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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전 예비엄마 클릭 금지 -
육아는 전쟁입니다.

엄마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만들어진다.

by 온오프

조리원을 퇴소하던 날,

나는 모든 것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낯선 공간에서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날들이 끝났으니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몸과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부모님께서 언제나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셨기에

가족과 함께라면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어리석고 순진한 기대였다.


아마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본 경험이 부족했기에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시댁에서 조리해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선택을 내리고 말았던 게 아닐까.


물론 시부모님께서 날 힘들게 하신 적은 없었다.

고된 시집살이나 전형적인 고부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다만,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작은 생활 습관 하나, 말하지 못한

사소한 불편이 쌓여도 피할 길이 없는 환경이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부부도 결혼 후 서로 맞춰가기 위해

숱한 다툼과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런데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에는

애초에 대등한 관계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어렵다.

알게 모르게 ‘갑과 을’의 위치로 여겨지기 쉽고

그 거리감은 우리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시부모님은 괜히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가

아들과 며느리의 갈등으로 번질까 봐 꾹 삼키셨고

나는 그저 “착하고 예쁜 며느리”로 남고자 애써야 했다.

겉으로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오갔지만

속으로는 말하지 못한 덩어리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 덩어리는 점점 무겁게 부풀어 올라 내 가슴을 눌렀고

숨통을 조이는 듯 답답함을 안겼다.


그럼에도 나는 그 돌덩이를 안은 채

신생아 육아라는 더 큰 전쟁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모유수유가 분유보다 좋다.”

“아이는 반드시 엄마 젖을 먹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그렇게 말한다.

마치 그것이 진리인 듯,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듯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늘 속으로 되묻곤 했다.

“당신, 직접 해보셨나요?”


모유수유는 결코 단순히 밥때마다 젖을 물리는 일이 아니다.

수유텀이 2시간인 아이라면

오후 1시에 수유를 시작한다.

한쪽 15분, 다른 쪽 15분.

아이의 작은 입술이 젖을 물고 있는 동안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있지만,

사실 온몸은 긴장으로 굳어 있다.

목덜미는 뻣뻣해지고, 허리는 점점 휘어지며,

손목은 저릿저릿해진다.


젖을 다 먹이면 이제는 트림.

짧게는 5분, 길게는 20분.

그 사이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있고,

아이가 토하면 또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

그렇게 분주히 보내다 보면 시계는 어느새 2시 반을 가리킨다.


하지만 아이의 배는 그 시간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수유 간격은 ‘끝낸 시간’이 아니라

‘시작한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1시에 시작했다면, 다시 3시가 되면 수유가 이어져야 한다.

결국 엄마의 하루는 두 시간 단위로 잘게 잘려버린다.

끝없는 릴레이, 쉴 틈 없는 달리기.


낮 동안은 그 와중에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 용품을 소독한다.

잠깐 눈을 붙이는 사치 따위는 없다.

밤이 되면 사정은 더 심하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아이 울음에 놀라 깨면,

손은 저절로 움직이고 눈은 반쯤 감긴 채로 아이를 안아 올린다.

그렇게 쪽잠을 이어가며 나는

‘내가 자고 싶을 때 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구나’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출산 이후 지금까지 나의 수면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분유가 더 쉽다는 것도 아니다.

물을 끓이고, 식히고, 분유를 타서 온도를 맞추고

젖병을 세척해 소독하고 말리는 일과 역시 고되다.

분유포트의 물줄기 소리가 밤새 내 귀에 울렸고

소독기에서 나는 뜨거운 김은 늘 주방을 가득 채웠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 아이를 먹여 살린다’는 건

어떤 방식을 택하든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 당연하다는 듯 내뱉던 말이

내게는 피와 살을 갈아 넣는 고통의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첫째는 유독 장이 예민한 아이였다.

많을 때는 하루에 스무 번이나 응가를 했다.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노동이 숨어 있었다.


출산 후 아직 회복되지 않아 손목이 욱신거리고

허리가 휘청거리는 몸으로 아이를 안아

화장실로 향하는 일이 스무 번.


작은 손발을 조심스레 잡아 씻기고

울음을 달래며 옷을 벗기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다시 옷을 입히는 과정을

하루에도 몇십 차례 반복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되돌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테이프처럼

같은 장면을 무한 재생하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이사이 모유 수유를 하고

아이에게 짧은 동화책을 읽어주고

모빌을 보여주며 잠깐이나마 아이의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


빨래는 산더미처럼 쌓였고

설거지와 청소는 늘 뒤로 밀렸다.

아이가 겨우 잠든 짧은 틈에는

혹시라도 깰까 봐 숨죽이며 서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삼켰다.

숟가락을 입에 대자마자 울음소리가 들리면

씹던 밥은 곧장 내려놓아야 했다.

밥은 점점 내 몫이 아닌 잊히는 존재가 되어갔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밥을 주고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희미해지고

오직 ‘엄마’라는 이름만이 남아 나를 대신했다.


그럴수록 나는 한여름 땡볕에 방치된 나무 같았다.

물 한 방울 주어지지 않은 채

바람에 잎사귀가 바스락대며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시들어갔다.

생기는 점점 빠져나가고

웃음은 내 얼굴에서 사라졌다.


거울 속에 비친 건 피곤과 무력감으로 잔뜩 그늘진

내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초라한 얼굴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같았다.

몸은 점점 지쳐갔고 마음은 점점 말라갔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고

‘엄마’라는 이름만이 나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존재는 내 삶을 붙드는 유일한 이유였다.

고단함 속에서도 아이의 숨결 하나,

눈빛 하나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나는 서툴지만 조금씩 배워갔다.

엄마라는 이름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커가는 시간만큼 나 또한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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