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너를 보내주려 해.
지독하게 질긴 인연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내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어린 나이부터 함께였다.
처음엔 귀여웠다.
부담도 없었고,
그저 곁에 있는 게 당연했다.
녀석은 나를 잘 이해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했고,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타입이었다.
어딜 가나 함께였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단짝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에도,
중학교 시험 기간에도,
고등학교 야자할 때도…
항상 내 옆에는 그 녀석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늘 나와 함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내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나는
서서히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그 사랑 앞에서
처절하게 외면당한 녀석과 나는
잠시만 안녕했다.
그때 난 믿었다.
이게 완전한 이별이라고.
그런데…
그 녀석은 요요처럼 되돌아왔다.
아무렇지 않게,
마치 원래 내 자리였다는 듯이.
“왜 다시 돌아왔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밀어냈는데,
왜 서서히 다시 내 옆을 차지하고 있는지.
녀석은 질기고, 집요하고, 끈질겼다.
정말,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수없이 말했다.
“이번엔 진짜 끝이야. 우리 헤어지자.”
그러면 녀석은 느긋하게 했다.
“라면 먹고 갈래?”
그 한마디에
내 모든 결심은 증발했다.
문제가 있는 건 녀석이 아니라,
언제든 받아줄 마음의 틈을 열어두는 나였다.
나는 이별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이별할 준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그런데 말이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다르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코트를 꺼내 입으려는데,
거울에 비친 내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정말 보내줄게.”
“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어.”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라는데,
이번 이별만큼은 잘하고 싶다.
이별답지 못한 이별이지만,
이별다운 변화는 내가 만들 거니까.
잘 가, 내 체지방.
안녕, 내 살들아.
올 여름, 이별 답지 못했던 이별 하신 분들 손 !가을에라도 이별을..
아니 날씨는 초겨울 같던데
이제라도 이별을 해 봅시다아 -
살과의 이별이 그야말로 멋진 이별이 아니겠냐며......