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쩔 수 없잖아.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나는 오래 아파요.

by 온오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문장을 꼽으라면

아마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일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주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 한마디가 대화의 길을 막아버리고,

더는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명절에 시댁에서 자야 해?

“어쩔 수 없잖아. 항상 그래 왔는데.”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는 어떤 질문도 꺼낼 수 없다.


이번 주말에 특근을 꼭 해야 해?

“어쩔 수 없잖아. 회사에 일 할 사람이 없는데.”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작게 일던 반발심은

한순간에 꺼져버린다.


말 좀 이쁘게 하면 안돼?

“어쩔 수 없잖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애써 꺼낸 목소리는 그 말 앞에 힘없이 사라진다.


이 문장은 너무도 쉽게 쓰이는 변명이다.

하지만 듣는 쪽에서는 대화의 맥을 끊고,

어떤 가능성도 닫아버리는 무기가 된다.

누군가에겐 간단한 핑계이지만

누군가에겐 숨통을 조이는 족쇄다.


어쩌면 폭력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바로 언어폭력이다.


말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에

더 은밀하고 더 깊게 스며든다.


뱉고 나면 그만인 사람은

그 말이 화살이 되어 날아갈지

송곳이 되어 박힐지 상관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오롯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몫이다.


가시 같은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잊으려 해도 귓가에 맴돌고

마음속에 툭툭 부딪히며 상처를 키운다.


거친 욕설이 나쁜 줄 아는 이는 많지만,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무심한 한마디가

더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는 것을 아는 이는 적다.


그 한마디가 상대의 의지를 꺾고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은 “어쩌지 않겠다”는 포기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 말에는 애써 바꾸려는 의지조차 없다.


결국 그 말은 스스로에게는 가장 쉬운 방패지만

듣는 이에게는 가장 무거운 굴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변명이자 방관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바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놈, 스튜핏.





작가의 말


이 글은 창원시 어느 동네에서 격렬한 부부싸움 후
메모장에 끄적여 두었던 한탄을 가져온 것입니다.
지금은 다행히? 아주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릴 때마다
빠짐없이 읽어주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여보, 미안 !

이건 그냥 싸웠을 때의 마음이었어.
그치, 이해해 줄 거지?....ㅎ

keyword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