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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아요.

by 온오프

나는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누군가 내게 던지는 악담 열 마디보다

내가 다른 이에게 뱉어야 하는 싫은 소리 한 마디가 훨씬 더 끔찍했다.

그러다 보니 ‘괜찮아요’라는 말은 내 습관처럼 굳어졌다.
사실은 괜찮지 않은 순간이 훨씬 많았는데도

늘 괜찮다고 말하며 버텼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인배라도 된 듯 허허 웃어넘기면

내 실수도 상대가 너그럽게 봐주길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내 괜찮음은 어느 순간 ‘만만함’이라는 딱지로 바뀌었고

그 틈을 파고드는 하이에나 같은 이들이 가득했다.


곤란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어렵게 부탁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 부탁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번거로운 것들이었다.
나는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괜찮아, 내가 할게.”
그 말 한마디는 마치 스스로 내 등에 짐을 얹는 주문과도 같았다.

어느 날은 분명 내 일이 아닌데도 고개를 끄덕였고,
또 다른 날은 스스로를 옥죄며 “이 정도쯤은 괜찮아”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내가 들어준 부탁은 결국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눈에 내 호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내 괜찮음은 나를 갉아먹는 올가미가 되어갔다.
괜찮다는 말은,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부모로서 왠만한 건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 세뇌했다.
“괜찮아”라는 말은 여전히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왔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들이 뛰어놀다 다른 아이와 부딪혀

내 아이가 크게 넘어진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연신 사과하는 그 아이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서,
내 아이의 울음은 대충 달래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이 잦아든 뒤 들여다본 이마는

이미 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검붉게 번져가는 상처 앞에서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피가 거꾸로 솟듯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어디가 괜찮다는 것인가.
왜 아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해버렸을까.
그 순간 내 멍청한 태도가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이 날 짓눌렀다.


나는 아이를 안고 부리나케 응급실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내 귓가를 때렸고,
머릿속에는 단 한마디만 메아리쳤다.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그날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었다.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고,
무엇보다 내 아이를 지키는 일임을 뼈저리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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