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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행복

그럼에도 나는 엄마이길 택했다.

by 온오프

시댁에서 백일까지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우리는 마침내 우리만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아기를 품에 안고 거제로 내려가는 차 안.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늘 혼자일 거라 믿었다.

혼자의 삶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고,

그 길 위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리라 다짐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라니.

새로운 가정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또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니.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고도 어색해 보였다.


감정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았다.

행복했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내게 다가온 행복은 언제나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그 뒤를 쫓아오는 불안이 어김없이 나를 덮쳤다.

어쩌면 내가 느낀 행복은 늘 불완전한 행복이었다.
늘 결핍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완전하지 않은 행복.


그 불안은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한 내가

과연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엄마일 수 있을까.

끝없는 의문과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혹여 그 불안이 아이에게 단 한 톨이라도 스며들까 봐

나는 더 크게 웃으려 했고 애써 조심스럽게 아이를 돌봤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30년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벅찼던 일은 단연 육아였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일이 새로 당황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은 끝없이 쏟아졌고

겨우 익숙해진다 싶으면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났다.

육아는 매번 새롭게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긴 여정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였다.
아니, 엄마이기에 해내야만 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 사실이

지쳐 무너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너의 성장 속에서 나 또한 다시 태어나고

함께 자라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성악설일까, 성선설일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은 본디 선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출산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성악설을 떠올렸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눈앞의 아기는 매일같이 나를 울리고 또 웃게 했다.

그 작은 존재에 내 감정이 이리도 휘둘리고,

내 마음이 온통 홀려있는데,

악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무너질 듯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

품에 안아도, 어르고 달래도,

젖을 물려도 그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이는 오히려 더 크게 울어댔다.


“제발, 제발… 왜 우는 거야.

도대체 내가 뭘 해주면 되니?”


토닥이며 중얼거리던 내 목소리는 점점 떨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들었고

가슴은 죄어오는 듯 답답했다.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 모든 게 단지 잠투정이었다는 사실을.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아이를 조심스레 눕히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 기다란 속눈썹,

오물거리며 움직이는 작은 입술,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하나까지.

그 모든 게 사랑스럽기만 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제는 정말 못 버티겠다” 싶었던 나는

다시금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가끔 의심했다.

혹시 내가 다중인격자가 된 건 아닐까.

울다 웃다를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 앞에서만큼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성장은 그 어떤 것보다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던 아이가

오늘은 갑자기 배를 뒤집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작은 눈빛에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기운이 어려 있었고

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몸을 꾹 밀어 앞으로 나아가고

어느새 네 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아이의 옹알이 소리도 점점 변해가며

마침내 입에서 또렷하게 흘러나온 한마디.


“엄마.”

그 한마디는 내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나는 살아오며 불러본 적 없는 이름

어른이 된 뒤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그 단어로 불리던 순간,

마치 세상이 다시 태어난 듯 눈앞이 환해졌다.


불안과 고단함으로 얼룩져 있던 내 행복조차

그 한마디 앞에서는 완전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었다.

“엄마!” 하고 부르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짧은 순간의 짜릿함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주었던

환희보다 천 배는 더 벅찼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벅찬 감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너와 함께, 나도 함께 자라났다.

서툴기만 했던 손길은 조금씩 능숙해졌고

작은 육아 팁들이 하나둘 쌓이며 삶은

전쟁 같으면서도 놀라운 배움의 장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만 있을 거라 믿었던 그 길 위에

삶은 또 다른 파도를 몰고 왔다.

아이를 낳은 지 20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내 눈앞에 다시금 또 다른 생명이 찾아왔다.


둘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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