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검사, 재검받다

임산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검사, 임신성 당뇨

by 영원하라

엄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말씀하셨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해. “ 아기를 위해선 산모가 항상 좋은 것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당부를 나도 참으로 듣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임신과 동시에 내가 겪게 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좋지 않았다. 아니 이를 이겨내고서라도 좋음을 찾아내야 하는 긍정의 시선을 더 가졌어야 하는 건가. 내가 괜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니다. 물론 나에게도 임신은 너무 큰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여전히 다를 바 없는 내 일상에 찾아온 생명은 평소와 같던 나를 전혀 다른 나로 바꿔놓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작은 조짐에도 기뻐하고 신기해하며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생명은 안정적이고 평온하게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한 생명을 품고 낳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중에 하나, 임당 검사에서 재검을 판정받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냐라고 할 수도 있다. 성인 당뇨를 비롯해 아동 당뇨까지 현대인에게 너무 흔한 질병이 되어버린 당뇨인지라 임신성 당뇨를 얻게 된 것이 그렇게 괴로울 일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눈물 콧물 흘리며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이건 내 몸에 대한 혹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신성 당뇨란 아이를 통해 생겨난 것이지만 그 영향이 나를 넘어 아이에게까지 끼치는 일이기에 눈물을 흘리며 경계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내가 당뇨 환자라면 크게 요동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당뇨에 걸려본 적이 없어서 안일하게 여기는 것일지 모른다. 아마도 밤늦게 맵고 짠 야식을 즐기고, 식사 후에 달달한 탄산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업무 틈틈이 액상 과당이 잔뜩 든 커피를 마시거나 달달한 과자를 옆에 끼고 살았다면 의사들이 말하는 그 당뇨에 걸리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당뇨를 진단받아도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입과 몸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에 대한 대가니까! (당뇨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다…)


수많은 매스컴에서 혈당 스파이크를 말할 때도, 식사 후에 식초물을 마시라거나 애사비를 곁들여서 혈당을 낮춰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남의 일처럼 귓등으로 듣곤 했던 나에게 임신성 당뇨가 의심되니 재검을 받으라는 검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워낙 임신 초부터 임당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해선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바라 나도 첫 검사 때 조금 긴장하긴 했다. 보통은 검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선 벼락치기처럼 십자화 채소가 가득한 샐러드로 식사를 하고, 달달한 과자와 디저트는 잠시 넣어두고, 밥 먹고 부지런히 걸으며 혈당을 조절하고선 검사를 받으러 간다던데 그러면 효과가 있다던데 나는 당당히 살던 모습 그대로 가기를 택했었다. 사실 임당에 걸릴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고, 문제가 있다면 이참에 바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의 편법(?)으로 임당 검사를 통과하고 싶지 않았다. 먹던 대로 든든히 밥 먹고, 동료가 건네는 젤리는 양심상 하나만 먹고 그리고 평소처럼 자고 토요일 아침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아침을 건너뛰고 공복으로 포도당 150ml를 원샷 때리고, 한 시간 내에 산부인과에 도착하면 임무 완료.

한 시간이 지나면 검사 결과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마시고 한 시간 후에 채혈을 해야 한다. 이 약 자체도 명성이 자자하기에 걱정하며 뚜껑을 땄는데 예상외로 먹을만했다. 약간… 탄산이 다 빠진 오렌지 맛 환타를 쭉 압축시켜서 액기스로 만든 다음에 마시라고 하는 느낌? 물론 포도당이라 엄청나게 찐득하니 달긴 하지만 꿀떡꿀떡 먹는 데 문제는 없었다. 대장 내시경을 앞두고 먹는 그 소금 뿌린 포카리 보다야 훨씬 낫다 생각하며 기분 좋게 원샷을 때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채혈 시간이 중요한 만큼 접수를 건너뛰고 바로 채혈실로 가서 정해진 시간에 채혈을 했다. 그리고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임당 검사 결과도 들었는데 이게 웬걸. 제가요? 당뇨요?


임신성 당뇨는 50g의 포도당을 섭취한 이후 1시간이 지났을 때 혈액 중의 포도당 농도를 측정해서 재검 여부가 정해지는데, 140mg/dL 이상인 경우에 재검 확정이다. 나는 첫 검사에서 147mg/dL이 나와 재검이 확정되었다. 사실 나에게 두려운 것은 임신성 당뇨 확정보다는 재검을 하는 일이었다. 왜냐… 재검은… 탄산 없는 오렌지 환타를 두 병을 원샷해야 하고, 채혈을 총 4번 해야 하거든요. 저는… 임신성 당뇨보다 피를 뽑는 일이 더 무섭고 싫거든요. 결국 재검 판정을 받고 일주일 후 재검 날짜를 잡았다. 차라리 “임신성 당뇨입니다”라고 확답을 받았더라면 체념하고 이후의 과정을 준비했을 텐데, 재검은 일주일의 혹독한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 당뇨를 염두에 두고 살자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왜. 그래도 식사마다 채소도 잘 챙겨 먹고 단 걸 달고 살지도 않는 내가 왜라는 생각이 요동쳤다. 임신성 당뇨는 다른 당뇨와는 다르게 당뇨가 전혀 없던 사람이 20주 이후에 당뇨병이 발생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것인데, 임신을 하게 되면 태반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인슐린 작용을 억제해 임신 중 후반기엔 인슐린 저항성이 2~3배에 달하게 된다고 한다. 인슐린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췌장에서 분비하는 것인데 임신성 당뇨의 경우엔 인슐린 분비가 충분하지 않아 고혈당이 발생하는 것. 임신성 당뇨가 일반 당뇨병보다는 심하지 않아 특별한 증상은 없다곤 하는데 모든 산모가 염려하는 것처럼 태아에게 영향이 있다(그럼 엄청나게 큰 일이잖아 눈물 광광). 산모가 고혈당일 경우 태아가 거대아로 자라거나 신생아 저혈당, 황달, 호흡 곤란 등의 합병증이 증가한다. 대부분의 경우 출산을 하고 나면 자연스레 정상 혈당으로 돌아가고 약 10%의 산모는 이후에도 당뇨병이 발생해 꾸준히 관리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내 친구 역시 첫째 출산 이후에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둘째 출산 후에는 혈당이 여전히 높아서 지금도 계속 혈당을 체크하고 식단을 하며 관리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고 넋두리를 했다…


재검 날짜가 되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대체 왜 내가 왜, 임신하면서 걸릴 수 있는 모든 검사에 다 걸려야 하는 것이냐며 원망을 하다가, 아니다 더 건강하게 아이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겸손하고 겸허하게 좋은 생각 하자고 진정했다가, 왜 나야 왜 나만 이라고 반복하는 지킬 앤 하이드 모드로 일주일을 살았다. 재검 판정을 받아도 대부분의 경우 재검에서 정상 범위가 나와 통과가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주변의 위로 그리고 혹시라도 임당에 걸리면 정말 고생하게 되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까지. 찬 바람에 흔들리는 겨울 나뭇가지처럼 나에게 닥친 찬 바람을 맞으며 그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힘없이 흔들흔들. 어디로 가오리까…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대망의 임당 재검 하루 전. 서러움이 폭발했다. 확실히 임신 중기에 들어서니 몸도 몰라보게 달라졌고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자는 것도 이전과 달랐다. 허리도 손목도 지끈지끈 쑤실 때가 많아져서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단 생각에 서럽고 겁이 났는데 그걸로도 부족해 이젠 당뇨에까지 시달려야 한다니 임신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직 태어나진 않았지만 아기를 이미 너무 사랑하고 너무너무 반갑고 고맙고 소중한데, 동시에 내가 이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서럽기만 했다. 출산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또다시 건강한 삶으로 몸으로 돌이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날들까지 가늠해 보자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닌가. 원망하기엔 미안하고, 받아들이기엔 참담한. 남편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배를 붙잡고 또 엉엉 울었다. 행복한데, 감사한데 동시에 나는 너무 힘드니까. 힘든 것 자체도 배부른 투정 같아서 아이에게 미안하고 덤덤하게 견디기엔 생각보다 타격이 커서 버거운 임신 기간이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다 보니 기력이 빠져서 그대로 한숨 잤다(당황스러운 전개). 그렇게 잠시 자고 일어나니 또 컨디션이 괜찮았다. 생각보다 단순한 나.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내일 그냥 담담히 가서 임당입니다 할 때 놀라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덤덤히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 하고 와야지.



임당 재검의 날

(나 홀로 꽤나 비장)

도착해서 바로 1회 채혈을 진행했다. 자 이제 시작이야~

그리고 바로 포도당 두 병을 마셨다. 어떤 분은 저걸 마시면 오히려 속이 느글거리니 천천히 나눠서 마시라는 말도 있었는데, 병원 선생님께선 텀이 길어지면 안 되니 빠르게 바로 마시라고 하셔서 바로 두 병을 원샷했다. 두 병이면 더 못 먹을 맛이려나 싶었는데 아침부터 공복에 물 한 잔 못 마신 상태라 그런지 꿀떡꿀떡 이번에도 잘 넘어갔다. 두 병을 모두 마시고 다시 한 시간 대기에 들어갔다. 이게 채혈도 일이지만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채혈을 해야 하니 대기 시간도 무시 못할 고충이었다. 대기실에 앉아 핸드폰 보며 이것저것 살펴보다 보니 금방 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채혈실로 가서 반대편 팔로 피를 뽑았다.


으 두 번까지는 눈 꼭 감고 참았다. 공복에 피를 두 번이나 뽑아서 그런지 대기실에서 내내 잠이 쏟아지고 너무 피곤했다. 다음 채혈 시간까지 알람을 맞춰두고 의자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진동 소리에 눈을 뜨고 다시 또 채혈. 이번엔 반대편 팔로 또다시 채혈. 아 이제 한 번 남았다… 대기실로 돌아가 챙겨간 책을 읽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대망의 마지막 채혈. 아 이제 다 끝났다. 한 번만 참자 하고 팔을 내밀었는데… 이미 이전에 뽑은 피로 인해 양쪽 팔뚝은 모두 멍이 들었고 핏줄이 부어서 피가 뽑히지 않는다고 했다. 피가 쭈-욱 뽑혀야 끝나는데, 졸졸 나오는 정도라 이 정도론 뽑을 수 없으니 다른 팔로 다시 시도해 보자고 하셔서 양팔을 모두 내밀었다. 핏줄에 넣어도 계속 피가 나오지 않아 바늘을 옮겨가며 다른 핏줄을 다시 찌르는데도 나오지 않았고, 다시 스티커를 붙이고 처음에 시도한 팔뚝에 다시 주사를 꽂아보기로 했다. 한 번의 따끔은 참아도 세 번이나 반복하니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제발 빨리 끝내주세요, 제발 빨리 해주세요 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마지막 채혈까지 마친 뒤 나의 재검이 끝났다. 나중에 출산할 때가 되면 채혈은 아무것도 아닌 쉬운 일이 되겠다만 지금의 나에겐 눈앞이 핑핑 돌고 무서움에 손이 덜덜 떨리는 통증이었다. 피 뽑는 정도는 일도 아닌 것처럼 해내야 엄마가 되는 거겠지. 다른 엄마들처럼 무던하게 지나가기엔 이마저도 왜 이렇게 무섭고 힘드냐.


공복 시 혈당 95mg/dL 이내

1시간 혈당 180mg/dL 이내

2시간 혈당 155mg/dL 이내

3시간 혈당 140mg/dL 이내


이후 검사 결과를 기다려 선생님을 만났다. 네 번의 채혈 결과에서 두 개 이상 정상 범위를 넘어서면 임신성 당뇨 확정이다. 사실 떨리지도 않았다. 거의 확정이라 생각하며 덤덤하게 결과를 들었는데 첫 번째 결과 85, 두 번째 116, 세 번째 105 마지막 98로 완전히 안정적으로 임당 재검에서 통과했다. 올레!!!! 아니 한 번도 정상 범위를 넘은 게 없잖아? 이거 완전히 정상이잖아? 선생님께서도 이 정도면 따로 식단을 하거나 관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다만 빈혈이 있을 수 있으니 철분제를 잘 챙겨 먹고 다음에 한 번 철분 주사를 맞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하셨다. 나머지는 다 괜찮으니 맘 놓고 돌아가도 괜찮다는 이야기에 그동안 흔들리던 나뭇가지는 내 안에 심겨 있는 단단한 나무 기둥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래! 비록 내 검사마다 흔들리고 고통받으나 아가와 나는 굳건하게 견뎌내고 있다. 이겨낼 수 있다! 갑자기 용기 넘치는 멋쟁이 엄마로 업그레이드!!!


채혈도 끝났겠다, 검사 결과도 좋겠다 재빠르게 발을 옮겨 아점으로 추어탕을 한 그릇 먹었다.

뜨끈한 추어탕을 먹으니 속이 다시 든든해지고 마음까지 풍요롭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아 고통스러운 일주일이 따끈한 추어탕 한 그릇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됐다.


이제 또 무슨 검사가 남았으려나.

그때도 이렇게 벌벌 떨며 검사받고, 당당하게 나올 수 있으려나. 강한 엄마 되기 아니 그냥 엄마 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