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별, 그 끝에서 마주한 시간.
시간의 경계
할머니의 침상이 정리되는 동안 한 해가 갔다.
12월의 마지막이었던 날이 어제가 되고
1월 1일이 되었다.
이 모든 게 꿈같았다.
아침에 받았던 할머니가 아프다는 전화,
그리고 응급실.
중환자실과 다시 임종까지.
하루 만에 다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매일 자식 걱정에 손주 걱정까지 하던 할머니는,
남겨질 우리가 걱정돼서였을까,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셨나 보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나는 까만 상복 차림으로 시들어갔다.
하얀 국화꽃들을 보면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났고,
할머니와 너무 닮아 있는
고모들 얼굴을 바라볼 때면
자꾸만 귓가에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편히 잠들지 못한 채 앉아서 졸 때면
꿈속에 어렴풋이 할머니가 보였고,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겠다 싶다가도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루도 안 되어 그리움에 찌들어 있는 내가
할머니를 보낼 수 있을까.
마지막인사
아빠가 나에게 염습을 보겠냐고 물었다.
나는 보겠다고 했다.
등골이 서늘할 만큼 차가운 그곳에
잠든 듯이 누워 있는 할머니.
평소답지 않게 화장을 한 얼굴이 한편으로는
낯설게도 느껴졌다.
무서웠다.
그저 눈물의 이별일 거라고만 예상했지만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어른들이 저마다 인사를 건네는 동안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꼭 감은 두 눈으로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앙 다문 입으로 내게 무언가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정말로 할머니와 이별했다.
장례가 끝나고 발인 날,
10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했던 동네를 모두와 걸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의
모든 기억들이 눈물로 젖어갔다.
옆집 할머니, 앞집 할머니,
온 동네 할머니들이
할머니 마지막 길에 배웅을 나왔다.
그래, 늘 이웃과 함께했던 정 많던 나의 할머니를
많은 사람이 명복을 빌어주는구나.
떠나고 난 자리
할머니의 관이 땅속에 묻혔다.
이젠 영영 보내야 한다.
눈물이 바다가 되어 마음의 파도가 요동친다.
고모들과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러 집으로 갔다.
할머니와 함께 산 시간이 11년인데
정리는 왜 이렇게 후다닥 빠르게 해야 하는 걸까.
할머니의 물건이 하나둘 버려졌다.
아직 방 안에 할머니의 냄새가 가득한데
칼같이 물건을 정리하는 고모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자꾸만 무너지는 마음에 정신을 차리려 욕실로 향했다.
물을 틀어놓고 나도 모르게
가만히 멍 때리고 있기를 수십 분.
차오르는 물에 무언가 둥둥 떠다녔다.
돈이었다.
돈벼락을 맞은 듯 물 위에 지폐들이 떠다녔다,
세탁기 아래에서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고모들과 아빠를 불러 같이 확인하니
꽁꽁 싸맨 까만 봉지가 찢어진 채 지폐가 가득했다.
“이거를 만다고 모았노. 이거를 만다고.
다 쓰고 가지. 이 돈 다 쓰고 아프지나 말지.”
고모들의 통곡 소리가 가슴을 후볐다.
할머니와 나
할머니는 참 악착스럽게도 살았다.
농사일로 바쁜 큰아빠네 아들 둘을 키워냈다.
그리고 또 이혼한 아빠의 삼 남매, 우리를 키워냈다.
늘 할아버지와 떨어져서
손주를 키우며 일생을 보내다가
죽고 나서야 할아버지 곁에 영원히 잠들 수 있었다.
할머니의 흔적들이 모두 정리된 집에는
적막함이 맴돌았다.
할머니가 늘 차고 다니던 염주 하나만 내게 남았다.
가만히 손에 쥐고 할머니와의 기억 하나를 떠올려본다.
TV를 보며
“참 좋은 시상(세상)이다.
이런 시상에 죽는 놈만 불쌍치.
산 놈은 어떻게든 산다.”
했던 할머니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할머니 말처럼 산 나는 살겠지.
앞으로의 매일을 살아가겠지.
그리움에 사무치는 날은 눈물도 흘릴 테고,
추억의 날로 돌아가기도 하겠지.
그러면서 살겠지.
나는 할머니 없이 살겠지.
그러나 분명한 건,
살아도 마음속엔 늘 할머니를 담은 채 살 것이다.
내 삶 곳곳에 녹아 있는
할머니와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