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데서 온전하여짐
병원에서 우울증 약을 처음 처방받았을 때,
의사는 두 가지 약봉투를 내어주었다.
하나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복용해야 하는 약,
하나는 ‘필요시’라고 적혀 있는 약이었다.
저녁 약은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했고,
‘필요시’ 약은 평소 생활 중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불안이 올라올 때 먹는 약이었다.
정식 명칭으로는 ‘불안 시 복용’이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약봉투에는 간단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필요시”
그 말이 마치 속삭이듯 다가왔다.
당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 내가 곁에 있어 줄게요.
누군가 조용히, 다정하게 내게 벗이 되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약의 쓰임을 알고
봉투들을 서랍 안에 조용히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정말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회사에서)호흡이 가빠지고,
무너질 듯한 마음이 일렁이던 그때—
문득 떠올랐다.
“지금이야. 필요시.”
그 말이 내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지금이야, 지금 꺼내도 돼.
나는 조용히 약봉투를 꺼내
물과 함께 약을 삼켰다.
약은 목구멍을 타고 조용히 내려갔고,
호흡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손바닥에는
작고 얇은 약봉투 하나만이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약봉투를 회사 쓰레기통에 도무지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필요시’ 약봉투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왜 못 버리지?”
그 생각이 어느 날 문득 올라왔다.
그저 쓰레기통에 넣으면 될 일을,
나는 한참을 망설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약봉투를 접고 또 접었다.
딱지처럼 작게,
그동안의 ‘필요시’ 봉투들이
우연히라도 쓰레기통 안에서 펼쳐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름을 만들며 꾹꾹 접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단히 접힌 걸 확인한 뒤
비로소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약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내 사정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 같았다.
왜 내가 이 약을 먹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을 때,
상대가 멋대로 해석하고
나를 낙인찍을까 봐—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판단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약봉투와 함께
조용히 호주머니에 접어 넣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게 두려운 거였구나. 그랬구나.’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
감정이 파도처럼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각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이건 진짜 사실일까?”
“이 감정 뒤에 내가 믿고 있는 건 뭐지?”
“혹시 왜곡된 기대에 나를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연습한다.
“무너지면 안 된다”
“항상 잘 견뎌야 한다”
“약을 먹는 건 약한 사람만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 나를 묶어두지 않는 연습.
나 혼자 버텨지지 않을 때,
내가 어떤 무엇을 의지할 때,
그건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연약함을 보완해 주는 도구들일 수 있다.
나는 지금,
치유의 여정을 성실히 걷고 있는 중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 안에 은혜를 채워주신다.
이 약도,
그분께서 내게 허락하신 하나의 도구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약봉투를 열며 속삭인다.
고마워, [필요시]
오늘도 너 덕분에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