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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천국, 누군가에겐 지옥.

그러나 내겐 감옥이었던 조리원.

by 온오프

조리원에는 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출산 전, 조리원을 알아보며 후기를 찾아 읽을 때마다

누구나 입을 모아 말했다.


“조리원은 정말 천국 같아요.”


천국이라니.

내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상.

그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었고

마음은 이미 그곳을 향해 있었다.


2박 3일의 짧은 병원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나는 설렘을 안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문득, ‘이제 곧 나도 그 천국에 들어가겠구나’ 하는

기묘한 기대감이 가슴 깊이 일렁였다.


퇴원길에 시부모님은 장손을 보겠다며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내 아이가 낳은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그들의 얼굴에 번진 미소는 햇살처럼 따뜻했다.

나는 그 눈부신 표정을 사랑이라 불렀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위로받았는지도 모른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도착한 조리원.

의료진은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폈다.

작고 연약한 몸짓, 꼬물거리는 손발.

그 작은 생명이 내 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나는 연신 눈을 비비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요람에 누운 아이는 금세 잠에 빠졌다.

통창으로 된 신생아실은 병원과는 달랐다.

굳이 정해진 시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물지 않은 회음부 통증에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몸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자꾸만 복도로 향했다.

머리카락 한 올, 손가락 하나, 발끝까지.

아이의 작은 존재를 눈에 새기고 또 새겼다.

신기하고 벅찬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토록 작고 여린 생명이 내 품에 찾아왔다는 사실,

그 믿기 어려운 현실이 조리원 복도의 빛과 뒤섞여

한동안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찌

일괄적으로 ‘천국’이라 불릴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루는 바쁘게 흘러갔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좌욕,

이어서 유축, 수유,

또 다시 유축, 다시 수유.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나는 매일같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여기에 모자동실까지 꼬박꼬박 참여했고

수유콜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책임감에 매여 끝까지 버텼다.


조리원을 계약할 때

산후마사지 1회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낯선 손길이

내 몸을 만지는 것 자체가 불편해,

결국 그 한 번으로 끝이었다.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마저도

나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현실은

조리원의 풍경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모든 식사는 방 안에서만 해결해야 했고,

방 밖으로 나설 때는 늘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조리원 동기’ 같은 것도 만들지 못했다.

아이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기를 둔 엄마들과

웃고 울며 위로를 나누는 시간은,

내게는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은 점점 감옥처럼 느껴졌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정은 빼곡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틀에 박힌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아이만 남았다.


이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듯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도, 조리원 원장님에게도

내 가슴은 그저 아이의 밥통에 불과했다.

물론 그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모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연하게 만지고,

마사지하는 손길이

어느 순간부터는 수치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내 몸과 마음을 지워가는 듯했다.

아이를 위한 공간 속에서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치아가 덜덜 부딪히며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입에서는 으으– 하는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불을 두껍게 덮어도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추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 박동은 빨라졌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산후오한이었다.


밤새도록 떨어댄 탓일까.
다음 날 아침,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아팠다.
뼈마디마다 고통이 파고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빽빽한 하루를 그대로 이어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내 몸조리를 먼저 해야 한다’는 상식은

그때의 나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 눈에는 오직 아이만이 전부였고

아이를 위해서는

내 몸 따위야 희생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만 바라보던 그 마음은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다짐했다.

“절대로 친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다.”
그 다짐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 다짐 하나가 매일같이 나를 옥죄며 목을 조여왔다.


보건소에서 실시한 산후우울증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매우 위험’.
글자 그대로 내 마음의 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진단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리원에서 보낸 시간은 체감으로는 몇 달 같았다.
끝도 없는 나날을 버틴 것 같았는데
막상 확인해 보니 고작 6박 7일.
2주를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일주일 만에 퇴소했다.


퇴소하던 날,

세상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숨이 트이고 가슴이 열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알았다.
그 해방의 끝에 또 다른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육아라는,

그 어떤 훈련도 준비도 끝낼 수 없는 여정 말이다.


사람들은 조리원을 천국이라 불렀다.
하지만 내게 그곳은 감옥이었다.
그러나 감옥 속에서 버티고 나온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이제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조금은 단단한 발걸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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