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 긴 글을 남겼다.
비밀도 아닌 일을 마치 중대한 사건처럼 풀어내며,
절차와 상식, 예의를 말했다.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들 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유 없는 분노,
그의 잃어버린 자존심,
그리고 어쩌면 인정받지 못한 그의 세월의 한 조각들.
나는 처음엔 억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저 ‘은혜가 필요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이제는 누군가의 부족함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는 늘 절차를 강조했다.
회의에서도, 메신저에서도,
“순서가 있다”, “협의가 먼저다”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처음엔 그게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말들이
누군가를 지적하기 위한 무기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상식과 예의를 말하면서도
정작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모습.
그의 말에는 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자리에서 밀릴까 봐,
자신이 틀릴까 봐,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옳음을 외치던 사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분노는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세상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자기 두려움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버텨온 시간,
그 안에서 단단함 대신 딱딱함이 남았을 것이다.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제는, 그저 은혜가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다.
누군가의 이해 한 줄기만 있었어도
그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상처받기 싫어 먼저 벽을 세우고,
틀리지 않으려 애쓰다가 결국 마음을 잃었던 날들.
그를 미워하던 순간들이
내 안의 닫힌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 먼저, 나에게 은혜를 주려 한다.
일을 잘하고, 상처 없이 버티려 애쓴 나에게
이제 그만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던 그 시간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든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쁜 놈, 가여운 놈, 은혜가 필요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