 글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 개딸(‘개혁의 딸’의 줄임말) 아니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어느 대통령의 팬이 된 적은 없다. 좌파든 우파든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하며 가능한 한 중립을 지키려 노력해 왔다. 우리 사회에는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조금만 실수해도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정치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글에 특정한 정치 색이 묻지 않도록 애써 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며칠 전에 올린 글 '사라진 미래, 외로운 청춘'의 답글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 순화 관련 기사를 읽은 뒤 댓글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온갖 비난이 가득했다. 과거 언행을 들춰내며 공격하기에만 바쁠 뿐, 이번 메시지 자체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물론 그런 댓글을 단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색안경을 잠시 벗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 문제는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지(말의 내용)’보다 ‘메신저(말하는 사람)’에 더 주목한다. 아무리 옳은 메시지라도 메신저의 평판이 좋지 않으면 그 메시지는 힘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메신저의 평판이 어떻든 메시지에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비판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그 비판이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로 균형 감각을 흐려 놓는다면, 그때는 위험한 지점에 이른 것이다.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 대통령은 가장 듣기 싫은 표현의 예로 ‘저희 나라’를 들었다. 그 내용을 읽는 순간 깊이 공감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희 나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그때마다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사 직원이 나와 대화하면서 ‘저희 나라’라고 말할 때면 미묘하게 기분이 상하곤 했다.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원래 외국인에게 자기 나라를 소개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대통령의 설명처럼 ‘저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같은 국민끼리는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그 직원 역시 존댓말을 쓰겠다는 의도로 표현했겠지만, 실제로는 정확하지 않았다. 나를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처럼 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또 다른 표현이 있다. 바로 ‘저희 회사’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이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에게도 습관적으로 썼지만,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저희 회사’는 거래처나 외부인, 혹은 면접자에게 사용하는 말이지, 같은 회사 사람끼리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같은 회사 사람에겐 당연히 ‘우리 회사’라고 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다.



나는 학벌이 높지도 않고 아는 것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표현만큼은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학벌 좋고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기본 소양을 의심하게 될 때가 있다.



기본 소양이 의심스러운 사례는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뉴스 기사에서도 지적된 표현이 있다. 바로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이다. 사물에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언젠가는 ‘커피님’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것 같다.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된다. 도대체 커피가 인격체도 아닌데 왜 존칭을 붙이는 걸까?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직원은 본인이 커피보다 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불필요한 높임말을 쓸 시간이 있다면 기본예절에 더 신경 쓰는 편이 의미 있지 않을까?



이 대통령은 외래어 남용 문제도 지적했다. 멀쩡한 한글 표현을 두고 굳이 외래어를 사용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이었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 외래어를 남용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했는데, 이에 깊이 공감한다.



어르신들이나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만약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 이웃이 외래어 때문에 불편을 겪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외래어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를 ‘미디어 교육 강화’라고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나 역시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매우 거슬리는 표현이 있다. 바로 ‘커넥션’이다. 뭐만 하면 커넥션, 커넥션…. 접점·연결고리·협력관계 등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이 충분한데도 잘 쓰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인사이트’라는 말이 유독 많이 쓰인다. ‘통찰’이라고 하면 되는 것을 굳이 외래어로 표현한다. 한글 표현이 멋이 없어서 그런 걸까? 더 흥미로운 점은 ‘인사이트’와 ‘통찰’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도 꽤 많다. “덕분에 인사이트와 통찰을 얻고 갑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보는데, 풀이하면 “덕분에 통찰과 통찰을 얻고 갑니다”가 된다. 우스운 일이다!

※ 인사이트(insight) : 통찰력, 이해, 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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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표현할 때도 외래어 사용이 지나치게 많다. 헤어 디자이너는 미용사,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분장사, 바리스타는 커피 전문가, 비디오 아티스트는 영상 예술가, 프로듀서는 제작자 또는 기획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외래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직업을 스스로 낮게 여기거나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말로 대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외래어 사용이 당연하다. 예컨대 햄버거, 커피, 초콜릿 같은 단어가 그렇다. 그러나 멀쩡한 한국어를 두고 굳이 외래어로 바꾸는 것은 우리말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영어 교육보다 국어 교육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민을 갈 것이 아니라면 먼저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순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맞춤법 문제까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맞춤법을 상당히 자주 틀린다. 특히 ‘되’와 ‘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므로 영어 교육은 필수적이지만,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님, 그 말씀 덕분에 오래 쌓였던 답답함이 풀렸습니다.
치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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