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 되어 돌아온 그녀, 심은경

10년의 담금질 끝에 이룬 극적인 이미지 전환

by 김트루
15_10_36__6954be5c77b81[H500]-3-1-side.jpg ©씨네21

들어가며


그야말로 금의환향, 기염을 토하는 행보다. 배우 심은경이 지난 1월, 영화 <여행과 나날(2025)>로 일본 영화계 최고 권위 시상식 중 하나인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에서 최고 작품상은 물론, 한국인 최초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것이다.


그런데 그녀를 감싼 분위기, 그리고 스타일이 사뭇 달라졌다. <써니>, <수상한 그녀>에서의 깜찍한 소녀는 간데없고, 전혀 딴판인 시크하고, 염세적인 인상의 톰보이*가 한 명 서 있다. 너무나도 극적인, 생각지도 못했던 이미지 체인지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어딘지 달관한 모습에서 편안함이 읽히는 듯도 하다. 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변화를 가능케 만들었을까. 이제는 무려 24년 차 배우, 심은경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며 그녀의 캐릭터 및 스타일 변화 과정을 짚어본다.


*톰보이(Tomboy): 남자의 성역할을 하는 여성이나 중성적인 매력을 띠는 여자를 가리키는 용어.


common-46-1-side.jpeg ©네이버 영화

탄탄한 조연 경력, 이르게 날아든 성공 (2003년~2014년)


‘혜성 같은 등장’만큼 심은경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또 있을까. 2003년 드라마 <대장금>으로 데뷔한 그녀는 이후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 <황진이>, <태왕사신기> 등으로 탄탄한 아역 배우 경력을 쌓았다. 전설적인 ‘헥토파스칼 킥’으로 유명한 <단팥빵>도 빠지면 섭하다.


그리고 2011년, 첫 주연작이었던 영화 <써니>로 830만 흥행 홈런을 친 그녀는 이후 <광해(2012)>에서 시녀 ‘사월이’ 역할로 일찍이 천만 배우 대열에 합류한다. 여기에 대선배 나문희와의 투 톱 주연작인 <수상한 그녀(2014)>마저 히트시키며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 국내 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한다.


common-42-1-side.jpeg ©네이버 영화

엄습한 슬럼프, 돌파구는 ‘변신’ (2014년~2018년)


그러나 이른 성공은 그녀에게 은퇴를 고민케 할 정도로 깊은 슬럼프가 되어 돌아왔다. 갑작스레 쏟아진 사랑과 칭찬의 무게를 감내할 수가 없었던 것. 설상가상 그녀 최고의 무기였던 ‘밝은 캐릭터’ 역시 한계에 봉착하고야 만다. 흥행과 평가 모두 참혹했던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2014)>를 시작으로 첫 독립영화 <걷기왕(2016)>, 심지어 최민식과 함께했던 <특별 시민(2017)>마저도 그랬다. 2018년에는 영화 <염력>, <궁합>이 연달아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심은경은 다양한 작품 속에서 큰 폭의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며 이 시기를 버텨냈다. 2016년 <널 기다리며>에서는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쫓는 딸 ‘희주’를, 2017년 <조작된 도시>에서는 히키코모리 천재 해커 ‘윤여울’을 연기하며.


common-37-side.jpeg ©네이버 영화

캐릭터 정체성 재확립한 일본 활동 (2019년~2025년 중반)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했던 것일까. 2017년 갑작스레 일본 진출을 선언한 그녀는 2019년, 일본 첫 작품이자 주연 영화 <신문기자>를 통해 진중한 캐릭터와 스타일을 시도한다. 이 작품을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여행과 나날>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전보다 일반적인 성격에 웃음기가 빠진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물론 기존의 자신을 다시금 끄집어냈던 <블루 아워>같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극단적인 캐릭터 + 심은경의 밝은 이미지’ 조합으로 시너지를 내고자 했던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작품들과 만났던 것이, 무엇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스타일을 재정립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도드라진 특유의 ‘톰보이 스타일’도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본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셈.



183809_186785_1235-side.jpg ©(왼쪽부터) 엣나인필름, 스타뉴스

새로운 시그니쳐 & 아이덴티티, ‘톰보이’ (2025년 말 ~ 현재)


그리고 지난해 8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수트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한 달 뒤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연이어 ‘여배우 = 드레스’ 공식을 깨며 보란듯이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기존에도 화보를 통해 보이시한 매력을 여러 차례 발산한 바 있으나, 공식 석상에서의 어필은 처음인 만큼 그녀가 일본 활동 가운데 스스로의 젠더리스한 스타일적 강점에 눈 떴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겠다는 포부, 허술함이 비집고 들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연함이 시크한 표정, 레이어드 헤어, 품이 넉넉한 오버사이즈 제품을 적극 활용한 착장 모두에서 느껴진다. 심지어 이제는 예술가로서의 카리스마마저 풍긴다.


common-35.jpeg ©네이버 영화

고유한 언어 찾은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할 뿐


그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는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이 고착화된 스스로의 이미지를 깨지 못한 채 스러졌다. 일부는 엇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심은경은 살아남았고, 다시금 용기를 내 우리 앞에 서 있다. 10여 년의 ‘담금질’ 끝에 단호해졌고, 무뚝뚝해졌고, 차가워졌지만, 그 모습이 썩 보기 좋다. 매체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단호함,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웃을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겠다 말하는 듯한 당당함에 뿌듯함마저 생긴다. 스크린 속 그녀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의 소감이다.


앞으로 배우 이상의 ‘뮤즈’로서, 우리에게 한층 깊은 영감을 선사할 그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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